“선거권 침해”...투표지 부족 사태에 고발·헌법소원까지 [서초동 야단법석]
헌법소원·직무유기 고발…결국 법정으로
직무유기 형사처벌은 고의성 입증 관건
선거 무효 소송 제기될 수도...“기각 가능성”

6·3 지방선거 당시 전국 22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라 투표가 중단됐던 사태를 두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개표소 인근에서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법정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가 “참정권 침해를 초래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엄중히 비판한다”며 성명을 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을 겨냥한 헌법소원과 형사 고발도 잇따르고 있다.
변협은 6일 성명서를 통해 “국민의 참정권 침해를 초래한 중대한 문제”라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변협은 “총 22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고, 투표용지가 도착할 때까지 유권자들은 상당 시간 대기해야 했다”며 “그 과정에서 일부 유권자는 투표를 포기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투표 마감 시간을 지나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까지 투표가 진행됐다”며 “일부 유권자가 선거 판세에 관한 정보가 공개된 이후에야 투표하게 된 것으로, 이는 선거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변협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투표소에서 경찰과 시민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변협은 “투표 절차가 지연·중단된 데 항의하는 국민 앞에 다시 공권력이 투입됐다”며 “참정권을 침해받은 국민의 분노 섞인 목소리를 공권력으로 관리하려는 듯한 상황은 책임져야 할 주체가 도리어 주권자인 국민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다름없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서 엄중히 다뤄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변협은 “이번 사태는 특정 정치 진영의 유불리나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의 헌법적 문제”라며 “선관위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실무상의 오류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변협이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낸 가운데 법조계 안팎에서는 책임을 묻기 위한 실질적인 법적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에는 이날까지 “선관위가 투표용지를 적게 준비해 선거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헌법소원 사건이 두 건 접수됐다.
헌재는 이번 헌법소원과 관련해 법적 구제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한다는 ‘보충성의 원칙’ 위배 여부를 검토해 각하 가능성을 먼저 따질 것으로 분석된다. 본안 심사에 들어갈 경우 선관위가 마땅히 해야 할 공급 의무를 방치한 ‘행정부작위’가 인정되는지, 투표 종료 후에도 예외적으로 국민의 참정권 구제 실익이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경찰에도 고발장 접수가 이어지고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경찰청에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에 대한 직무 유기 및 직권 남용 혐의 고발장을 직접 제출했다.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가 선거 당일 노 중앙선관위원장 등을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서민위는 노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중앙·서울시선관위 간부들에게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 혐의뿐 아니라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도 있다고 주장한다. 서민위는 고발장에서 “상당수 유권자들이 기다리다가 돌아가게 하는 만행을 조장했다”고 밝혔다.
투기감시자본센터·국민연대·정의연대·법치 민주화를 위한 무궁화클럽 등 6개 단체도 국민신문고를 통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비슷한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 6개 단체는 아예 중앙선관위원 8인 전원을 고발 대상으로 삼았다.
법조계에서는 선관위 관계자들의 직무유기 혐의가 성립할지 주목하고 있다. 선관위가 이번 사태를 고의로 일으켰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분석도 제기된다. 직무유기죄가 성립하려면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해야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였을 가능성도 있기에 형사 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유권자 수나 투표율 증가를 예측할 수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투표용지를 준비하거나 출력하지 않았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의식적 방임이나 포기로 볼 수 있어 직무유기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하지 못한 시민들이 국가나 선관위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경우 인용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기관에 의한 명백한 권리 침해가 발생한 만큼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뿐만 아니라 투표 지연으로 장시간 대기해야 했던 국민들까지 범위를 넓혀 민사상 손해배상이 인정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다만 소송 과정에서 실제 투표용지가 없는 현장에 직접 투표를 하러 갔으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이 CCTV나 서류 등의 물리적 증거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선거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거나 개표 결과에 불복하는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관측된다. 공직선거법상 지방 의회나 자치단체장 선거에 불복할 경우 선거일로부터 2주 이내 관할 선관위에 소청할 수 있다. 이후 기각·각하 결정이 나오면 법원에 당선소송 혹은 선거소송을 낼 수 있다. 당선소송은 특정 인물의 당선에, 선거소송은 선거 자체의 효력에 각각 이의를 제기하는 구조다. 관할 법원은 소 제기 180일 이내에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법조계에서 선거 자체가 무효로 결론 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투표용지를 못받아 실제로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들의 투표가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국회 출신의 대형로펌 A 변호사는 “선거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데 이를 침해한 이번 사안은 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다만 개인의 참정권 침해는 심각하지만 정당 차원의 선거 무효 소송은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독일의 사례를 들며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2021년 9월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라거나 뒤바뀌는 등 오류로 무효표가 속출하자 이듬해 베를린 헌법재판소가 재선거를 명했다. 당시 베를린 헌재는 선거 준비 과정에서 “심각한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고 짚었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당시인 3일 오후 김정철 개혁신당 서울시장 후보는 “(우리나라) 공직선거법 제222조에 ‘선거에 관한 규정 위반이 있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될 때’ 선거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인 만큼,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선거무효 소송이 인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법무법인 우리의 대표변호사다.
하지만 독일 재선거 사례와 이번 사태는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A 변호사는 “베를린 사례에서는 투표용지 오배송과 수 시간의 대기 줄 등 ‘전체적인 관리 부실’이 명확했고, 전체 유권자의 1%가 넘는 수천 명이 영향을 받아 의석 배분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결과가 바뀌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태 기자 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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