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의 세계엔 오해가 없다
[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주의 : 영화 '군체'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오해는 흔하고 이해는 희귀하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2021)는 제목의 책은 지금껏 손에 꼽도록 재밌게 읽은 에세이다. 팍팍한 생계를 전업 글쓰기로 헤쳐 나가며 행복을 말하는 이슬아 작가와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생활하며 목격한 고통스러운 병실 풍경을 글로 풀어낸 남궁인 작가가 무려 1년 동안이나 서로 치고받듯 주고받은 편지글이다. 정답게 안부를 묻는 간지러운 교감 따윈 기대 않는 게 좋다. 이 작가는 상대의 문장을 '자신에게 심취해서 느끼하고 종종 징그럽기까지 하다'고 타박하고, 남궁 작가는 그런 핀잔을 겸허하게 받는 듯하면서도 '나이 많은 남성이 쓴 문장의 구림을 신랄하게 꾸짖는다', '눈알이 빠질 것처럼 뒤통수를 딱 쳐준다'며 맹렬하리만큼 솔직한 상대의 태도를 짚어낸다. 예의 바르면서도 자기 입장을 쉽게 굽히지 않는 은근히 치열한 서신의 교차를 흥미롭게 바라보다 이른 결론은, 이토록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치에 발을 딛고 제각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 간에 크고 작은 오해가 없다면 아마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거란 것이었다. 그러니 수많은 우리들 사이에 늘상 생기는 오해 역시 그리 낯설 일은 아니다.
연상호 감독의 '군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꼽으라면 바로 이 '오해'를 다루는 부분일 것이다. '부산행'(2016)과 '반도'(2020), '기생수: 더 그레이'(2024)를 거치며 한국 상업장르물의 계보를 세우고 있는 연 감독의 신작을 두고 '기괴한 좀비 볼거리'나 '주연배우의 액션 활약'을 이야기하지 않고 웬 오해 타령을 하나 싶겠지만, 언급한 작품을 모두 본 관객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 별다른 시청각적 차별성이 없었다는 평가에도 어느 정도 공감할 듯싶다. 군체를 이루는 감염자들이 한동안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다닌다거나, 새로운 정보를 동시에 입력할 때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전율한다는 등의 몇 가지 변화 외에는 기존 좀비들과 거의 다르지 않은 특성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사람을 뜯어먹고, 몸을 사방으로 꺾어대며, 쉽게 죽지 않고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은 이런 장르깨나 봤다 하는 관객에겐 워낙 익숙한 볼거리다. 심지어는 단편적이라고 지적되는 경찰 악역이나 가족애를 무기 삼은 감정 폭발마저도 연 감독 작품이 종종 지적받아 온 지점이라서, 언급 자체가 동어반복이 될 공산이 크다.

'오해'에 접근한 작품의 태도는 반면 그 발상 자체로 좀 개성적인 데가 있다. 수많은 인간을 감염시킨 '서영철'(구교환)이 마음에 품고 있는 아픔은 교수였던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이고, 그 비극에는 극 중 중요한 인물의 선택이 영향을 미쳤다. '서영철'은 아버지가 놓여있던 난감한 처지를 상대가 제대로 알고 그 속뜻을 오해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겪은 아픔은 없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각자의 이해관계가 너무나도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상대의 진의를 일말의 오독 없이 깔끔하게 납득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동시에 같은 정보를 왜곡 없이 입력하며 일사불란하게 맞춤 행동을 하는 '군체'의 존재를 떠올린 것이다. 그에게 사람 사이의 오해는 소중한 가족을 앗아간 불행의 씨앗이고, 그 오해의 가능성을 완전히 소거해버리는 건 닥쳐올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는 최선의 방어책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부여한 이유를 철두철미하게 밀어붙이며 흔들리지 않는 안타고니스트로 기능한다.
'서영철'이 대변하는 것은 어쩌면 내면이 나약한 독재자의 모습이다. 상처받고 무너질까 두려운 겁쟁이는 지레 선을 긋고 자기 뜻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척결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 모습은 일면 우리 시대의 단절된 관계들을 대변하는 감이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지닌 상대와 내 사이에 오해가 있다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 오해의 벽을 한 뼘쯤이라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기 위해서라면 결국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는 수밖에 없다. 그게 인간으로 태어난 이들이 필연적으로 해 나가야 할 숙제라면, '서영철'은 그걸 포기한 셈이다. 아마 그의 손엔 과학기술보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와 같은 책이 더 먼저 쥐어져야 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상대 삶에 상세한 질문을 던지는지, 그로 인해 타인 세계의 내밀한 고통과 어려움을 얼마만큼 새롭게 알게 되는지, 그럼에도 왜 여전히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지, 그렇다고 해도 상대를 알고자 기꺼이 노력했다면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는지에 대해서 좀 더 생각했다면, 아마 '군체'가 아닌 방향을 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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