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오늘 이슬기 칼럼니스트]

영화 '남태령'을 봤다. 여러 마음으로 기다려 온 작품이었다. 감명 깊게 본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만든 김현지 MBC경남 PD가 그린 '남태령 대첩'과 그 이후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 켠에선 영화의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서, 내 모습이 어떻게 재현됐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궁금증이 일었다.
지난해 4월, 나는 '남태령'의 인터뷰에 응했다. 당시에 나도 오마이뉴스에 윤석열 탄핵 광장의 2030 여성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연재하던 광장 기록자였다.(이후 그 기사들은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됐다.) 줄곧 인터뷰어였던 내가 인터뷰이로서 남의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진귀한 경험이었다. 나는 텍스트를 다뤄온 한편, '남태령'은 영상이기에 더욱 그랬다. 미리 받은 질문지 파일에 연도와 사람 수 같은 수치들을 빠질세라 빼곡히 적어 갔다. 여차하면 노트북을 펴놓고 그때그때 참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내가 인터뷰 장에서 마주한 것은 넓은 홀의 무대 한 가운데 자리한 가느다란 스툴 의자였다. 막연히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 MBC 'PD수첩' 같은 프로그램들에서 간혹 등장하는 취재 기자 인터뷰 컷, 그러니까 책상 위에 노트북을 펴고 앉아 심각한 눈빛을 발사하는 장면을 상상했기에 규모가 작은 사무실 같은 곳에서 인터뷰가 이뤄질거라 상상했었다. 그러나 나의 인터뷰 장소는 드라마 제작발표회 등이 열리곤 하는 서울 상암MBC의 커다란 홀이었다. 그 무대에 홀로 앉아서는 노트북을 봐가며 하나하나 광장을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저 멀리, 인터뷰어인 조현우 MBC경남 PD가 하는 질문들에 나는 모처럼 광장을 분석하지 않고, 광장을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남태령'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터뷰이들에게서 그 때의 나를 본다. 확실히 영상은 보여주기에 특화된 장르이고, 설명하지 않는 매체다. 펜 기자인 나는 '팩트 확인'을 위해 재차 묻고, 어떤 '야마'가 되는 멘트를 따는 데 혈안이 된다. 그 바람에 인터뷰이는 절로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남태령'의 출연자들은 한결 편해보인다. 이는 아마도 인터뷰어의 자세 때문인 것 같다. 인터뷰어가 나처럼 '야마 되는 멘트' 같은 것에 조바심을 내지도 않을뿐더러, 인터뷰이가 발화하기 편한 환경을 만든 덕이다. 나의 경우는 그것이 무대 위 스툴이었다. 정확히는 말하기 편한 환경이었다기보다도, 스스로를 낯설게 보고 억압된 감정을 터뜨리기 좋은 공간으로서의 스툴.
'남태령'에서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영화의 '보여주기'다. 김 PD의 전작인 '어른 김장하'가 단순히 '어느 가부장의 영웅담'으로 끝나지 않은 데에는 연출자의 많은 고려가 있었을 것처럼, '남태령' 또한 마찬가지다. 화면을 가득 채운 '논바이너리'라는 성별 정체성을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남태령 집회 당시 '논바이너리'가 적힌 깃발 아래 참가했던 용주 씨의 삶을 대신 보여준다. 비슷하게 영화는, 탄핵 광장을 달군 또 하나의 계기인 페미니즘을 설명하기보다 페미니스트들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기성세대에게 익숙치 않은 '페미니즘'은 남태령에서 수많은 퀴어, 페미니스트들과 만났던 전주환 전국농민회 부경연맹 사무처장의 입을 통해 숙달의 기회를 갖는다.“페미니즘, 페미니즘. 두 번 하니까 좀 낫네요.”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남태령'과 라포를 쌓듯 영화 속 인물들도 낯선 개념, 낯선 이들과 라포를 쌓는 과정을 영화는 부지런히 보여준다.

'남태령'에는 수많은 트위터(현 'X') 상의 트위트들이 화면에 명멸하며 영화의 내레이션 역할을 대신한다. 그 많은 트위트들은 모두 원작자들에게 허락을 받은 결과다. 거기에는 닉네임 및 아이디가 모자이크 처리된 것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는데, 이는 멘션 사용 뿐 아니라 아이디 기재 여부도 모두 당사자의 허락을 받았다는 뜻이다.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 상의 여러 멘션들이 자주 허가 없이 인용되고, 온라인 공간 대다수의 여론인 것 마냥 비춰지며, 개개인을 함부로 '무명씨'로 만드는 언론의 작법을 떠올리면 여기에는 시사점이 많다. 사실 '남태령' 자체가 이들 트위터리안들과 같이 만든 영화이기에, 이들의 이름을 오롯이 호명하는 것은 공동 창작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한동안 뜸하다가 최근 영화 '란 12.3'을 필두로 지난 탄핵 광장을 반추하는 영상 및 저작들이 더러 나오고 있다. 이 모두는 우리에게 한결같이 기록의 중요성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누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더욱 직접적으로는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광장을 빛낸 주역들이 보이지 않는 이번 선거판에서, 이들 콘텐츠가 상기하는 광장의 시대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특히나, 미디어 종사자들이 이들 콘텐츠를 보고서 우리가 기록한 광장과 기록할 광장을 함께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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