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고생 故 이채원 양 사건은 젠더폭력 연속선…제도개선 시급"

전남 지역 여성·인권단체들이 최근 발생한 광주 여고생 故 이채원(17) 양 피살 사건과 관련해 이를 단순한 우발 범죄가 아닌 '단계적으로 진화한 젠더 기반 폭력'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명백한 연속선상의 폭력"
전남여성인권단체연합과 2차가해방지연대 wave, 사단법인 행복누리(젠더플랫폼 '문')는 5일 공동 추모성명을 발표하고 "가해자의 범행은 지역아동센터 여중생 불법촬영에서 시작해 직장 동료 이주여성 스토킹·성폭력, 귀가 중인 여고생 살해로 이어진 명백한 연속선상의 폭력"이라며 "각 단계를 개별 사건으로만 다룬 현행 대응 체계가 결국 마지막 비극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수사기관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면식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분류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단체들은 "일면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동기 불명 범죄로 규정하는 순간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과 가해자가 여성을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온 과정이 지워진다"며 "피해자들이 모두 미성년자와 이주여성, 심야 귀가 여성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무작위 범행이 아닌 체계적 선택의 결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성명에는 전남여성인권단체연합 소속 35개 여성·인권단체를 비롯해 관련 연대체들이 참여했다.
"지역 특성 반영한 여성 안전망 구축"
연합 관계자는 "수도권 중심의 획일적 정책으로는 지역 여성들이 직면한 현실적 위험을 충분히 예방하기 어렵다"며 "돌봄 현장과 이주여성 밀집 지역, 대중교통 취약 지역 등 지역 특성을 반영한 여성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재발 방지를 위해 △여성 대상 반복 범죄 통합 수사 체계 마련 △불법촬영·스토킹 단계에서의 조기 개입 및 강력 대응 △돌봄·공적 업무 종사자에 대한 성범죄 이력 검증 의무화 △지역 맞춤형 여성 안전망 구축 등 4대 제도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불법촬영과 스토킹을 단순 일탈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중대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전조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며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인 개입과 차단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차 가해 행위 중단 촉구
아울러 온라인상에서 확산되고 있는 피해자 신상 공개와 자극적 범죄 묘사 등 2차 가해 행위의 중단도 촉구했다.
단체들은 "피해자 관련 사진이나 신상정보,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공유하는 행위는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2차 가해"라며 "자극적 소비가 아닌 제도 개선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관심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채원 양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유가족의 무거운 결단이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젠더폭력 예방 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고 사회가 책임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