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무싸’에 나온 ‘난감’…그 말이 더 난감하다 [.txt]

한겨레 2026. 6. 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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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견식의 세계 마음 사전
‘감정 워치’에 뜬 말 ‘난감’의 뜻은 뭘까
‘견디기 어려움’에서 ‘난처’로 의미 확장
섬세하고 개인적인 감정은 번역 어려워
인간의 감정을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감정은 매우 개인적이기도 하고, 다수가 두루 쓰는 공통어 안에서 내 느낌에 딱 맞는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은 좋아하는 남자에게 한 여성이 꽃을 주며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는 감정 워치라는 허구의 장치가 주요 소품으로 등장한다. 7화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술자리를 벌이고 나서 마치 학창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술기운에 느닷없이 우르르 밤바다로 몰려간다. 바닷가에서 무리 지어 춤추며 놀다가, 이 나이에 이 체력으로 새벽까지 놀기는 힘든데 혹시 서로 좋아하는 사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튀어나오자, 여배우 장미란이 영화감독 지망생 황동만을 좋아한다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러자 황동만의 감정 워치에 뜨는 말이 ‘난감’이다. 동료로서, 인간으로서 장미란에게 호감이 있지만 남녀 관계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이미 피디(PD) 변은아와 적극적으로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인간적 호감은 있어도 사랑의 감정은 없는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니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서 난처한 느낌을 ‘난감’으로 나타낸 것이다. 일단 ‘반응/무반응’ 중 하나를 골라야 하므로 딜레마적 상황이다. 반응하기를 선택한다면 ‘긍정/부정 반응’에서 골라야 하니, 세가지 선택지의 트릴레마가 되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난감하다’ 항목의 1번 정의 “이렇게 하기도 저렇게 하기도 어려워 처지가 매우 딱하다”가 여기에 부합한다. ‘난감하다’의 원뜻에는 2번 정의 “맞부딪쳐 견디어 내거나 해결하기가 어렵다”가 조금 더 가깝다는 점도 흥미롭다. 조선말 큰사전(1957년)에 난감은 “견디기 어려움, 감당하기 어려움”으로 나오고, 1990년대까지도 민중서림과 금성출판사 국어사전이 각각 “견디어 내기 어려움”과 “감당하기 어렵다”만 제시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부터 진퇴양난에 빠져 난처하거나 거북하고 어색할 때도 자주 쓰면서 의미가 확장됐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의 정의 배열은 전반적으로 의미 변천과 확대의 역사적 순서를 따르지만 이처럼 현재의 주된 쓰임을 앞세우기도 한다.

감당(堪當), 감내(堪耐)에서 볼 수 있듯 ‘견딜 堪(감)’이 쓰여 글자 그대로는 참거나 견디기 어렵다는 의미인데 이 뜻은 매우 희미해졌거나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어떤 곤란한 상태를 견디기 어렵다는 쪽보다는 과제를 해내기 어렵거나 난국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뉘앙스가 지배적이다. 2번 정의의 예문 “살아갈 일이 난감하다”와 “하산할 일이 난감하였다”도 삶의 무게나 하산의 고통을 못 견디는 상태 자체를 뜻하기보다는 수습할 대책이 막막하다는 뜻이다. 1번과 2번 정의가 얼핏 비슷한 듯해도 선택의 길목에서 오는 곤란함과 닥쳐온 현실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서로 구별된다.

중국어에도 어원이 같은 難堪(난칸)이 있는데 한국어와 유사한 의미 확장을 보인다. 원뜻인 ‘견디기 어렵다’도 사전의 예문 天氣悶熱難堪(날씨가 참기 어려울 만큼 무덥다)처럼 아직 문어체에서 쓰기는 한다. 그러나 현재 더욱 많이 쓰는 뜻은 남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는 ‘무안, 민망, 창피’ 쪽에 가깝다. 상황의 무게에 따라 ‘난감함, 난처함, 거북함’과 통하는 구석도 있지만, 내면 심리를 나타낼 때는 더한층 나아가 ‘굴욕, 비참, 치욕, 수치’ 같은 센 어감도 지닌다. 위 드라마의 중국어 자막은 尷尬(간가: 난처하다, 곤혹스럽다, 거북하다, 어색하다)로 옮겼다.

영어 자막은 awkward(오쿼드: 어색한, 거북한, 불편한, 서투른, 난처한, 곤란한)로 번역됐다. 영한사전이든 한영사전이든 90년대까지도 ‘난감하다’를 대개 ‘견디기/감당하기 어렵다’까지만 해석하므로 awkward와 대응해서 보여주는 사전이 드문데, awkward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매끄럽게 처리하기 어려워 불편한 상황을 일컬을 때 알맞다. perplexed(퍼플렉스트)도 사전에 ‘난처한, 당황한, 어리둥절한, 어찌할 바 모르는’으로 풀이돼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미라서 결이 다르다.

영어 더빙에서는 flustered(플러스터드)가 쓰였다. 허둥지둥 당황하거나 안절부절못함을 일컫는다. 옥스퍼드 상급 학습자 사전의 ‘특히 할 일이 많거나 촉박해서 긴장하거나 얼떨떨함’(nervous and/or confused, especially because you have a lot to do or are in a hurry)이라는 정의도 극의 분위기에 잘 들어맞는다. 여자의 장난 같은 고백에 남자는 능청스럽게 못 넘어가고 얼른 대답이 안 나와서 두뇌를 풀가동하는 중이다. 또한 더빙은 입 모양에 맞는 말을 선호하는 편이다. 감정 워치에 뜬 말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난감이 뭐니”라고 묻는 대사의 영어 번역은 어순에 따라 ‘난감’에 해당하는 형용사가 뒤로 간다. ‘뭐니’는 입말에서 ‘머니’에 가까워져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데 어순상 이에 해당하는 awkward의 첫 모음은 상대적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둘째 음절의 w는 입술이 둥글어지니, 이보다는 flustered가 입 모양에 더 잘 맞는다. 시청자 입장에서 자막을 읽을 때는 해당 장면에서 시선이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므로 상황이 곧바로 이해될 말을 선호하고, 더빙을 들을 때는 표정이나 몸짓에 더 집중하게 되니 인물의 상태를 묘사하는 말에 더 감응할 수 있다.

감정은 대개 언어 외적으로 드러난다. 어떤 개별 언어의 감정 형용사나 명사를 딴 언어로 번역하기도 어렵지만, 애초에 인간의 감정을 언어로 번역하기도 어렵다. 감정을 어느 관점에서 봐야 할지 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은 매우 개인적이기도 하다. 그러니 다수가 두루 쓰는 공통어 안에서 내 느낌에 딱 맞는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매우 난감한 일이다.

신견식 번역가

신견식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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