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은 한국을 ‘단검’이라 불렀나
전작권 전환·방위비 압박·인태 전략 재편과 맞물린 신호
(시사저널=김하늬 미국 통신원)
"한국은 아시아의 심장부에 꽂힌 단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한마디가 한중 양국 외교가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고, 한국 정부도 미국 측에 우려를 전달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이후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아시아 안보회의)에서 "작전 환경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라고 해명했지만 파장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실 이번 논란의 초점은 발언 자체보다는 그 배경에 쏠린다. 단순한 말실수로 보기 어려운 데다 최근 그가 내놓은 일련의 발언들과도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취임 이후 한국을 "고정된 항공모함(Fixed Aircraft Carrier)"이라고 부른 데 이어 이번에는 "아시아의 심장부에 꽂힌 단검"이라고 표현했다. 표현은 달라도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인도·태평양 차원에서 재조명되고 있다는 메시지는 일관된다.

주한미군, 대북 억지 넘어 인태 전략 자원으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브런슨 사령관이 최근 전시작전통제권(OPCON) 전환 문제와 관련해 내놓은 발언들이다. 그는 지난 4월 미 의회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정치적 편의(political expediency)가 조건을 앞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속도 조절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셈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당시 한미 양국이 전작권 전환 조건을 2029년 1분기까지 충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기보다는 조건 충족이 우선이라고 거듭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군사적 준비태세를 강조하는 발언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전략 변화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작권 전환은 단순히 지휘권을 한국군에 넘기는 절차가 아니다. 한국군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억제를 주도하고 미군은 좀 더 광범위한 지역 안보 임무에 집중하는 구조 개편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런슨 사령관은 미 의회 제출 서면에서 한반도를 "미국 본토 방어와 미국의 지역 이익 증진에 필수적인 전략 지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북·러 군사협력 심화를 언급하며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냉전 이후 유지돼온 '주한미군=대북 억지력'이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인식이다.
미국 내에서는 중국과의 전략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한국을 북한 방어를 넘어 인태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 브런슨 사령관은 최근 일본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일본·필리핀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이른바 '킬 웹(Kill Web)' 구상을 공개했다. 이후 미 국방부 기관지 '스타스 앤드 스트라이프스(Stars and Stripes)'는 이를 인태 동맹국들을 하나의 작전망으로 연결하는 개념이라고 소개하며 역내 위기 발생 시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작권 전환 역시 단순한 동맹 현안이 아니다. 미 입장에서는 한국군이 한반도 방어를 주도할수록 미군은 보다 유연하게 인태 전역에서 운용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전시 지휘권을 유지할 경우 전략적 선택지가 제약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작권 전환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샹그릴라 대화에서 한국의 전작권 환수 추진에 대해 "동맹국이 더 많은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며 "환영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우리가 계속 장려하고 싶은 본능"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다만 그는 "미군의 작전 계획과 수십 년간 이어져온 책임이 존중되는 지점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강조도 했다. 전작권 전환의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속도와 조건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韓에 더 많은 권한 아닌 더 많은 책임 바라"
브런슨 사령관 역시 같은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역량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앞서 의회 청문회에서 언급한 '2029년 1분기' 목표 시점과도 연결된다. 한국이 조기 전환을 희망하는 것과 비교하면 양국의 시간표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결국 미국이 원하는 것은 전작권 전환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전작권 전환을 경계하는 것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군이 보다 많은 역할을 맡는 것은 환영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미 연합작전 체계와 미군의 역내 전략적 유연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전작권 전환에 긍정적 신호만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동맹국의 역할 확대와 함께 방위비 분담 압박도 한층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샹그릴라 대화에서 동맹국과 파트너국들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늘리라고 재차 요구하며 한국에 대해서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GDP 3.5% 수준의 국방비 증액 계획을 부담 공유의 모범 사례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전쟁을 학문적 연습처럼 여길 여유가 없기 때문에 꾸준히 국방에 투자해 왔다"며 현 정부의 국방비 증액 계획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파트너로서 책임을 다하는 국가에는 무기 판매를 신속히 처리하고 산업 기반 협력을 심화하며 정보 공유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미국 납세자의 관대함에 무임승차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며 부담 공유에 소극적인 동맹국에 대해 사실상 경고 메시지도 보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안보 무임승차론'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에 의존하기보다 동맹국 스스로 더 많은 군사적 책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보수진영에서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보다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미 정치 전문 주간지 워싱턴 이그재미너는 최근 한국을 "중국의 심장부를 향한 단검이자 완충지대"라고 표현하며 미·중 전략 경쟁 속 한반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이 구상하는 미래의 한미 동맹은 한국군이 대북 억제를 주도하고, 미국은 핵우산과 전략자산을 제공하며 인태 전략에 집중하는 구조에 가깝다. 한국의 역할은 커지고 미국의 부담은 줄어드는 방향이다.
이 때문에 브런슨 사령관의 단검 발언과 전작권 전환 논의, 헤그세스 장관의 국방비 증액 요구를 각각 별개의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 사안 모두 미국이 추진하는 동맹 현대화와 역할 재조정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은 권한이 아니라 더 많은 책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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