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좀비의 진화, 익숙한 장르의 규칙을 흔들다

광주일보 2026. 6. 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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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군체’]
연상호 감독 신작…올해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
누적관객 400만…전지현·구교환 등 열연 돋보여
영화 ‘군체’
인간은 함께 배우고 기억하며 정보를 나누는 방식으로 문명을 쌓아왔다. 그 과정에서 언어와 문자, 표정과 몸짓, 억양 등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정보를 축적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능력은 인류가 오늘의 세계를 만들어온 중요한 힘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서로 다른 개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생각은 온전히 옮겨지지 않고, 말은 종종 어긋나며, 감정은 전달되는 과정에서 왜곡된다. 소통에는 늘 틈이 있고 그 틈은 때로 오해와 단절을 낳는다. 그렇다면 소통의 공백을 완전히 없애려는 시도는 인류 진화의 다음 단계일까, 아니면 인간의 불완전함마저 지우려는 오만일까. 영화 ‘군체’는 연결과 단절에 관한 이 질문을 섬뜩한 상상력 위에 펼쳐놓는다.

4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군체’는 누적 관객 404만3755명을 기록했다. 올해 개봉작 가운데 가장 빠르게 400만 관객을 넘어선 것으로, ‘왕과 사는 남자’보다도 앞선 속도다.

‘군체’는 ‘부산행’과 ‘반도’ 등으로 K좀비 신드롬을 이끌었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여기에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 소식이 더해지며 개봉 전부터 기대감을 높였다.

이야기는 생명공학 교수 권세정(전지현 분)이 바이오테크 콘퍼런스에 참석하면서 시작된다. 매드사이언티스트 서영철(구교환 분)의 음모로 건물 안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사람들은 빠르게 좀비로 변해간다. 당국이 시설 전체를 봉쇄하자 내부에 고립된 생존자들은 외부의 구조만 기다릴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입했다고 신고한 서영철을 찾아 구조대가 대기 중인 옥상으로 향한다.

일반적으로 좀비는 전염성과 공격성이 강하지만 지능은 낮고 움직임은 단순한 존재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군체’의 좀비는 이 익숙한 공식을 비튼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던 감염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두 발로 걷고, 도구를 사용하고, 속임수까지 쓰는 등 진화하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초개체(Superorganism)’처럼 움직인다는 점이다. 초개체는 개미나 벌처럼 각각의 개체가 따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전체로 보면 하나의 생명체처럼 질서 있게 움직이는 집단을 뜻한다.

예를 들어 좀비들은 처음에는 사람 크기의 입간판을 인간으로 착각해 달려들지만, 곧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정보는 한 감염자에게만 머물지 않고 집단 전체로 퍼져나간다. 때문에 생존자들이 좀비의 습성을 파악해 한 번 위기를 넘겨도, 다음에는 그 방법이 통하지 않게 된다. 좀비들이 함께 배우고 진화한다는 설정은 익숙한 장르의 규칙을 흔들며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의 몰입을 돕는다. ‘암살’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전지현은 혼란 속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권세정 역을 맡았다. 구교환은 비뚤어진 신념에 사로잡힌 서영철을 특유의 불안한 눈빛과 예측하기 어려운 말투로 표현하며 극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고수 역시 폐쇄된 공간 안에서 각기 다른 생존 본능과 불안을 드러내며 재난 상황의 압박감을 더한다.

다만 영화가 장르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 갈등을 키우는 민폐형 인물, 마지막 순간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배치되는 희생형 캐릭터, 가족애에 기대는 K신파적 정서는 다소 익숙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결말부 전개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는 점, 좀비 영화 특유의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서영철이 꿈꾸는 것은 단순한 바이러스 확산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서로 다른 몸과 생각을 가진 탓에 오해와 단절을 반복한다고 보고, 그 공백을 없애기 위해 모든 개체가 하나의 의식처럼 연결되는 새로운 인류를 만들려 한다. 그의 논리에서 ‘군체’는 인간을 파괴하는 괴물이 아니라 더 효율적이고 완전한 진화의 형태다.

그러나 완전한 연결이 곧 완전한 진보를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로 묶인 집단은 강력해 보이지만, 다양성을 잃는 순간 환경 변화와 위기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정보와 같은 판단에 기대는 사회 역시 하나의 약점이 전체의 실패로 번질 위험을 안고 있다.

‘군체’가 남기는 질문은 결국 우리 사회를 향한다. 더 빠르고 촘촘하게 연결되는 시대에,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과 불완전한 소통의 틈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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