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녀 숨비소리 잦아든다] 9년 된 잠수복 입고 바다로…해녀들, 매일 목숨 건 물질

광주일보 2026. 6. 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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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주 해녀와 비교되는 처우]
경제 부담·행정 지원 부재
잠수복, 지자체 지원 2017년에 단 1회
계절별 두께 달라 年 1회 교체해야 안전
한 벌당 60만원…매년 구입 어려워
안전사고 관리 미흡
그물에 얽히거나 조류 휩쓸리는 사고 다반
완도군 완도읍 망석리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조업을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완도군 완도읍 망석리 앞바다. 조업을 약속한 낮 12시가 되자 승합차 한 대가 해안가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며 5명의 해녀가 일제히 내렸다. 이들은 미리 챙겨 온 테왁망사리와 수경, 빗창, 납벨트 등을 능숙한 손길로 정박해 놓은 배에 실은 뒤 입고 있던 옷 위로 두툼한 고무옷을 빠르게 껴입었다.

선주가 배에 시동을 걸고 키를 잡아채는 동안 해녀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졌다. 허리에는 바닷속으로 몸을 가라앉혀 줄 6㎏짜리 납벨트를 단단히 동여맸고 발에는 거친 물살을 가를 물갈퀴를 신었다.

면장갑을 낀 손목 위로는 두꺼운 고무줄을 여러 번 둘둘 말아 물속에서 벗겨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지난 2017년 완도군으로부터 단 한 차례 지원받았다는 이들의 잠수복은 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친 바닷바람과 파도를 버텨내며 이곳저곳이 하얗게 헤진 상태였다.

특히 오른쪽 옆구리 부분은 심하게 닳아 부스럼이 일어나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해녀 강유향(68) 씨는 “낡은 잠수복 틈으로 차가운 물이 스며들어올 때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며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이 찾아와 처우 개선을 맹세하지만 평생 물질을 하며 행정적 도움을 받은 것은 9년 전이 유일하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수복은 계절별 보온성을 고려해 여름용과 겨울용의 두께가 최대 5㎜ 차이가 난다. 해녀들은 통상 1년에 한 번 고무옷을 교체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현실적인 경제적 부담 탓에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잠수복은 한 벌당 5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데, 이마저도 최근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3년 전에 비해 10만원가량 값이 뛰었다. 날씨에 따라 물질 여부가 늘 불확실한 이들에게 매년 수십만 원에 달하는 장비 교체 비용은 큰 짐일 수밖에 없다.

조례를 제정해 잠수복을 무상으로 내어주는 제주도와 달리 전남 해녀들은 도나 지자체의 별도 지원 없이 모든 비용을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만 한다.

10여 분을 달린 배가 한 섬 앞에 멈춰 섰다. 인근 양식장의 그물에 걸릴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었지만 해녀들이 합법적으로 채취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업 공간이다.

배가 완전히 멈춰 서자 이들은 난간을 딛고 서서 테왁망사리를 한 손에 쥔 채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해녀들은 테왁에만 몸을 기댄 채 거센 물살을 헤치며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선주는 남은 2명의 해녀를 배로 5분 거리인 또 다른 섬에 내려줬다. 3시간 30분이 흐른 뒤 흩어진 해녀들을 태우기 위해 선주는 다시 섬으로 배를 몰았다.

해녀들이 3시간 30분간 바다에서 채취한 전복을 크기별로 분류하고 있다.
선주는 “당장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지역 해녀가 6명이었는데 매년 한 명씩 줄어 올해는 5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해녀들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새로 기술을 배우겠다는 젊은 사람도 없어 자연산 전복이나 소라를 거둬들일 일손이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며, “법적으로 나잠어업 외에 일반 다이버가 수산물을 채취하는 것은 불법이라 해녀가 멸종하면 제아무리 바다가 풍성해도 건질 사람이 없다”고 우려했다.

뱃일만 40여 년을 해온 선주는 이 일대 종사자들의 비극적인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해녀 한 명이 양식장 그물에 얽혀 빠져나오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고, 물살이 유독 거셌던 어느 날에는 타지역에서 원정을 왔던 원로 해녀가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고령화로 한 명 한 명이 귀한 상황에서 수십 년간 바다를 일터로 삼아온 베테랑들조차 자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스러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전남 해상에서는 고령자들이 생계를 위해 무리하게 조업에 나서다 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이날 작업에 나선 이들도 모두 60대에서 70대였다.

지난 2023년 여수 거문도 앞바다에서는 물질하던 70대 해녀가 의식을 잃은 채 동료에게 발견돼 소방 헬기로 급히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앞서 2022년에는 고흥 나로도 인근 해상에서 80대 해녀가 높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수 시간 만에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고흥 도양읍 득량도 인근 해양에서 해삼을 채취하기 위해 잠수했던 70대가 실종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고, 완도 소안도에서는 채취한 수산물을 운반하던 고령의 여성이 인근을 지나던 선박 스크루에 쓸려 중상을 입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해녀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전남도의 안전 대책 수립을 위한 기초 통계 관리는 미흡한 수준이다. 제주소방본부의 경우 해녀 사고 집계를 별도로 분류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반면 전남소방본부에서는 관련 통계를 따로 집계하지 않아 정확한 사고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타 시도의 경우 조업자의 안전을 위한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제주는 물질 시 안전지도원이 동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전남은 개별적이고 소규모로 흩어져 작업하는 추세라 사고 발생 시 초기 발견과 대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안전사고 외에도 업무 특성상 발생하는 잠수병은 이들의 대표적인 직업병이다.

숨을 참고 수심 10m에서 20m 아래까지 반복적으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행위는 인체에 누적적인 손상을 남긴다.

깊은 물 속 높은 수압에서 혈액과 조직에 녹아들었던 질소가 수면으로 급히 올라오는 과정에서 기포를 형성해 혈관을 막거나 신경을 훼손시키는 질환이다.

완도군 완도읍 망석리 앞바다에서 해녀들이 조업을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해녀들은 주로 1분에서 2분씩 숨을 참다가 물 밖으로 나오는 스킨다이빙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60대 이후에는 대부분 이 질환을 앓게 된다.

증상은 관절통, 근육통, 두통, 마비를 비롯해 시력 저하와 뇌졸중 유사 증상까지 다양하다. 심혈관 질환 역시 치명적이다. 차가운 바닷물에 반복 입수하는 행위는 혈관에 극도의 부담을 준다.

최근 3년간 조업 중 사고를 당한 이들 가운데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이 29.6%로 가장 많았다. 연평균 5명 이상이 심장마비로 숨진 셈이다.

특히 새벽의 찬 공기와 차가운 물이 혈관을 급격히 수축시켜 심정지를 유발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 밖에도 이명 현상은 거의 모든 이들이 호소하는 고통으로, 수압에 반복 노출되며 고막과 내이가 손상된 결과다.

하지만 이들은 고용 노동자가 아닌 개별 어업인으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산재 가입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어업인 안전보험을 따로 들어야 하지만 보상 범위나 수준이 일반 산재보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만성적인 직업병 치료비를 제대로 보장받기 어렵다.

제주도의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진료비 무상 지원 제도를 운영 중이나 전남은 전액 자부담으로 진행해야 한다.

실제 섬이 많은 전남의 지형적 특성과 활동 반경을 고려했을 때, 응급 사고 발생 시 환자를 곧바로 대형 병원으로 이송하기는 쉽지 않다.

중증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하늘길 안전망마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남 유인도서 232곳 중 닥터헬기 이착륙 시설이 설치된 섬은 70곳에 불과했다. 설치율이 30.2%에 그친 셈이다.

닥터헬기는 차량이나 선박 접근이 어려운 도서 지역에서 중증 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하는 인명 구조 특화 장비지만 응급상황 시 날아다니는 응급실 역할을 해야 할 헬기가 내릴 곳조차 없는 섬이 70%에 달하면서 바다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고령자들의 골든타임 확보에 치명적인 공백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강 씨를 비롯해 이날 바다로 뛰어든 해녀들은 모두 힘이 닿는 만큼 물질을 계속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날씨에 따라 언제 낯빛을 바꾸고 돌변할지 모르는 거친 바다지만 수십 년간 묵묵히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온 그들에게 이곳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일터다.

/완도 글·사진=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완도=정은조 전남총괄취재본부장 ejhu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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