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금리까지 올리면 1600원 넘는 ‘원·달러 재앙’ [트럼프 스톡커]
환율 1560원으로 급등...외환위기 수준 근접
美 새 관세, 전쟁 장기화...외인 120조 ‘팔자’
스페이스X 상장도 악재...구윤철 효과는 ‘0’
미국 물가 뛰고 고용은 안정...韓변동성 최고
올 금리인상 확률 71%...달러 ‘썰물’ 가능성

최근 중동 전쟁 장기화, 원유 구입 비용 증가, 한국 증시 외국인투자가 이탈, 대기업 달러 축적 등의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상호관세를 대체할 새 관세를 다음달 부과하는 과정에서 대미 투자에 대한 추가 요구를 내놓을지도 환율에는 중대 변수다. 여기에 고용은 안정적이고 물가만 오르는 미국이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면서, 원·달러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처음으로 1600원대까지 진입할 위기에 빠졌다. 원·달러 환율이 지나치게 빠르게 오를 경우 수입 물가가 급등하게 돼 한국은행도 3년 만에 금리 인상 기로에 놓이게 된다. 미국과 한국이 통화긴축을 시도하면 반도체 등 그간 급등했던 업종을 중심으로 양국 증시도 상당 부분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 급등은 2일(현지 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새 관세 계획 발표가 촉발했다. USTR은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거래를 막지 못한 60개 경제권에서 들어온 수입품에 다음달께 10%나 1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염전 노예, 불법 어업 등을 빌미로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의 도입과 효과적 집행에 모두 실패한 54개 경제권 그룹에 포함돼 12.5% 관세 부과 대상이 됐다. 10%가 아니라 12.5%를 부과받는 그룹에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 브라질,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 베트남 등이 포함됐다. 캐나다, 에콰도르,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멕시코, 파키스탄 등 6개 경제권만 10% 관세를 적용받는다.
앞서 USTR은 올 3월 11일부터 중국, EU, 한국, 일본, 싱가포르, 스위스,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대만, 방글라데시, 멕시코, 인도 등 16개 경제 주체를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에 착수했다.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와 펜타닐 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하자 이를 대체할 수익원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에서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 행동 등에 맞서 미국 행정부에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준다. USTR은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과 관련된 별도 301조 조사도 3월 12일 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담과 달리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무력을 다시 행사하기 시작한 점도 환율에 악재가 됐다. 또 중동 불확실성에 국제 유가가 연일 오르면서 한국에 수입 물가 부담이 증가한 점도 환율 상승에 반영됐다. 원·달러 환율 1개월물은 서울외환시장이 개장하기 전인 3일, 역외시장인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이미 1533원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4일 장중 구두 개입은 시도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시장상황점검회의를 갖고 “환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과도한 쏠림에 즉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구 부총리의 발언은 시장에서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이탈하는 상황도 외환시장에는 고질적인 위험 요인이 됐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달 7일부터 이달 5일까지 무려 20거래일 연속 주식을 내다팔았다. 이 기간 누적 순매도 규모만 81조 2389억 원에 달한다. 기간을 올 들어 이달 5일까지로 확대하면 그 규모는 119조 517억 원으로 늘어난다. 5일에는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브로드컴 효과로 외국인이 한 차례 또 이탈하며 외환시장을 흔들었다. 브로드컴은 3일 뉴욕 증시 마감 뒤 실적을 공표하면서 연간 인공지능(AI) 반도체 매출 전망을 상향하지 않았다. 이 소식에 5일 코스피지수는 삼성전자(005930)(-6.40%), SK하이닉스(000660)(-9.92%) 등 반도체주를 필두로 5.54% 급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5일 주간거래에서도 1539.1원에 거래를 마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심지어 같은 날 인천국제공항 내 은행 환전 창구의 달러 현찰 매입 환율은 1600원까지 넘어섰다. 구 부총리는 5일에도 비상경제본부회의에서 “최근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민생 물가가 어려운 점에 대해 각별히 경각심을 갖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 발언 이후에도 외환시장은 좀체 안정되지 않았다.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야간거래에서는 원·달러 환율의 오름세가 더 가팔라졌다. 6일 서울외환시장 야간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1559.0원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는 1561.5원까지 치솟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6일(1597.0원) 이후 17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이 올라갔다.
한국 외환시장에 기름을 부은 것은 미국의 5월 비농업 고용보고서였다. 이날 미국 노동부는 5월 비농업 부문 고용이 4월보다 17만 2000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 8만 명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노동부는 3월과 4월 일자리 증가폭도 2만 9000명, 6만 4000명씩 총 9만 3000명을 상향했다. 5월 실업률은 4.3%를 기록해 4월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다.
전쟁통에도 미국의 고용 상황이 너무나 안정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금융시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5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1.3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2.65%), 나스닥종합지수(-4.18%)는 위험자산 회피 심리 확산으로 일제히 떨어졌다. 엔비디아(-5.96%), 브로드컴(-7.76%), 마이크론(-12.87%) 등 최근 상승폭이 컸던 반도체주가 특히 직격탄을 맞았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10.26% 폭락했다.
가상화폐 시가총액 1위 종목인 비트코인 가격은 장중 한때 6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가상화폐에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24년 11월 이후 최저치였다. 지난해 10월 6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 12만 6210달러에 비하면 8개월 만에 52.7%나 하락했다. 가상화폐 매집 기업인 스트래티지가 최근 비트코인을 매각한 데다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자금이 유출된 영향도 있었다.

양호한 고용지표가 잇따르자 월가는 연준이 당분간 노동시장 활성화보다는 물가 안정에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고용 정보 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도 3일 보고서에서 5월 민간 고용이 4월보다 12만 2000명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였던 11만 7000명보다 많은 수치였다. 고용정보 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 또한 4일 보고서에서 올 1∼5월 미국 전체 고용주들의 감원 발표 규모가 지난해 동기보다 7% 감소했다고 집계했다. 연준 역시 3일 발간한 6월 경기동향 보고서(베이지북)에서 “대다수 지역에서 ‘저채용·저해고’ 기조가 이어졌다”며 “제조업 분야에서는 채용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고용과 달리 미국의 물가는 여전히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연준이 통화정책 준거로 삼는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4월 들어 전년 동기 대비 3.8% 올라 2023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가격지수의 상승률도 3.3%로 2023년 10월 이후 가장 높았다. 연준이 정책 목표로 삼는 물가 상승률은 2.0%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자 미국 주택담보대출과 우량 회사채의 준거 지표가 되는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5일 심리적 저항선인 5.0%를 장중 다시 돌파했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추종 지표(벤치마크)인 10년물 금리도 심리적 저항선인 4.5% 위에서 거래를 마쳤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0.11%포인트 뛴 4.16%로 장중 치솟아 지난해 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5일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올 연말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확률을 총 71.1%로 반영했다. 이는 전날 50.5%에서 크게 오른 수준이었다. 금리 동결 확률은 47.4%에서 27.9%로, 금리 인하 확률은 2.2%에서 1.0%로 각각 떨어졌다. 지난달 22일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업고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취임했지만, 시장에서는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당장 관철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최근 원화 가치의 폭락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원화 가치의 하락폭이 다른 통화보다 유독 큰 탓이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의 에너지 수급 구조상 국가 경제 자체가 다른 나라보다 중동 악재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의 특성도 한국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반도체 초호황에도 달러 강세를 예상한 대기업들이 시중에 미국 돈을 쉽게 풀지 않는 점도 원·달러 수급 불균형의 또 다른 요인이다.
그나마 현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위기를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269억 9000만 달러(약 649조 원)로 4월 말보다 8억 8000만 달러 감소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4월 말 기준 4279억 달러로 세계 12위다. 달러 보유액은 중국(3조 4105억 달러), 일본(1조 3830억 달러), 스위스(1조 823억 달러), 러시아(7587억 달러), 인도(6907억 달러), 대만(6025억 달러), 독일(5992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4948억 달러), 이탈리아(4561억 달러), 프랑스(4494억 달러), 홍콩(4421억 달러) 순으로 많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중동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준까지 돌연 금리를 올릴 경우 외국인의 투자 자산은 한층 더 급격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달러화 자산을 보유하기만 해도 연 4~5%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굳이 변동성이 큰 한국 시장에서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어지는 까닭이다. 코스피시장에서 1500원짜리 주식의 가격이 33% 올라 2000원이 되더라도, 그 사이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서 2000원이 상승한다면 외국인이 인출하는 돈은 결국 같은 1달러일 뿐이다.
이에 더해 오는 12일로 예정된 미국 스페이스X와 하반기를 겨냥한 앤스로픽, 오픈AI의 상장도 한국 외환시장에 추가적인 부담을 줄 전망이다. 이들은 모두 기업공개(IPO)와 동시에 미국 내 시가총액 10대 상장사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회사다. 세 기업을 통해 뉴욕 증시에 대한 한국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경우, 달러 유출은 다시 한번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상당수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의 상단을 1600원 이상까지 열어두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600원을 넘어서면 이는 장중으로는 2009년 3월 2일(1613.0원) 이후 17년, 종가로는 1998년 3월 23일(1615.0원) 이후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된다. 이제 시장의 시선은 워시 의장이 처음으로 주재하는 오는 16∼17일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로 쏠리고 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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