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잠실에서 본 광경…선관위 존재 이유를 묻다[청계천 옆 사진관]

이번 주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투표용지가 없어 난리가 난 그 현장 중 한 곳인 잠실7동 제2투표소가 마련된 아파트 경로당 앞에 제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5분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기자들은 속속 도착하는데 정작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제제기를 하는 유권자들과 주민센터 공무원들과의 언성이 높아지지만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거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들린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윤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이 부정선거 얘기를 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투표용지가 없어서 투표를 못 하는 걸 직접 겪고 나니, 부정선거 주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신문사에 있으면 선거관리위원회와 관련된 취재를 참 많이 하게 됩니다. 투표와 개표는 물론이고 선거 D-100일, 투표용지 인쇄, 기표소 관리 요원 교육까지 모든 과정이 다 뉴스입니다. 선관위가 일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선거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화면을 보면서, 아직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유권자들의 모습에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의 보루로 불리던 선관위는 언제부터 이렇게 흔들리기 시작한 걸까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궁금해서 옛날 사진들을 찾아봤습니다.
투표용지 앞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표정이 자못 심각합니다. 선관위는 심판이었습니다. 서슬 퍼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말입니다.

선관위는 권력으로 가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이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당선을 확인하는 당선증을 김종필씨가 대리 수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유권자에게 다가갈 선거벽보가 규정에 맞는지 살피는 일도 선관위의 몫이었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오는 개표 결과를 일일이 손으로 적어 넣던 고단한 시간도 있었습니다.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불법 선거 현장을 단속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아마 그 과정에서 선거운동원들과 많은 마찰을 빚는 힘든 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꽹과리를 치며 분위기를 띄우는 것조차 위법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책임지고 관리했던 것도 선관위의 몫이었습니다.

선거가 점점 중요해지면서 예산도 늘었나 봅니다. 첨단 비행선을 띄운 홍보가 시작됩니다.

당연한 실무 교육마저 뉴스가 되었습니다. 선관위의 활동 하나하나가 신문과 방송의 주요 소재가 되어 유권자인 국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선관위원장의 대국민담화는 생방송으로 전해지는 관행까지 생겼습니다. 그렇게 선관위의 존재감은 국민의 머릿속에 강하게 새겨졌습니다.

홍보가 더욱 화려해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입니다.

기표소로 가는 화살표 디자인까지 더 눈에 띄게 바꿨습니다.

직원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는 투표 독려 캠페인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신문과 방송이 선관위의 활동을 자주 보도하고 국민들이 그토록 관심과 응원을 보낸 것은, 하늘에 띄운 비행선이나 거리의 캠페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잘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잘해 달라”는 국민과 유권자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번 일을 두고 선관위가 꼭 필요한 조직이냐는 물음까지 나옵니다.
우리가 이 조직을 오래 신뢰해 온 것은, 불법 선거운동을 단죄하고 무더기표를 가려내고, 밤새 들어오는 개표 결과를 한 자 한 자 손으로 적어 넣던 그 모습 때문이었을 겁니다. 앞으로 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은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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