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도 전기화 시대… 공기열히트펌프 보일러 뜬다 [New & Good]
기후부, 2035년까지 350만 대 보급 목표
제주서 시범 사업… 가전·보일러 업계 경쟁
경동나비엔 '난방 전기화 센터 제주' 개소

"기름 보일러는 냄새도 나고 기름 떨어지나 일주일에 한두 번은 확인해야 해 번거로웠는데 바꾸니 너무 편하네요."
제주 토박이 박용규(74)씨는 지난해 11월 주택 난방용 기름보일러를 공기열히트펌프 보일러로 교체했다. 기름 냄새와 번거로움에서 해방됐다는 그는 요즘 동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제주도의 시범 사업 참여를 권유하고 다닌다.

자동차에 이어 난방·온수 시장에도 '전기화' 바람이 불고 있다.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난방·온수 분야 전기화의 선두에 선 것은 공기열히트펌프다. 화석연료를 태우지 않고 열을 끌어모으는 방식이라 탄소중립 실현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주거용 히트펌프 시장이 2032년 1,500억 달러(약 215조 원) 규모로 전망되자 경쟁도 치열하다. 삼성전자·LG전자를 비롯한 가전 기업부터 경동나비엔 등 보일러 회사까지 차세대 기술 선점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28일 경동나비엔은 제주시 오라이동에 '나비엔 난방 전기화 센터 제주'를 열고 공기열히트펌프 사업을 본격화했다. 국내에 제품 정식 출시를 앞두고 제주를 전초기지로 삼아 설치·서비스·실증 데이터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용범 경동나비엔 영업마케팅 총괄 부사장은 "제주에 몇천 대 보급하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탄소중립을 향한 10년, 20년짜리 여정의 첫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에어컨 닮은 검은 실외기… 실내에는 탱크와 배관

히트펌프는 화석연료에서 열에너지를 얻는 기존 보일러와 작동 원리부터 다르다. 열에너지는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자연의 이치지만 히트펌프는 영하 10도의 차가운 외부 공기에서도 열을 긁어모아 실내로 보낸다. 히트펌프 실외기가 짙은 검은색인 것도 외부에서 열을 더 잘 끌어오기 위해서다. 전기 1킬로와트시(㎾h)를 사용하면 최대 4㎾h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화석연료 100을 태울 경우 80~90의 열에너지가 나오는 일반 가스보일러와 비교해 효율이 매우 뛰어나다.
히트펌프 구조는 이날 실증 주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집 외부의 검은색 실외기가 공기 중의 열로 물을 데우면 뜨거워진 물은 배관을 타고 실내 보일러실로 이동한다. 보일러실 안에는 데워진 물을 저장하는 대형 축열탱크와 노란·빨간·파란색 보온재로 감싼 배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기름보일러가 있던 자리를 대신한 것들이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히트펌프 본체 외에 축열탱크, 난방·온수 통합 배관 유닛 '히티허브', 각 방의 제어장치까지 시스템 전체를 일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 타사와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 첫 시험대 제주

정부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공기열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 보급을 목표로 내걸었다. 목표 달성 시 온실가스 518만 톤을 감축할 수 있다는 게 기후부의 계산이다.
첫 시험 무대는 제주다. 제주도는 '제주 생활 속 히트펌프 보급 사업'을 통해 올 상반기에만 1,042가구를 모집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활발한 제주는 도시가스 배관이 제대로 깔리지 않아 기름·액화석유가스(LPG) 의존도가 높다. 히트펌프 보급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히트펌프 설치비는 1,400만 원 정도인데, 보급 사업 대상에 선정되면 70%가 지원돼 소비자 부담이 420만 원 선으로 줄어든다.
아파트 보급, 요금제… 넘어야 할 산 많아
기대감 못지않게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공동주택 보급이 난제다. 히트펌프 설치에 필요한 300리터(L) 용량의 축열탱크 무게가 3톤에 달해 현행 건축법상 하중 기준을 초과한다. 법 개정과 건설사 협의 없이는 아파트 보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요금제도 걸림돌이다. 기후부가 올해 4월 누진제 면제 요금제를 도입했지만 사계절 기본요금을 사용량과 무관하게 내야 하는 구조는 그대로다. 현재 사용자인 박씨가 "전기차 충전처럼 기본요금 없이 쓴 만큼만 내면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한 말에도 이런 현실이 담겨 있다. 방진원 경동나비엔 BM(비즈니스 마스터)센터장도 "히트펌프 전용 요금제가 정비돼야 유인이 커진다"고 말했다.
제주= 전예현 기자 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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