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읽는 뉴스와 기계가 읽는 뉴스
[AI와 저널리즘]
[미디어오늘 오세욱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최근 영국의 시사주간지는 챗GPT 안에서 직접 작동하는 전용 앱 '이코노미스트그래프(The EconomistGraphs)'를 공개했다. 주요 언론사 가운데서는 첫 사례다. 이용자들은 챗GPT에 이 앱을 설치한 후 질문하면, 이코노미스트가 운영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 추적기의 데이터를 미국 주, 인구통계, 이슈별로 구분해 시각화된 차트로 받아 볼 수 있다. 단, 주요 언론사 중에 처음일 뿐이지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는 아니다.
시장 정보나 기업 분석을 다루는 일부 서비스들은 이미 비슷한 챗GPT 앱을 선보인 바 있다. 주목할 부분은 이코노미스트가 이번 시도를 규정하는 방식이다. 생성형 AI 부문 부사장 조쉬 문크(Josh Muncke)는 이 서비스의 목적이 클릭 수를 좇는 것이 아니라, 챗GPT 이용자가 누구이며 어떻게 뉴스를 소비하는지 알아보려는 '탐색적 실험'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물에 발을 담가 보는 것(testing the waters)'이라고 언급했듯이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일단 시험해 보고 데이터를 모으며 방향을 잡아 가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코노미스트가 굳이 챗GPT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챗GPT의 주간 활성 이용자는 9억 명을 넘는다. 문크 부사장은 젊은 층이 무언가를 찾을 때 가장 먼저 챗봇을 켜는 경향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음을 강조한다. 독자를 자사 홈페이지로 불러들이는 대신, 독자가 이미 머무는 곳으로 언론사가 찾아간다는 의미다. 이는 '제로 클릭(zero-click)' 현상을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챗봇이 언론사 사이트로 트래픽을 거의 보내지 않는다면, 답이 만들어지는 그 자리에 콘텐츠를 직접 제공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AI에게 모든 것을 열어 두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직 오픈AI를 비롯한 어떤 상업용 AI 기업과도 콘텐츠 라이선스 계약을 맺지 않았다. 이 앱이 트럼프 지지율 추적기 데이터만 다루는 것은 이 데이터가 자신들의 지불장벽(paywall) 바깥에 공개돼 있던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유료 구독 모델을 흔든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비슷한 시기에 '두 갈래 인터넷(two-track internet)'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것에서 이 서비스의 근본적인 목표를 알 수 있다. 하나는 사람이 풍부하게 읽도록 설계된 기존의 웹이고, 다른 하나는 AI 에이전트가 읽기 좋도록 구조를 단순화하고 텍스트 중심으로 다시 구축한 '에이전트 가독성(agent-readable)' 버전이다. 문크 부사장은 앞으로 이용자들이 홈페이지나 검색창이 아니라 'AI 중개자'를 통해 정보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이러한 판단 아래 사람을 위한 뉴스와 기계를 위한 뉴스를 동시에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대응처럼 보이지만, 누가 뉴스를 보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진다.
AI 요약이 대세가 되어 가는 흐름 속에서 언론의 기사는 'AI가 요약할 때 참고하는 가장 정확한 원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코노미스트의 실험은 그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사례다. 여기서 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이용자들에게 읽히는 언론사로 자리잡기 위해, 기계가 잘 읽도록 기사를 다시 쓴다는 것이다. 이용자와 언론사 사이에 'AI 중개자'라는 제3자가 들어서고, 무엇을 보여줄지 고르고 요약하는 일은 점점 그 중개자의 몫으로 넘어간다.
저널리즘을 민주주의 공론장의 관점에서 정의하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어 시민들의 대화를 촉진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용자가 챗봇에게 “트럼프 지지율이 지금 어떤가”라고 물어 정돈된 차트 하나를 건네받을 때, 그는 자신이 묻지 않은 다른 사실이나 우연히 마주쳤을 다른 기사, 미처 떠올리지 못한 다른 관점과는 만나기 어려워진다. 언론사가 기계에 맞춰 콘텐츠를 명료하게 다듬을수록 답은 깔끔해지지만, 그 답 바깥의 세계는 보이지 않게 된다. 무엇을 묻느냐가 무엇을 보느냐를 결정하고, 묻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뤄진다. '뜻밖의 발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점 작아진다.

물론, 이코노미스트의 이번 시도를 어떻다고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스스로 '실험'이라 부르듯, 이것이 AI 시대에 양질의 저널리즘이 살아남는 길일 수도 있고, 언론사와 이용자의 직접적 관계가 사라지는 시작일 수도 있다. 사람을 위한 뉴스와 기계를 위한 뉴스가 갈라지기 시작한 지금, 언론은 기계에 잘 읽히는 일과 사람에게 의미 있게 읽히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새로 잡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시민들에게도 같은 무게의 숙제가 남는다. 챗봇이 건네는 정돈된 답에 익숙해질수록, 우리가 묻지 않아 끝내 보지 못한 것들을 어디에서 봐야 하는지, 그 경로를 새로 찾아야 한다. 뉴스를 발견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것은 우리가 세계를 발견하는 방식이 바뀐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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