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수도’ 피지, 중국에서 쿼드로 기울까 [.txt]

한겨레 2026. 6. 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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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현실지구
중국과 가깝던 피지, 최근 쿼드와 협력
쿼드 4국, 인프라·광물 협력으로 맞불
엇갈린 이해관계 속 대체 공급망 표류
2025년 8월 중국 해군 병원선 ‘실크로드의 방주’호가 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수바 항구에서 출항하고 있다. 이 함정은 피지에서 7일간의 우호 방문과 인도주의적 의료 서비스를 수행한 뒤 인근 섬나라 통가로 향했다. 신화 연합뉴스

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수도인 수바. 이곳은 330여개 섬으로 이뤄진 이 나라에서 인구가 밀집한 비티레부섬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나라 전체 인구 93만명의 3분의 1이 수도와 그 주변에 몰려 산다. 국토 전체 면적이 1만8천㎢에 불과하지만 주변 섬나라들 중에선 개중 크다. 그래서 수바는 피지의 중심일 뿐 아니라 ‘남태평양의 경제·문화 수도’로 불린다. 외국 기업들, 국제기구 사무소, 각국 외교 공관들이 여기 모여 있기 때문이다. 항구도 크다. 1912년 목조 구조물로 시작된 킹스워프 항구는 1961년 콘크리트 데크로 다시 지어져 태평양의 화물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태평양 섬나라들이 오랫동안 대만 편에 섰다가 근래 중국으로 갈아탄 것과 달리 피지는 1975년 일찌감치 베이징과 손을 잡았다. 1985년 후야오방 공산당 서기를 시작으로 리펑 부총리, 첸치천 외교부장 등 중국 고위 인사들이 꾸준히 피지를 방문했다. 2000년대 들어와 피지는 ‘북쪽을 바라보는’ 정책을 선언하고 중국과 관계를 더 강화했다. 2006년 쿠데타가 일어나 피지 정권이 뒤집혔을 때 서방은 쿠데타 세력을 비난하며 원조를 줄였지만 중국은 오히려 지원을 늘렸다. 100만달러에 불과했던 중국의 원조액은 2007년 1억7천만달러로 불어났다.

쿠데타 이후 민주주의가 복원되지 않고 있다고 국제사회가 피지를 압박하던 2009년 2월에는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보란 듯이 수바를 방문했다. 중국의 함선들이 수바를 보급 기항지로 이용했고, 중국 함정이 수바를 발판 삼아 정탐을 하고 있다며 오스트레일리아가 발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근래에는 중국의 오만한 행보로 갈등이 불거졌다. 2020년 국경일 행사를 하던 대만대표부 사람들을 중국대사관 직원들이 폭행해서 피지를 곤란하게 했다. 중국 배들이 멋대로 드나들자 지난해 6월 피지 총리는 “중국 군사기지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영해를 존중해 달라고 요구했다.

중국에 너무 휘둘린다 싶어서일까. 피지가 이번엔 북쪽 대신 서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발맞춰 온 4개국 안보협의체 쿼드(Quad)가 피지에 ‘미래 항구’ 시범사업을 한다고 지난 5월26일 발표했다. 미국, 인도, 일본, 오스트레일리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태평양 도서지역 인프라 지원 계획이다. 대상지는 수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군함들은 섬나라들을 징검다리 삼아 드넓은 태평양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피지에 항구 인프라를 지어주겠다는 쿼드 발표는 누가 봐도 중국 견제용이다.

2026년 5월26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쿼드(Quad) 외교장관 회의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페니 웡 오스트레일리아 외교장관(왼쪽부터), 수브라마니암 자이샹카르 인도 외교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인도 뉴델리에서 회동한 쿼드 외교장관들은 또 첨단산업에 필요한 핵심광물의 채굴, 가공, 재활용을 포괄하는 ‘핵심광물 이니셔티브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중국의 공급망 장악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정부는 ‘팍스 실리카’(반도체 동맹), ‘프로젝트 볼트’(핵심광물 무역지대) 등의 대체 공급망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쿼드도 미국 구상의 중요한 축이다. 네 나라는 이미 양자 간 협력협정들을 맺고 있는데, 이번에 쿼드 차원으로 확대해 핵심광물 분야에 최대 2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에 밉보여 광물 수입을 마음대로 못 하는 일본에는 쿼드가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을 걱정하는 오스트레일리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제개발 속도를 내면서 역내에서 몸집 키우기에 열심인 인도가 가장 반기는 듯하다. 인도 신문 더힌두는 지난해 2월 나렌드라 모디 총리 방미 이후 미국과의 핵심광물 협력이 주요 의제가 됐다는 점, 이번 쿼드 합의 외에 미국과 인도 간 별도의 협력협정이 체결된 점 등을 강조했다. 인도 뉴델리에 본사를 둔 뉴스미디어 엔디티브이(NDTV)는 이번 공동성명이 “인도·태평양 질서 재편을 위한 전략적 선언문이자 실행 청사진 성격”이라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공동성명은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강압적 행동에 우려를 표했고, 지난해 인도 잠무카슈미르에서 일어난 테러를 규탄했는데, 중국과 파키스탄을 겨냥한 것 모두 인도가 바라던 바다.

중국은 “배타적인 파벌 형성이나 블록 간 대결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그런데 ‘반중국 핵심광물 공급망’은 어느 정도나 현실성이 있을까? 쿼드 국가들은 각기 강점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자원 부국이고, 미국은 기술을 갖고 있고, 일본 역시 자본과 채굴·가공 분야의 경험이 풍부하다. 인도는 미개발 자원이 많고 제조업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인도의 옵서버리서치재단은 2024년 10월 보고서에서 ‘자원 공급국 오스트레일리아-제조 허브 인도-기술 선도국 미국-자본 공급자 및 촉진자 일본’으로 이뤄지는 쿼드 국가들의 역량을 부각시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나 여전히 약점이 더 두드러진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광물은 여전히 중국으로 가장 많이 간다. 2022년 인도네시아의 니켈이 대거 중국으로 향하자 오스트레일리아의 광업회사들이 줄줄이 사업을 중단하는 등 취약성을 드러냈다. 핵심광물 정제, 가공 역량은 중국이 압도적이다. 네 나라 협력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지 또한 유동적이다. 중국이 공급망 통제로 맞대응하면 자칫 세계의 자원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으로 흐를 수 있다.

쿼드가 공급망 협력을 다짐한 지는 2년이 넘었지만 2024년 9월 회의 이후 정상회의조차 못 열었다. 지난해 인도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인도가 러시아 석유를 계속 사고 있다는 미국의 불만 때문에 틀어졌다. 인도는 내년에라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델리를 방문하고, 그참에 쿼드 정상회의도 열길 바란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외교장관들은 정상회의 시기나 장소를 정하지도 못했다. 얼마 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에 대해서는 무역협정이 성사되지 않으면 안 간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속내가 제각각인데, 글로벌 공급망은 고사하고 피지의 항구 건설 공사조차 잘될는지 불투명하다. 중국의 횡포도 문제이지만 편 가르기로 미래 경제와 안보를 창조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구정은 국제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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