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에어컨을 틀었다 [변태섭의 세상 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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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창으로 세상을 청진합니다. 난해한 전문 지식은 알기 쉽게 풀고, 사회 현상의 이면을 짚어봅니다. 병원 문턱을 넘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온 의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6월도 되기 전에 에어컨을 틀었다. ‘계절의 여왕’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5월의 봄은 스치듯 지나갔고 길거리에는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의 사람으로 넘쳐난다. 벌써 이렇게 더운데 한여름엔 어쩌나 하는 푸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7~8월의 불볕더위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때 이른 된더위란 점이다.
우리 몸은 계절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를 '열 순응'이라 한다. 기온이 오르면 땀 분비가 많아지고 혈관이 확장되면서 체내에 쌓인 열을 효과적으로 배출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보통 2주일 안팎이 소요되는 이 과정이 채 완료되기도 전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된더위는, 아무런 준비 없이 우리 몸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다.
열 순응이 되지 않은 몸은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쉽게 피로해진다. 평소라면 견딜 수 있는 더위에도 어지럼증과 두통, 탈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 같은 고온이어도 발생 시기에 따라 몸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 2016년 국제학술지인 ‘미국역학회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초여름에 폭염이 있을 경우 사망 위험이 최대 2.03배까지 높아졌다. 반면 늦여름에는 동일한 기온의 폭염이 있더라도 사망 위험이 최대 1.41배 오르는 데 그쳤다. 더위 자체보다 더위에 대한 적응 여부가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을 포함한 미국·영국·일본·스페인 등 9개국 305개 지역의 1985~2012년 기온과 사망자 수를 분석한 결과다.
피해의 크기는 누가 그 더위에 노출되는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진이 2009~2012년 서울 전체 사망자 3만3,544명을 분석한 결과, 교육수준이 낮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 폭염에 따른 사망위험이 18% 높았다. 상대적으로 녹지가 부족한 곳에 살거나, 주변에 병원 수가 적은 곳에 거주할 경우에도 사망위험이 각각 18%, 19% 컸다. 냉방 시설을 갖추지 못한 환경과 더위를 피할 그늘조차 마땅치 않은 일터, 이상 증세가 생겨도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하는 현실에 따라 무더위의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누구에게는 잠시 불편한 이 계절이 어떤 이에겐 위협이 될 수 있다. 때 이른 무더위와 함께 시작된 이들의 여름나기는 생각보다 더 길고 고될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무더위에 쉽게 지치고 피로감을 느낀다면, 아직 여름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지 못한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물을 조금 더 자주 마시고, 더운 시간대를 피해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몸은 새로운 계절에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우리 몸이 이른 더위에 적응할 준비가 필요하듯, 주변에 더위로 힘겨워하는 이웃은 없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건 어떨까.

변태섭 의학담당 기자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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