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소녀 ‘진정성’에 쏟아진 환호…우린그저 공감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진송 2026. 6. 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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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 영상의 한 장면. 리센느 미나미(왼쪽)와 원이. 유튜브 갈무리

케이팝은 고군분투의 장르였다. 시장이 커진 뒤로는 대형 기획사의 기획력과 자본이 성공 여부를 크게 좌우하지만, BTS가 된 방탄소년단의 소통, 여자친구의 빗속 투지, EXID의 끼 같은 ‘중소의 기적’은 여전히 절실함과 진정성이 관건이다. 끊기는 듯 했던 계보를 최근 알고리즘을 점령한 거제소녀 ‘원이’와 “거제, 야호!”의 주인공 ‘미나미’가 이어받았다. 두 사람은 걸그룹 ‘리센느(RESCENE)’의 멤버이다. 2024년 데뷔 후 신생 기획사의 아이돌이라는 한계에 부딪힌 차에 유튜브로 새로운 활로를 뚫었다. 2025년 8월 웹 예능 <나의 연수 아저씨>에 출연한 리더 원이가 관심을 받으면서, 2026년 2월 원이의 개인 유튜브 채널이 개설되었다. 채널명은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원이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통하며 괜찮은 조회수를 기록하던 중 멤버 미나미와 진행한 ‘갸루 콘셉트’가 홈런을 쳤다. 경주 출신의 멤버 제나와 진행한 사투리 콘텐츠, 그리고 원이와 미나미가 함께 거제에 방문한 영상도 연달아 큰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썼던 리센느의 흔적과 좋은 노래에 대중이 반응하며, 2024년 노래 ‘러브어택(Love attack)’이 심상찮은 역주행 중이다. 리센느의 도약을 응원하며, 오늘은 원이의 유튜브를 중심으로 ‘진정성’의 의미와 결을 톺아보고자 한다.

갸루는 ‘girl’의 일본식 발음으로, 화려한 메이크업과 패션, 자유분방한 태도를 포함하는 문화 혹은 이를 즐기는 여성을 뜻한다. 미나미와 함께 갸루 문화를 체험하던 중, 원이가 “너 이러고 거제 오잖아? 거제 시민한테 혼나.”라고 말한다. 고향인 거제를 자주 언급하는 원이가 보기에, 털털하고 담백한 도시의 성향과 한껏 꾸민 채 시종일관 콧소리를 내는 갸루가 상극인 탓이다. 그 순간 미나미가 “거제, 야-호!”라고 받아친다. 원이는 순간 얼이 빠져 되뇌인다. “거제 야호?” 이 장면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상반기의 밈을 장악했다. 혼낸다는 말에는 위계가 존재하고, 그것은 갸루라는 스타일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선과도 겹치며, 이는 갸루가 일본에서 저항적 의미를 획득하는 하위문화인 이유로 이어진다. 갸루는 튀지 않고, 공손하며, 정숙한 여성을 선호하는 문화 규범을 타격한다. 어떻게? 실없고 발랄하게, 과장되게 여성적인 방식으로. 그러면 잔뜩 힘을 줬던 엄숙함은 균형이 무너지며 픽 꺾어질 수밖에 없다. 혼내는데 혼내지지 않아…? 거제 야호에 열광하는 댓글이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낀다”거나, “폭력적이다”라고 실소하는 이유다.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 영상의 한 장면. 리센느 미나미가 ‘파라파라’를 추고있다. 유튜브 갈무리

갸루 영상이 대박나자, 원이가 미나미와 함께 거제에 방문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은 6월2일 기준 조회수 500만을 돌파하며 화제 몰이를 했다. 갸루로 잔뜩 꾸민 미나미와, 추리닝을 입은 채 걸쭉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원이의 대조가 불꽃 튀는 와중에 거제의 풍광이 어우러지며 영상이 한 편의 저예산 독립영화 같다는 감상이 쏟아졌다. 원이는 일찍 일상과 분리되는 다른 아이돌 연습생과 달리 고등학교까지 거제에서 마쳤는데, 그래서인지 거제 특유의 감성과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신발이 불편하다는 미나미에게 신발을 벗어주고 맨발로 걸어다니는가 하면, 줄낚시를 하면서 맨손으로 갯지렁이를 잡아 끼운다. 미나미는 낯선 곳을 불편해하며 낑낑거리다가, 맥락 없이 “파라파라나 추는” 기행으로 웃음의 뒤통수를 친다. 손이 많이 간다며 툴툴거리면서도 미나미를 챙기는 원이와, 원이에게 의존하는 모습이 밉지 않은 미나미가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들어가 장난치는 장면에 히사이시 조의 ‘SUMMER’가 깔린다. 천진난만한 청춘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 영상의 한 장면. 리센느 원이. 유튜브 갈무리

이후 원이가 한 가게에 들어가 “이모, 저 덕연이(원이의 어머니) 딸인데요”하고 인사하자 사장님이 반죽 묻은 손으로 뛰어나와 반기고 통닭과 반찬을 내준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와 상호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안전과 손익계산, 각자도생이 중요해지면서 관계 또한 민폐도 호혜도 거부하는 말끔함을 추구하게 되었다. 쿨하고 세련된 현대인의 태도에는 나름의 장점과 동시에 단점 또한 분명하다. 과거에는 인간적인 정이 넘쳤다는 식의 노스탤지어적 미화나, ‘지방에는’ ‘아직 그런 게’ 남아있다는 낭만화는 위험하지만, 원이의 유튜브 영상은 이처럼 사람들이 ‘근래 보기 힘들다’고 느꼈던 감성을 자극한다.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상품과 삶의 방식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딸깍’ 한 번이면 무엇이든 진짜처럼 뽑아낼 수 있는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진짜 가치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친근함과 소탈함은 쉽게 진정성과 연결된다. 원이의 유튜브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매력을 진정성이라고 부르기를 지연하며 개념 자체를 함께 고민하고 싶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신인 중소 아이돌이 ‘요즘 아이돌과 다르게’ 진정성 있다고 구별 짓고 추앙하는 것이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오토(auto)에서 유래한 진정성은 ‘자기, 자기 자신의, 혹은 그 자체의’라는 뜻이다. 에빌리 부틀은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이진 역, 푸른숲, 2024)라는 책에서 진정성의 의미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 번째는 사물의 진정성으로, 어떤 물건이 진짜이고 그것이 표방하는 바와 같음을 뜻한다. 두 번째 의미는 질적 측면의 진정성으로, ‘진정성이 있다’는 말을 소탈하고 유기적이며 공감 가는 것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세 번째 의미는 (…) 자아의 진정성이다. 이는 각 개인에게 실현해야 할 고유한 자아, 맞추어 살아야 할 자신만의 진리가 있다는 개념”(11쪽)이다. “진정성이 진정한 자아와는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밀어내거나 끌어당기는 외부의 힘에 맞서는 개념”(11쪽)이라는 점에서, 진정성은 동일성에 함몰되어 자기 자신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주체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이 가짜와 부정행위를 양산하는 ‘탈 진실post-truth’의 시대이기에 사람들은 점점 더 진정성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며,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끈 것처럼 말이다.

‘갸루와 거제에 왔습니다’ 영상의 한 장면. 리센느 원이(왼쪽)와 미나미. 유튜브 갈무리

그렇다고 이 ‘있는 그대로’가 모두 가치 있는 진정성이 될 수는 없다. 얼마 전 배우 고소영이 백화점에서 비싼 과일을 사는 모습을 유튜브로 공개했다. 그에게는 그 모습이 ‘있는 그대로’의 삶이겠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만약 원이가 거제에 가서도 서울의 삶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면, 그 모습이 원이의 진실이라고 해도, 진정성으로 뜨지는 못했을 것이다. 진정성은 확고한 원본이 존재한다기보다, 무엇을 진정하다고 믿고 싶은 욕망으로 구성된다. 이 인기에는 어쩔 수 없이 지방과 서울 간의 위계, 지방에 대한 낭만화가 암반 지하수처럼 흐른다. 자본주의가 진정성 자체를 퍼포먼스로 만들거나, 진정성을 약속하는 상품의 구매를 부추기기도 한다. 에밀리 부틀에 따르면 진정성을 증명하는 기능 중 하나는 공감성(relatability, 27쪽)이다. 인간은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진정하다고 믿는다. 원이의 영상에서 누군가는 친구들과 놀던 어린 시절을, 누군가는 경상도의 특색이라고 알려진 씩씩하고 직설적인 면모를, 누군가는 이방인으로서 서울 생활에 느끼는 위화감을, 누군가는 조금 부족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읽어내고 공감한다. 그 감정을 바탕으로 원이와 리센느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다만 타인의 가치를, 특히 편집된 영상으로밖에 볼 수 없는 누군가의 면면을 곧장 깨끗하고 순수한 ‘진정성’으로 치환하기를 망설였으면 좋겠다. 진정성을 추구하는 욕망은 언제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공격성을 띠기 때문이다. “진정성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순수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우리 자신일 것을 요구하고 내적 자아가 세상이 부과한 모든 제약을 극복할 것을 요구한다.”(33쪽)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또 다른 기대를 품는 타인이 될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진정성으로 떴지만, 원이의 유튜브 인기를 견인하는 또 다른 요소인 ‘갸루’는 부캐다. 미나미는 실제로는 매우 신중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갸루일 때의 미나미가 가식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원이나 제나가 ‘지방 출신 소녀 답지 않은’ 어느 순간 보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진짜와 가짜, 진정성과 수행성은 대립하거나 우열 관계가 아니다. 리센느가 이 유쾌한 시소놀이를 즐기며 멀리 퍼뜨릴 향기를 기대한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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