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짝수해 여름, 그래서 긴장해야 한다 [데이터로 보는 기후위기]

윤신영 2026. 6. 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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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작된 엘니뇨는 바다 열 분포가 크게 요동을 치는 현상이다. 세계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을 두고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뉜다.
지난해 8월13일 폭우가 내린 서울 노원구 월계1교 인근 중랑천에 홍수주의보가 발령돼 도로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가끔 옛이야기와 실체 사이의 관계를 상상해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의 전설에 등장하는 털 많고 체구가 작은 인간, 에부 고고. 뭐든 먹어 치우는 노인이라는 뜻의 에부 고고는 그저 지역 전설 속 재미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이 지역 부근에서 키 1m 남짓의 작은 고인류 플로레스인(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화석이 발견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야기 속 존재의 실체가 다른 종 인류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특히 연구 초기에는 플로레스인이 살던 연대가 약 1만2000년 전까지로 추정됐다. 수만 년 전부터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현생인류와 꽤 오랜 시간 공존해왔다는 뜻이다. 두 집단이 마주칠 가능성도 충분했다. 생김새부터 문화까지 모든 게 다른, 생물학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다른 인류를 만났을 때의 놀라움은 정말 컸을 것이다. 이 순간은 당시 인류가 발명한 가장 성능 좋은 기억매체인 이야기에 담긴 채 오래도록 전승됐을 것이다. 플로레스인은 이제 영영 사라졌지만, 다른 집단인 현생인류는 남아, 이 장면을 재미있는 전설로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후 연구에서 플로레스인의 마지막 생존 연대는 약 5만 년 전까지로 정정됐다. 공존 가설은 힘을 많이 잃었다. 지금은 원숭이나 다른 유인원과의 조우 경험이 어떤 왜곡을 거쳐 인간을 닮은 존재에 관한 전설로 남은 것이란 해석이 유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멸종을 눈앞에 둔 옛 인류 집단의 마지막 세력과 지역에 막 새로 유입해 들어온 인류 집단의 선구자가, 어떤 시공간에서 우연히 스쳤을지 모른다는 희미한 가능성을 미련처럼 꼽아보게 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또 다른 말로 ‘엘니뇨’가 있다. 이제는 기후 뉴스에 많이 나와 조금 친숙해진 말이다. 원래는 남아메리카에서 태평양 바다가 크리스마스쯤에 평년보다 따뜻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바다가 따뜻해진다고 축복은 아닌 게, 평소보다 어획량이 준다. 이런 현상은 최소 수개월 지속됐는데, 어민들은 예수가 준 휴가라고 여겨 축제를 열고 쉬었다 한다. ‘엘니뇨’는 스페인어로 ‘남자아이’라는 뜻인데, 아기 예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정밀한 측정 장비가 없던 시대에 바다가 미세하게 따뜻하다는 사실을 경험만으로 눈치 챈 어민의 지혜도 놀랍지만, 이 현상을 의인화해 전승해온 마음속도 궁금하다. 고기가 안 잡혀서 먹고살기 어려워진 척박한 환경을 원망할 법도 하건만, 대신 미래의 희망일 어린아이를 언급하며 지나 보내는 마음 말이다.

어민들은 과학을 몰랐지만, 자연의 변동성을 이해했다. 엘니뇨가 오면 다시 바다가 평년 수준 이하로 서늘해질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엘니뇨 시기를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다가 서늘해지는 이 현상에 ‘라니냐’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시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라니냐 다음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엘니뇨가 찾아온다. 엘니뇨가 찾아오는 주기는 대략 2~7년이다. 이렇게 드넓은 동태평양 바다 표층수는 고온과 저온 사이를 규칙적으로 출렁인다.

과학의 시대에 엘니뇨와 라니냐는 의인화를 벗어나 좀 창백해졌다. 숫자로 된 정의를 갖게 됐다. ‘모니터링 구간의 온도가 평년보다 몇 ℃ 높은 상태가 몇 개월 지속되는 경우’라는 식이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만 이해해도 충분하다. 평소에 비해 중태평양 및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높은 상태가 여러 달 이상 지속되면 엘니뇨, 반대로 이 수역 해수면 온도가 낮은 상태가 지속되면 라니냐다. 이 지역에 부는 바람의 변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중위도에서 적도 쪽으로 부는 동풍인 무역풍이 약해지고, 이에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해류 역시 약해지며 남미 서쪽 깊은 바다의 찬물이 표층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되면 엘니뇨가 일어난다.

더운물을 싫어하는 물고기만 엘니뇨를 골치 아파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바다이자 지구에서 가장 많은 태양에너지가 유입되는 곳이 태평양, 그중에서도 적도 부근의 태평양이다. 엘니뇨는 이곳의 바다 열 분포가 크게 요동을 치는 현상이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기후 현상 중 하나로, 전 세계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기후 현상

올해 다시 엘니뇨가 시작됐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주기적으로 찾아온다고 했다. 2023~2024년 엘니뇨가 꽤 강했고, 이후 중립 상태를 거쳐 지난해 라니냐가 발생했다. 이 라니냐는 짧았고, 곧 중립으로 전환돼 올해 4월 초까지 이어졌다. 다시 엘니뇨 상태로 전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봄부터 여러 기상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수시로 전 세계 해수온을 살피고 있는 필자 역시 동태평양 바다의 수온이 변화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지켜봤다. 급기야 4월24일, 세계기상기구(WMO)는 “적도 태평양에서 해수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5~7월경 엘니뇨 현상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엘니뇨가 일어나면 지구 전역의 기후가 변한다. WMO는 ‘일반적으로’ 엘니뇨가 남미 남쪽과 미국 남부, 동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의 강수량을 늘린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 남아시아 지역은 반대로 가뭄이 찾아온다. 태평양에서는 허리케인 발생이 는다.

전 세계 수온과 기온도 요동친다. 엘니뇨가 찾아온 해는 수온과 기온이 모두 높은 경향을 보인다. 역사상 최고 기온과 수온을 기록했던 두 해인 2023~2024년이 바로 엘니뇨가 강하게 발생했던 해임을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올해도 이런 경향을 따를 가능성이 있다. WMO에 따르면 5~7월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표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으리라 예상된다. 특히 북미 남부와 중미, 카리브해, 유럽, 북아프리카의 이상고온이 심할 것으로 점쳐진다. 국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엘니뇨 발생 이후 전 지구 평균기온이 급격히 상승하는 경향이 강하다. 올해와 내년에 1.5℃ 상승 수준을 일시적으로 초과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라고 말했다. 〈그림 2〉는 극지 제외 전 세계 해수면의 평균온도 동향이다. 올해 해수온(붉은색 점선)이, 마찬가지로 엘니뇨가 발생한 2023년(진한 붉은색 실선)과 비슷한 패턴으로 상승한다면 지구는 역대 해수온 기록을 다시 한번 깨게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날까.

엘니뇨가 발생하면 지역에 따라 가뭄이나 폭우, 태풍 등 극한 기후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은 어떨까.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는 과학 이슈나 연구 결과에 대해 분야 전문가들의 해설이나 의견을 수집해 기자들에게 제공한다. 더 풍부한 과학 근거를 제공해 나은 보도가 이뤄지도록 돕기 위해서다. 엘니뇨의 국내 영향에 대해서도 기후학자들의 의견을 수집했는데, 다양한 견해가 나왔다.

우선 극한 기상현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가 있다. 오재호 나노웨더 대표는 동아시아에서 여름 몬순 약화와 가뭄, 겨울 온난화 경향이 나타나고, 한반도는 가을 강수 변동성이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국 교수 역시 “여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강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집중호우와 수자원 관리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기후 변동성이 커졌기에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장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는 엘니뇨가 발생하면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많이 오고 기온이 낮은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전통적 패턴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집중호우나 국지성 기상현상이 더 잦아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상욱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역시 “여름철 발달하는 엘니뇨가 한국의 날씨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일정하지 않고 변동성이 크다. 특히 여름 강수와 기온 변동성이 평년보다 커 상시적인 재난 대비 점검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한반도 폭우에 엘니뇨 영향은?

반면 한국은 엘니뇨와 라니냐의 영향이 별로 없다는 견해도 있었다. 허창회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엘니뇨가 발생하는) 열대 중태평양, 동태평양과 너무 멀다”라며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재흥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연구교수와 구자호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엘니뇨가 기온과 강수량에 미치는 영향은 여름철이 아닌 겨울철과 관련지어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종합하면, 엘니뇨는 한국 일부 지역의 여름 강수량에 영향을 미쳐왔다는 의견이 있지만, 최근에는 패턴이 바뀌었거나 변동성이 강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수해를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한국이 엘니뇨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국내보다는 세계 기온 및 수온 변화에 좀 더 촉각을 세울 필요가 있다.

만약 엘니뇨가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해도, 여름 폭우와 수해는 여전히 대비해야 한다. 한국의 여름 호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엘니뇨 하나는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지난 3월 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최근 30여 년간(1992~2024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이전 30년에 비해 강우량이 급증했다. 거의 2년마다 폭우가 반복되고 양쯔강 유역에 홍수가 일어나고 있다. 남 교수팀은 그 원인이 인도양 상공의 대기 파동의 변화와, 그에 따른 서인도양 해수온의 변동성 때문임을 밝혔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짝수 연도 해에는 동아시아에 폭우가 느는 경향이 있다. 올해도 대비해야 한다. 기억하기 쉽게, 이런 현상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해학적인 이름을 가진 작고 신비로운 노인이나, 크리스마스 휴가를 주는 너그러운 아이처럼 의인화한 이름이면 좋겠다. 재난은 한시적이고, 이때가 지나면 곧 살기 좋은 기후가 찾아온다는 희망도 담고 있으면 더 좋겠다. 먼 미래에, 만약 그때까지 인류가 생존해 있다면,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이 이 현상에 이름을 붙인 2026년 한반도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

윤신영 (과학 저널리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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