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사진은 빼고 갑시다" 한겨레 젠더데스크가 뉴스룸을 바꾼 7년
[강남역 10주기, 뉴스룸은 달라졌나] ③ 박수진 한겨레 젠더데스크 겸 사회정책팀장 인터뷰
댓글창 폐지부터 여성 전문가 300명 DB 등 한겨레 젠더데스크 7년의 결과물
젠더감수성 높아진 편집국, 오히려 젠더데스크는 1명에서 0.5명이 됐다?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오전 편집회의에서 '김수현 기사' 관련 안건이 논의됐어요. 법원이 김세의 가로세로연구소 대표를 AI로 조작된 증거를 내세워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기사 제목 및 사진 사용 건이에요. 아직 영장 신청, 발부 단계일 뿐(지난달 27일 기준) 해당 사건과 관련한 배우 김수현씨 관련 혐의의 실체가 밝혀진 것은 아니어서 한겨레는 우선 해당 이슈에서 '김수현씨 사진은 빼고, 구속영장 청구 당사자인 김세의 대표 사진만 사용하는 걸로 결정했어요. 기사 제목도 '허위사실 유포'에서 '조작 유포 혐의'로 바꿨고요.”
박수진 한겨레 젠더데스크 겸 사회정책팀장과 미디어오늘이 인터뷰를 한 날은 지난 5월27일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뜨거웠던 이슈는 김세의 대표가 AI로 증거를 조작해 배우 김수현씨를 허위로 비방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건이었다. 이날 오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수진 한겨레 젠더데스크는 오전 회의 결과를 전달했다.
“김세의 구속영장 발부가 '누명을 벗은 남성 스타'의 얼굴로 소비, 문제 있다”
“김세의 대표 구속영장 발부가 곧장 '누명을 벗은 남성 스타'의 얼굴로 소비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들이 사내 구성원 여럿으로부터 들어왔어요. 구성원들이 제기한 문제의 내용을 전달하고, 마침 다른 부서에서도 동일한 문제제기를 해서, 편집회의에서 논의했습니다.”
인터뷰 5분 만에 젠더데스크의 역할을 알 수 있었다. 젠더데스크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제기하고 논의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뉴스룸에서는 사건의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를 매일 판단해야 하며, 그 디테일이 종종 언론사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뉴스룸은 아주 작은 디테일이 큰 논란이 될 수도 있는 곳이다.
2019년 젠더데스크 운영 초기엔 사내 소통 창구와 편집국 내 젠더 모니터링을 병행하는 형태였다. 이후 젠더 기사를 직접 쓰는 젠더팀이 별도로 만들어졌고, 젠더데스크는 편집국장 직속으로 운영되다가 현재는 사회정책부 안에 자리를 잡았다.
[관련 기사: 성평등 조직문화는 어떻게 언론 신뢰도를 높이는가]
그 사이 뉴스룸에서 바뀐 것들이 있다. 댓글에 당사자를 향한 비난이 예상되는 기사 등에 '댓글창 폐지'를 가장 먼저 결정한 것이 한겨레였다. 보도 사진과 인터뷰 취재원의 성비를 맞추는 것, 피해자의 성별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제목이나 사진을 교정하는 것도 이제는 일상화된 일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인터뷰할 수 있는 여성 전문가 300여명의 목록도 구축한 바 있다 2021년엔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를 제정했고, 인공지능 관련 항목은 별도의 AI 보도 가이드라인 안에 포함시켰다.
박수진 젠더데스크는 이 성과들을 나열하면서도 한 가지 아쉬움과 함께 목표를 밝혔다. “그동안 젠더데스크가 담당 부서 등에 의견을 개진해 기사 방향이나 사용하는 표현, 제목 등에 변화가 반영됐음에도 그 내역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아요. 문제 제기가 들어오면 그때그때 해결하고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기고 두 달에 한 번 메일링을 통해 전체 공유를 하려고 합니다. 논의가 쌓여서 기준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반복되면서 소모적인 노력을 허비하지 않도록요. 기록을 남기는 게 한겨레 조직 전체의 젠더 감수성을 높이고, 젠더편향적인 결정을 하는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젠더감수성 높아진 편집국, 젠더데스크는 0.5명이 됐다?
박수진 기자는 사회정책팀장, 사회정책팀 내부에 있는 젠더팀의 팀장, 그리고 젠더데스크 역할을 겸하고 있다. 현재 한겨레의 젠더팀 기자는 2명이다.
“겸직을 해야하기에 젠더데스크 역할을 온전히 하고 있는지 우려되는 지점이 있어요. 현 시점에서 젠더데스크가 0.5명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젠더데스크라는 보직이 언론사에 처음 생겼을 때의 논리는, 젠더 관점에서 콘텐츠를 검토하는 사람이 한 명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직이 이 역할을 일상화하면서 오히려 보직의 전담성이 옅어지는 역설이 생겼다. 이는 한겨레와 함께 젠더데스크가 있는 경향신문도 비슷한 흐름이다. 젠더데스크 보직만 맡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실무 팀장을 겸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한겨레 매체 전체의 젠더 역량은 높아졌다는 게 박수진 젠더데스크의 설명이다.
“7년 동안 젠더데스크 보직 경험자가 6명에 이르고 전임자들이 각각의 부서에서 일하면서 조직 전체의 젠더 역량은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박현정 전 젠더데스크는 전국부에서 지면과 관련해 의견을 내고, 신윤동욱 전 젠더데스크는 디지털뉴스부장으로 디지털 기사를 볼 때 일차적인 게이트키핑을 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개인의 소진을 막게끔 구조적인 변화로, 시스템으로 정착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취재 기자가 어떤 아이템을 고르고, 해당 기사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고, 기사에서 어떤 표현을 사용하고, 특정 제목이 달렸을 때 이런 관점에서 바꿔야 한다고 의견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일이 때로는 '지적'이 되고, 때로는 '논쟁'이 되기도 합니다. 문제제기자에게는 적합한 이유와 합리적 근거와 대안까지 요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또 젠더팀장으로서는 젠더팀 기자들과 함께 한겨레만의 시선으로 젠더 이슈를 심층 보도하는 역할도 함께 부여되어 있습니다.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하는데 1명의 보직 담당자에게 모든 부담이 가지 않도록 인사를 적절히 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조직이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투 보도 이후 퇴사, 여성 인권 지원 기관에서 경험 쌓기도
개인이 소진되지 않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고민은 박 팀장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미투 보도를 집중적으로 하던 시기, 그는 번아웃으로 퇴사를 한 경험이 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에 더해, 젠더 이슈를 주로 쓰는 일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내가 써 왔던 '성폭력 고발' 기사들이 피해자의 피해를 소모하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 종류의 고민과 자책이 많았어요.” 그는 이후 8개월간 여성 인권 지원 기관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다가 다시 한겨레로 돌아온, 특별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이 지금의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원 기관에서 일을 해보니 피해자에게 문제를 공론화하는 좋은 보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됐어요. 다만, 피해와 가해를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모한다거나, 젠더 보도를 '구색 맞추기'용으로 두고 일부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일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생겼습니다.”
이 구조는 한겨레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일보가 젠더데스크 보직 대신 위원회 방식을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부산일보는 2020년 11월 지역 언론 중 처음으로 젠더데스크를 도입해 운영해왔는데 5년 동안 혼자 젠더데스크를 맡은 김효정 부산일보 기자가 젠더위원회를 제안했다. 한명이 너무나 많은 기사를 모니터링 해야하고, 무엇보다 후임자를 찾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다.
[관련 기사: 젠더데스크가 7명? 언론사 최초 '젠더위원회' 만든 부산일보]
박수진 팀장은 젠더 보도 논의 테이블을 유연하게 운영해보고 싶다. 젠더 보도를 사후 모니터링하고, 다뤄야 하는데 다루지 못한 이슈, 보도 방향 등을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 젠더팀과 타 부서 기자, 외부 전문가를 결합해 논의의 틀을 만든다면 젠더 보도의 시너지가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젠더데스크는 일종의 통로이고, 그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을 같이 지는 형태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기사를 쓸 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게 기본값인 것처럼, 젠더 균형을 같이 검토하는 것도 모두가 가져가야 하는 것도 기본값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안전 이슈로 돌아온 젠더 보도 의제엔 아쉬움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올해로 10주기를 맞은 가운데, 지난 5월5일 또 광주에서 17살 여고생 이채원양이 일면식 없던 남성 정윤기에 의해 살해당했다. 강남역 사건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변화를 짚으려던 기존 기획 역시 '안전 이슈'를 부각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살인, 강도, 성폭력 등 강력범죄(흉악) 피해자 여성 비율이 80%에서 70%로 내려갔다 2024년 다시 80%대로 높아졌습니다. 사회적으로 환기되는 여성 살해 사건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여성 안전 문제'를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해당 이슈를 보도하되 다양한 성평등 콘텐츠를 기획하려고 노력합니다. ”
그가 최근 중요하게 보고 있는 의제는 성별 임금격차다. 다만 이 문제는 여성 인재들의 경력 단절 시기와 육아와 돌봄의 부담이 누적되며 만들어지는 구조적 문제라 쉽지 않은 보도다.
“직장 내 성차별과 임금격차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동일 노동을 해도 여성들이 승진 과정이나 육아·경력단절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뒤처지는 부분이 존재하면서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개별 사업장별로 살펴야 해서 세밀하게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지만, 성별임금격차가 왜 벌어지는지 현황이 어떤지 피부에 와닿게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을 젠더팀 구성원들과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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