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포로수용소 英장교 손때묻은 정전협정문, 73년만 '원위치'

하채림 2026. 6. 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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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리 임시포로수용소' 유엔사 장교 보유" 표지에 메모
6·25전쟁납북자기념관, 수집가와 구매계약 예정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이 구입 예정인 '한국전쟁정전협정문' 사본 표지 이미지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1953년 '문산리 임시 포로수용소'를 관할한 유엔군사령부(유엔사)에 파견된 영국군 장교가 직무용으로 보관했던 정전협정문 사본이 73년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6일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이하 기념관)에 따르면 정전협정 직후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전쟁 정전협정문' 영문 사본 1점을 개인수집가로부터 구매하는 계약이 이르면 이달 중 체결된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 간 체결돼 한국은 협정문 원본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협정 체결 직후 생산된 사본 중 기록물로서 가치가 인정돼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것은 1953년 군사정전위원회가 보유했던 영문 사본 등 3건이 있다.

국·공립 박물관이 소장한 협정문 사본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조선정전협정문헌'이 유일하다. 1953년 요동성항미원조분회가 생산한 중국어본이다

협정 체결 직후 생산돼 역사성과 유물로서 가치가 인정되는 사본은 흔치 않다고 기념관 측은 설명했다.

사진자료집 '파주 모던타임즈'에 수록된 문산리 임시포로수용소 위치 2021.7.9 [파주중앙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ndphotodo@yna.co.kr

기념관이 구매를 앞둔 협정문 사본은 국내 한 수집가가 경매를 통해 확보한 유물이다.

경매 업체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1953년 경기도 파주군(현 파주시) 소재 유엔사에 파견됐던 영국군 장교가 보유한 사본이다.

실제로 표지에는 'M.B.맥냅(M.B.McNabb) 소령의 개인용 사본'이라는 내용의 영문 수기(手記)가 남아 있다. '영국군 수석대표', '한국 문산리 유엔사 송환그룹 임시 포로수용소' 등 소속·보직과 근무지도 기재돼 있다.

문산리 유엔사 송환그룹 임시 포로수용소는 정전협정 후 포로 교환을 위해 현재의 도라산역 위치에 세운 시설이다. 바로 강(임진강) 건너편이 현재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이 있는 임진각 일원이다.

기념관 관계자는 "정전협정과 6·25 전시 납북자 문제의 연관성, 생산 시기와 최초 보유자 등 이 사본의 특수한 유물적 가치를 고려해 구매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매매가 완료되면 유물 등록 절차를 거쳐 1~2년 후 관람객을 만나게 된다.

정전협정문에는 전쟁포로 송환뿐만 아니라 전시 납북자의 귀환 합의도 담겼다(제59항). 다만, 납북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강경한 태도 탓에 '실향사민(displaced civilians)'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정전협정 이듬해 1월 16일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민간인 교환 절차가 합의됐고 이에 따라 3월 1일 남측은 북쪽 주민 37명을 송환했으나 북측은 남쪽 주민을 단 한 명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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