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마을 말고 장미공원 말고 진짜 곡성…마음 시들할 땐 정원으로 와요

곡성 | 글·사진 천소현 여행작가, 사진 제공 곡성군 2026. 6. 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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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대문집의 대문이 열리자 230여종의 식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원주는 그중 이름 모를 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전남 곡성은 오랫동안 섬진강기차마을의 도시였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장미공원을 둘러본 뒤 돌아가는 여행이 곡성을 만나는 가장 익숙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곡성에는 조금 다른 여행이 꿈틀대고 있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대신 골목을 걷고, 주민을 만나고, 그들이 가꾼 삶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여행이다. 이름하여 ‘옹기종기 마음정원 산책’이다.

곡성의 생활권으로 들어간 첫 여행

곡성역에서 몇걸음 떨어진 골목에 라운지가 새로 문을 열었다. ‘곡성라운지 옹기종기’라고 쓰여 있지만 ‘환대의 정원’이라고 읽을 만한 곳이다. 편안한 소파 앞에는 곡성을 미리 살필 수 있는 여행 안내서와 뚝방마켓 굿즈가 있고, 안쪽에는 작은 모임도 가능한 테이블과 무료 식수가 있다. 여행객에게 요긴할 짐 보관 로커와 우산도 무료 대여다. 옹기종기는 곡성읍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누가 맞아주거나 안내하지 않으니, 들어오는 순간 바로 공간의 주인이 된다. ‘곡성 옹기종기 마음정원 산책’의 출발지다운 정책이다.

출발 전에 오해를 풀고 가자. 마음정원은 특정한 장소명이 아니다. 여행을 이끈 최은희 해설사는 “마음정원이란 나의 마음과 일터를 가꾸는 정원”이라고 말했다. 정원을, 꽃을 심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정성껏 돌보는 삶의 태도로 이해해달라는 것이다. 곡성군청의 담당자인 문진 팀장이 덧붙였다. “기차마을만 보고 가던 여행자가 처음으로 곡성의 생활권 안으로 들어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해외여행도 싫다는 노란 대문집의 비밀

영운천을 따라 걸으며 그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천변의 오래된 나무 아래에는 넓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풍경을 소비하는 대신 마을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징검다리를 건너 ‘별빛달빛 감성충전길’로 접어들었다. 평범할 뻔했던 마을 골목이 귀여운 벽화와 문구로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전국의 그 많은 벽화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인데, 대문이 열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곡성 옹기종기 마음정원 산책의 하이라이트는 주민 정원의 발견이다. 김봉덕 할머니의 정원.

그곳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감탄할 정원이 숨어 있었다. 김봉덕 할머니의 정원은 남편이 가꾸던 공간을 이어받아 돌보고 있는 곳이다. 마당 가장자리에 화단을 꾸민 것이 아니라 섬처럼 묵직한 정원, 그 자체가 마당의 주인이다. 오랜 세월의 가꿈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노란 대문집은 수백 개의 화분과 꽃이 뿜어내는 싱그러움으로 빛이 났다. 정원의 안주인 조현옥씨는 30년 전 전주에서 이주한 뒤, 마당에 채송화를 심으면서 정원 가꾸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230여종의 식물을 키운다. 겨울이 힘든 식물을 위해 햇볕 잘 드는 방을 식물의 월동방으로 내어줄 정도다.

“우리 부부는 해외여행보다 정원을 가꾸는 게 더 즐거워요. 금방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요.” 매일 정원 한쪽 캠핑 의자에 앉아 꽃을 바라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주민 정원은 ‘곡성 마음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쾌거다. 그저 꽃이 좋아서 수십 년 동안 대문 안에서 가족끼리 가꾸어왔던 정원이 곡성의 자산이 됐다. 처음 외지인의 방문과 찬사에 당황하던 정원주들은 이제 마음도, 대문도 활짝 열었다. 언제든 구경하고 가도 좋다는 것. 예의를 갖춰 그 마음 안으로 조용히 살짝 들어가보시길.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박해를 견딘 신앙의 정원

신앙의 정원인 곡성성당은 정해박해 유적지다. 옹기종기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영운천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붉은 벽돌의 곡성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곡성성당은 신앙의 정원이다. 1827년 순조 때 일어난 정해박해는 곡성에서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된 천주교 박해다. 사소한 말다툼이 밀고로 이어지면서 뜻하지 않은 재앙이 된 것. 역사관에서 당시 신자들의 삶과 박해 과정을 담은 기록 등 전시물을 볼 수 있는데, 휴관일에도 자율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이 소소한 팁이다. 성당 뒤편에는 곡성현의 객사와 옥사(감옥) 자리에 재현한 옥사가 있고, 성당과 주변 지역을 잇는 정해박해 평화순례길도 조성했다. 참고로 2027년은 정해박해 200주년이다.

박해 당시 두려움 속에서도 일부 신자들은 신앙 공동체를 일구고 옹기를 구우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 옹기 서사를 알고 나면 여행의 출발점인 곡성라운지의 이름이 ‘옹기종기’이고, 그곳에 옹기가 전시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자연옹기’는 곡성군 겸면에 공방을 두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옹기를 굽고 있는 브랜드다.

사람이 꽃이라면 일터도 정원이다

감성충전길은 곡성의 생활권으로 여행자를 이끌고 있다. 익숙한 골목이 위로를 전한다.

곡성의 마음정원은 개인의 일터에서도 읽힌다. 낭만가옥 달꼴은 취향의 정원이다. 오래된 쌀 창고를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조일복 대표는 공예 작가이기도 하다. 카페 곳곳에는 그의 미감이 스며 있다. 직접 만든 도자기와 소품, 범상치 않은 목조 가구와 인테리어가 공간을 채운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의 ‘달꼴’은 보름달이 되기 전 아직 차오르는 상현달이다. 사업성과 비상업성의 중간 어디쯤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밀려드는 팥빙수(사진) 주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제빙기가 바쁜데, 그보다 사장님이 더 바쁘다. 그 와중에도 손님을 맞고, 말을 걸고, 유쾌하게 웃는다.

작은 식당 봄 파스타 역시 소박하나 확실한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곳이다. 원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파스타를 만들고 싶어 시작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곡성 읍내가 알려지면서 손님도 함께 늘어났다. 메뉴는 많지 않은데 손님은 많은 곳이라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투어팀이 가게 앞을 지나가자 사장님이 물병을 한 아름 안고 뛰어왔다. 더운데 목을 축이라며 생수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골목 식당이 흥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디저트에 담긴 응원의 마음

곡성의 맛을 이야기할 땐 곡성다움을 굽는 베이커리가 먼저 떠오른다. 잘 알려진 가랑드의 노계숙 대표는 문화관광 해설사로 활동하던 시절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곡성에 오면 무엇을 사가야 하느냐”였다고 한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만든 것이 토란파이만주다.

곡성은 전국 최대 토란 산지 중 하나다. 하지만 토란은 특산물이었지 기념품은 아니었다. 노 대표는 토란을 새로운 디저트로 재해석했다.

‘수상한영농조합’에서 만든 토란파이만주는 곡성을 대표하는 로컬 디저트가 됐다. 가랑드는 ‘강가, 너랑 너랑, 곡성 들판’을 예쁘고 새롭게 조합한 이름이다. 안개와 일교차, 섬진강 물길이 키워낸 곡성 토란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 대표의 목표는 단순히 디저트를 파는 것이 아니다. 곡성 농산물 하나를 제대로 책임지고, 청년들의 지역 유출을 막고, 지역에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공무원 정도의 월급을 청년들에게 주고 싶다”는 말에서는 지역을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곡성에서 가장 오래된 ‘모짜르트1999’ 제과점도 빼놓을 수 없다. 주민들이 일상처럼 들러 단팥빵과 식빵을 사가는 곳이자 토란스콘, 토란앙금빵, 토란찰빵 등으로 여행자 사이에도 유명해진 가게다.

이강하 대표는 ‘나눔 시루’라는 기부운동을 시작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손님들이 기부한 잔돈으로 쿠폰을 만들어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 꺼내어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빵 기부도 10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마을이 아니라 마음을 걸었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곡성라운지 옹기종기로 돌아왔다. 2시간의 마을 여행을 끝낸 감동은 화분 만들기 체험으로 뿌리를 내렸다. 치유농업사 이수정씨는 옹기 화분에 참가자들이 마음을 잘 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각자에게 한 뼘 정원이 생긴 것이다.

옹기정원 마음산책은 곡성을 다양한 의미의 정원으로 해석하게 해주었다.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도 자신의 일터와 취향, 그리고 마음이 어떤 정원인지를 살피게 될 여행이다. 그 마음이 시들해질 때면 다시 훌쩍 곡성을 찾으면 된다. 6월에도 ‘곡성 옹기종기 마음정원 산책’ 시범 투어가 있고, 보완을 통해 9월부터는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곡성군 도시경제과 (061)360-8731로 문의하면 된다.

곡성 | 글·사진 천소현 여행작가, 사진 제공 곡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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