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어질러져도 괜찮아… 적당한 무질서가 당신을 구원한다” 혼돈 경제학자 팀 하포드

김지수 작가 2026. 6. 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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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이 곧 희망, 불완전함으로 나아가야
완벽한 질서는 완벽한 멸종 불러
약간의 무질서가 생존에 더 유리
신호등 없는 교차로가 더 안전한 이유
계획 빡빡하게 세우면 성적 떨어져
미래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인정해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의 저자, 세계적인 경제 학자 팀 하포드(Tim Harford).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글로벌 밀리언 셀러 ‘경제학 콘서트’로 현대의 애덤 스미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 Fran Monks

무질서는 나의 고질병이었다. 책상과 책장은 물론이고 옷장과 싱크대, 심지어 휴대폰의 갤러리조차 정리되지 않은 채 그저 큰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늘 붕괴 직전의 책더미와 자료에 포위된 채였다. 클린 데스크 캠페인 같은 것도 나를 갱생시키지 못했다.

무작위를 디폴트 삼아 일상은 간신히 유지됐다. 계절이 끝나갈 때쯤 겨우 서랍장을 비워내거나, 컴퓨터가 반복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 마지못해 여분의 용량을 더 구매하는 식이었다. 범주에 맞게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싹 버리고 이사하는 것이 내겐 훨씬 수월했다.

문제는 감정이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한다’는 불쾌감 혹은 불안감. 꼬여버린 전선이 덩어리째 노출된 집안 살림, 통제할 수 없는 사춘기 아이, 계획할 수 없는 미래, 산만한 관심사와 꿸 수 없는 관계들, 단어들… 그런 혼돈 속에서도 느슨하게나마 마감을 지키고, 주기적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일찍이 이어령 선생도 고백했다. “내 책상은 엉망이야. 하지만 나는 카오스를 부끄러워하지 않네. 마구잡이로 책을 읽는 것도 좋고, 그 안에서 나만의 코스모스를 발견하는 것도 즐겁다네.”

이즈음에 혼돈 경제학자 팀 하포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라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질서, 혼돈, 모호함, 불완전함에 관한 그간의 오해를 벗었고 큰 해방감을 느꼈다.

책에는 우리가 몰랐던 ‘보석 같은 혼돈의 순간들’이 차고 넘친다. AI 자동화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왜 인간은 실수와 숙련의 몫을 끝내 포기하면 안 되는지, 촘촘한 계획보다 적당히 계획을 세운 아이들의 성적이 왜 더 좋아지는지, 어수선한 사무실은 어떻게 구글 창의성의 원천 기술이 됐는지, 나아가 규칙을 무시하고 혼란을 전유하는 대담한 사람들이 왜 더 승승장구하는지에 대해.

살다 보면 사실 경험으로 알게 된다. 세상은 무작위와 무질서, 예측 불가능을 수용하는 열린 사람에게 더 친절하게 새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내가 하는 인터뷰 대화도 그랬다. 경계 없이 모호하게 열어둘수록,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더 풍성한 진실을 찾아내서 들려주곤 했다.

고정관념 없이 상황 그 자체를 수용하는 개방성이야말로 가장 높은 경지의 혼돈 전략이었다. 한동안 유행했던 ‘다정함’을 잇는 진화의 다음 패러다임은 ‘불완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진화의 본질이라면, 왠지 더 안도감이 든다.

▲인간은 질서를 좋아하지만 세상은 본질적으로 무질서하다.

패권 전쟁과 기술 전쟁으로 세계의 엔트로피가 극점을 향해 가는 지금, 적당한 무질서가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다정한 경제학자 팀 하포드를 인터뷰했다.

-얼마 전에 한국의 유명한 소설가가 인간이 AI와 다른 점은 ‘망설임’에 있다고 하더군요. 저 또한 비슷한 의미로 ‘기다림’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의 실체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망설임’은 참 멋진 관점이네요. 불확실한 세상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그 느낌! 거대 언어 모델(LLM)은 좀처럼 의심하는 기색이 없지요. 하지만 저는 의심을 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목하는 단어는 ‘경청(Listening)’입니다. 경청은 ‘대화’는 결코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일상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 드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진합니다.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지금 벌어지는 일에 귀 기울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더 많이 실수할수록 ‘인간다움’에 가까워집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정직하게 반응할수록 실수는 매력적으로 도약하지요. 어떤 상황에서건 그저 완벽한 대사를 읊는 것보다,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않던가요.”

-불완전함의 폭발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됩니까?

“불완전함을 인정하면 나오는 힘에 관해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의 일화를 들려드리지요. 재럿은 한 소녀의 애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피아노로 무대에 서야 했어요. 불완전한 상황을 인정한 뒤에 재럿은 그 사실을 관객들이 덜 눈치채도록 최대한 깽깽거리는 고음부 대신 중간톤을 활용해 연주했어요. 부족한 공명을 보완하기 위해 왼손으로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를 쳐댔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지요. 관객들은 통념을 벗어난 그의 독특한 연주에 환호하고 열광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피아노가 결과적으로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실황 연주 앨범 ‘쾰른 콘서트’를 만들어낸 거예요. 무작위성은 우리를 고정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

-책에는 말씀하신 ‘쾰른 콘서트’와 키스 재럿에 이어 ‘비행기 추락 사고’와 조종사의 사례가 이어서 등장하더군요. 몰입도 최고의 도입부였어요. 대조적인 두 사례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습니까?

“키스 재럿은 스스로를 계속해서 몰아붙여 엄청난 기술적 정점에 도달한 인물의 표본인 반면, 에어프랑스 447편의 조종사들은 자동항법장치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숙련도를 잃어버린 사례입니다. 한 이야기는 승리로, 다른 하나는 비극으로 끝나죠.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극명한 대조입니다.

앞서 경청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에어프랑스 조종사들은 상황을 ‘듣지’ 못했습니다. 경고음이 계속 추락을 알리며 크고 다급하게 울려댔지만, 그들은 경고를 듣지 못했거나 믿지 않았어요.”

-조종사는 왜 그토록 크고 분명한 경고음을 듣지 못했던 걸까요?

“자동화는 경청 능력을 훼손합니다. 최첨단 항법 시스템을 갖춘 그 비행기는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단 한 건의 추락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시스템이 거의 완벽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기본적인 조종 기술조차 연습할 기회가 없었죠. 조종사인 보닌 또한 사고 발생 전 6개월 동안 346시간 비행을 했는데, 그중 직접 조종을 한 것은 단 4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짐작건대 그는 스스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무슨 상황이죠?”라는 말을 끝으로 비행기는 대서양 바다와 충돌했고, 탑승객 228명이 전원 즉사했습니다.”

▲170여 명이 사망한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 공습 당시의 위성 사진.

디지털 기기 덕분에 사소한 실수를 저지를 확률은 줄어들었지만, 큰 실수를 저지를 확률은 오히려 커졌다고 했다. 미·이란 전쟁 중에 미사일 오폭으로 이란의 여학교가 폭파된 끔찍한 사고도 있었다. ‘실수는 인간의 몫, 상황을 망치는 것은 컴퓨터의 몫’이라는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알고리즘이 의사 결정을 할 때 사람들은 대개 더 나은 판단을 하려는 노력을 중단한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만 믿고 망설임 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운전자들처럼. 그래서 역발상이 필요하다. 팀 하포드는 ‘혼돈이라는 마법’을 적용해 사고 위험을 낮춘 교차로를 예로 들었다.

‘불확실성이 안전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설계된 네덜란드의 ‘스퀘어어바웃Squareabout’ 광장. 그곳엔 횡단보도도 교통 표지판도 신호등도 없다.

-교통량은 많고 신호등은 없는데 잘 돌아가는 교차로를 볼 때마다 신기했어요. ‘유익한 혼란’이란 무엇입니까?

“스스로 자기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자극입니다. 인위적으로 모호하게 설계된 스퀘어어바웃에서 운전자들은 자율주행차를 타는 것처럼 멍하니 있을 수 없어요. 혼돈은 그들에게 정신을 집중하도록, 스스로 복잡성을 헤쳐나가도록, 상대를 살피도록 만듭니다. 그게 혼란의 유익입니다.

실제로 스퀘어어바웃의 교통은 매우 원활합니다. 느린 속도로 미끄러지듯 교차로를 빠져나갈 뿐, 신호등이 있을 때보다 교통사고도 절반으로 줄었어요. 정확히 말해서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더 안전한 교차로가 된 거죠.”

▲2001년 에릭 슈미트가 구글 회장으로 합류했을때 그는 사무실을 대학 기숙사처럼 보이게 하라고 했다. 직원들을 믿고 무질서 상태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정리정돈의 충동을 억누르라고.

-혹시 당신을 ‘혼돈 경제학자’라고 불러도 될까요? 사춘기 아이들 양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중 제가 당신의 가르침을 부모들에게 전하며 ‘혼돈 경제학의 대가’라고 소개했거든요.

“오! ‘혼돈 경제학자’라는 표현, 마음에 드네요! 저 또한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배운 교훈이 있다면, 아이들을 도울 수는 있지만 그들의 운명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실수하고 스스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걸 지켜보는 게 꽤 고통스럽긴 하더라도.

제가 책에서 묘사한 ‘권한을 박탈당한 사무실’ 연구도 자녀 교육에 있어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실험의 교훈이 뭔지 아세요? 작업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성인이건 아이건 핵심은 자신의 ‘자율성(Autonomy)’을 빼앗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이죠. 제 아이들의 방은 꽤 엉망입니다만... 뭐, 결국 그들의 방이니까요.”

-고백하자면 제 방도 만만치 않아요. 책상은 자료와 우편물로 수북하고 이메일은 폭파 직전이지요. 당신이 그 무질서 안에도 실용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고 해서 진심으로 큰 위로가 됐어요.

“사실입니다. 많은 학자가 ‘정리하기’와 ‘쌓아두기’의 효율성에 대해 연구했어요. 물건을 범주화해서 정리하는 쪽과 그대로 쌓아두는 쪽. 결과는 쌓아두는 쪽이 훨씬 빠르게 일을 처리했어요. 이유는 범주화 자체가 불완전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분류하고 찾는 데 더 애를 먹기 때문이죠.

알고 보면 너저분한 책상도 유용한 것을 맨 위로 놓는 실용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요. 이메일도 폴더에 정리하는 것보다 ‘아카이브’ 속에 쏟아붓고 키워드로 찾는 게 훨씬 빠릅니다. 꽉 찬 메일함이나 엉망인 책상 때문에 저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놀라울 정도죠. 그들 대부분은 엘리트에 고액 연봉을 받는 존경받는 CEO들이었는데도요.”

-“어질러도 괜찮다”는 당신의 말에 해방감을 느꼈겠군요?

“어지르는 게 정말 문제였다면 그들은 성공조차 못 했겠죠.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엉망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더욱 무질서에 지나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인류사에서 가장 비범한 인물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도 정리정돈을 싫어했어요.

죽기 전까지 정리만 잘했다면 더 존경받고 더 성공적이고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됐을 거라고 자책했죠. 엄청난 착각입니다. 참고로 제 이메일 수신함은 깨끗하지만 제 책상은 엉망입니다!”

-계획과 성적의 상관관계도 예상 밖이었어요.

“계획을 월 단위로 세우는 학생들은 성적이 갈수록 좋아졌지만, 계획을 하루 단위로 세우는 학생들은 학업 성취도가 갈수록 떨어졌어요. 계획을 세우지 않는 학생들은 제자리걸음을 유지했죠. 원인이 뭘까요?

매일 계획을 세우면 계획 그 자체에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계획표대로 매일 공부하지 못하면, 학습 의욕만 더 떨어지죠. 계획표는 깔끔하지만, 세상은 무질서해요. 너무 빡빡한 계획으로 상황을 경직시키는 건 좋지 않아요. 유연해져야 합니다.”

▲영국의 뮤지션, 앰비언트 음악의 창시자인 브라이언 이노의 젊은 시절 모습.

-‘일은 정리보다 해치우는 게 우선이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종종 일을 하기 싫어서 ‘정리하기’나 ‘계획 세우기’를 이용하지요. 하지만 일을 즉시 처리하거나, 아예 하지 않기로 하면 놀라운 진전을 이룰 수 있어요. 데이비드 앨런의 책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에는 2분 규칙이 나옵니다.

2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깔끔하고 예쁜 ‘할 일 목록’에 적지 말고 그냥 지금 하세요!”

-이즈음 데이비드 보위를 혼란에 빠트렸던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에 대해서 얘기해주시겠어요?

“브라이언 이노는 데이비드 보위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 ‘모호 전략’이라는 카드 뭉치를 가져와서 무작위로 뽑아 실행하도록 부추겼어요. ‘악기의 역할을 바꿔라’ ‘뼈대를 비틀어라’ 등등의 이상한 자극과 제약이 적힌 카드였죠. 그 카드는 밴드 멤버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갔지만, 그런 극단적인 혼돈 끝에 80년대 최고 명반 ‘로우low’가 탄생했어요.

이노는 음악가들이 진부한 습관에서 벗어나도록 ‘임의적 충격’을 가했습니다. 의도적인 방해로 혼돈과 불완전함을 끌어낸 거죠. 오늘날 이노의 모호 전략은 창조성 자극법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어요. 브라이언 이노는 평생 관심사가 수시로 건너뛰는 산만한 ADHD 성향의 아티스트로 살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다양한 장르와 협업했어요. ”

산만하다는 것은 창의성에 필수인 ‘무작위적인 도약’을 잘한다는 뜻이라는 말에 크게 위로받았다.

-계속해서 똑똑해지는 사람들의 비밀은 무엇인가요?

“지적인 개방성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과 지식을 연결해서 스스로 ‘교량형 사회 자본’이 됩니다.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인 에르되시의 예를 들어보지요. 그는 과학 역사상 협업을 가장 많이 했어요. 그와 함께 작업한 수학자만 500여 명이 넘었죠. 새로운 파트너와 협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과학 논문을 함께 검토한다는 뜻입니다.

인터넷이 없던 60년대에 그는 동서양 수학자들의 집을 전전하며 집합론, 정수론 등 전 세계 수학의 통찰을 실어 나르는 휴먼 허브로 살았습니다. 천재 방랑자 에르되시의 방식 또한 ‘무작위적인 건너뛰기 전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돈 속으로의 무작위적 도약이 창의성을 촉발한다.

-다양성이 재능을 이긴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까?

“‘다양성이 재능을 이긴다’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좋은 칼 한 자루를 가지고 있다면, 성능이 더 좋은 ‘여분의 칼’보다 차라리 성능이 조금 떨어지는 ‘드라이버’ 하나가 있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도구함은 최고의 칼들이 아니라 드라이버, 렌치, 드릴 같은 것들로 채워야 합니다. 테니스 실력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유능한 코치 3명 고용하는 것보다 코치, 영양사, 피트니스 트레이너를 고용하는 편이 훨씬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하지만 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나 프로 스포츠팀에서 선수를 영입할 때, 종종 실수를 저지릅니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인재’를 한 명 뽑고 나면 그와 똑같은 성향의 사람을 또 뽑고, 또 뽑고,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서로 다른 기술과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인데 말이죠.”

다양한 풀은 그 자체로 혼돈과 마찰이라는 엔진으로 고정관념을 깨고 무작위적 도약을 허용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한다면서 똑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다닌다고 성토했다.

-완벽한 질서는 완벽한 멸종을 만들어낸다는 경고가 섬뜩하더군요.

“자연상태에서는 무질서가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목재 생산을 위해 깔끔한 수종으로 숲을 설계하면 나무들은 진균류와 외래종의 침입으로 파괴돼요. 도시도 마찬가지죠. 성공한 도시들은 눈부신 혼돈 그 자체예요. 낡은 것과 새것, 주택과 상점, 일터가 어우러지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뒤섞여 살아갑니다. 적당한 혼돈 상태가 안전과 혁신,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낯선 학생이 한 명씩 낀 팀이 친구끼리 모인 팀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훨씬 뛰어났다는 실험 결과도 있지요. 사람들은 이민자가 많으면 범죄율만 높아질 거로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민족이 얽혀 사는 도시들이 훨씬 번창했어요. 깔끔한 질서만 추구하는 사회는 당장은 편리해도 점점 더 나약해질 뿐이지요.”

▲1995년 웹사이트를 오픈한 첫 주, 아마존은 책을 1만 2,000달러어치 팔았는데, 발송한 책은 846달러에 불과했다. 아마존은 엄청난 혼란 속에서 성장한 기업이다.

-혼돈과 무질서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인물 중 누구를 최강자로 꼽으십니까? 스티브 잡스? 애드 캣멀? 에릭 슈밋? 제프 베저스?

“제프 베저스가 가장 흥미로웠어요. 아마존 초창기에 그는 ‘불완전함의 경쟁력’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둔중하고 느린 경쟁자들이 추격해 오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준비 없이 일찍 출시하곤 했습니다. 유통 과정에서 제품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고 데이터베이스는 먹통이 되기 일쑤였어요. 하지만 계속 움직이고,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거대한 혼란을 일으켜서 경쟁자들을 물리쳤습니다.

바둑기사였던 칼센도 인상적이었어요. 칼센과 대국하면 상대 선수들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어요. 그가 두는 수가 그의 기량에 비해 훌륭하지 않았지만, 칼센이 두는 수 하나하나가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렸어요.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방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AI 기술 발전과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세계의 엔트로피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이즈음, ‘혼돈의 달인’인 트럼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샘 올트먼, 일론 머스크 등의 실리콘밸리 실력자들 그리고 트럼프 같은 사람들이 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곤혹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사소한 불편함을 제거했지만, 동시에 매우 큰 리스크를 만들어냈습니다. 정치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 닥친 사회적 리스크도 포함해서요.

트럼프는 제게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그는 권력을 얻기 위해 혼돈을 이용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편안한 세상을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 혼돈 속에서 자신이 ‘최고의 우두머리(Top Dog)’가 되는 세상이죠.”

▲보석같은 혼돈의 순간들을 담은 책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10년 전 출간된 ‘메시’의 개정판이지만, 2026년의 문제 의식과 맞닿아 더욱 동시대적이다.

-세계가 이토록 눈부신 혼돈과 우연 속에 있다는 것을 정리하면서, ‘유레카’를 외쳤던 어떤 순간이 있었습니까?

“이 책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기에 완벽한 도입부라고 생각하는 키스 재럿 이야기는 사실 오랫동안 책 뒷부분에 묻혀 있었습니다. 집필 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아, 이게 맨 앞으로 와야 해!”라고 깨달았죠.”

-당신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혼돈의 시기를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학창 시절 무대 위에서의 한순간이 기억나네요. 웅변대회에 나갔는데 대회 규칙상 원고는 15분 분량이어야 했고, 작은 메모 카드 한 장만 지참할 수 있었습니다. 대본 없이는 말하기가 너무 무서웠던 저는 모든 단어를 깨알같이 적어 넣고 색깔별로 하이라이트까지 칠하며 엄청나게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연습을 워낙 많이 했는데도, 대회 도중, 연설 중간에 그 작은 대본에서 제가 읽던 곳을 놓쳐버렸습니다! 다음 문장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죠. 돋보기를 들고 대본을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말이 되는 대로 계속 지껄였습니다. 그런데 대본 낭독보다 자연스럽게 말할 때의 연설에 청중들이 훨씬 더 큰 반응을 보였습니다. 거기서 큰 교훈을 얻었죠.”

-책을 쓴다는 것 또한 카오스와 코스모스 사이를 오가는 힘겨운 균형잡기죠. 어떻게 해나가고 있습니까?

“제 첫 책은 ‘경제학 콘서트’였어요. 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그저 흥미로워 보이는 것들을 탐구해 갔는데, 가장 성공한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제 생각에 독자들은 순진하고 소박한 탐구의 자세,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의 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사냥하러 다닙니다. 아이디어를 설명하려 하기보다 이야기를 쫓아가고 그 뒤에 벌어진 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루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지요?

“자신에게 잘 맞는 루틴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그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루틴을 과감히 깨뜨리고 평소와 다른 일을 해보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도 루틴이 있습니다. 달리기하고, 운동을 즐기며, 자주 가는 단골 커피숍도 있죠. 하지만 저는 이 습관들을 의도적으로 뒤섞으려 노력합니다. 너무 편안한 상태에만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요.”

▲팀 하포드는 경제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바스티아 경제저널리즘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 Fran Monks

-알고 보면 인간은 질서를 좋아하지만 세상은 혼돈과 무작위가 기본값입니다. 그래서 다들 자기만의 패턴과 프로세스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겠지요. 하지만 자동화 바람이 거세질수록 ‘실수와 반복을 통한 숙련’이라는 인류의 노동 패턴은 더욱 희귀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탈, 변주, 통합’ 같은 개인의 잠재력 같은 것들도요.마지막으로 불완전한 우리가 AI 전능 시대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미래를 통제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비록 두렵고 불편하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AI는 분명 위협적이지만, 제가 존경하는 많은 사람이 AI를 가지고 놀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봅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경청하고 즐기는 법’에서 만큼은 AI에게 지지 맙시다.

낙관적인 태도로 나아가세요. 우리에게 연주해야 할 음악이 있고, 나누어야 할 대화가 있으며,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혼란(Messes to make)이 아직 남아 있다는 약간의 희망만 있다면, 우리 같은 불완전한 인간도 오늘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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