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열풍의 어두운 그림자…13억 인구의 물이 마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외 반도체 시장의 전례 없는 열풍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있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데이터센터 확장 경쟁을 직시해야 합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진행 중인 데이터센터 확장 경쟁이야말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차세대 AI 칩 수요를 떠받치는 거대한 엔진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돌아가는 데이터센터만 해도 이미 만 1,400개를 넘어섰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거대한 인프라를 확장하는 데 2030년까지 무려 3조 달러, 우리 돈으로 4,100조 원이 넘는 돈이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부신 AI 데이터센터의 팽창 이면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똑똑해질수록,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목이 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그거 매번 나온 얘기 아니야?" 이렇게 뻔한 얘기를 다시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는 보고서가 나와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유엔 소속 학술기관인 유엔대(UNU) 물·환경·보건연구소(INWEH)가 아주 무거운 보고서 하나를 던졌습니다. 제목은 <인공지능(AI) 에너지 사용의 환경 비용: 탄소, 물, 토지 발자국>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AI가 지구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낱낱이 파헤친 보고서입니다.

■ AI 데이터센터는 프랑스 1년 전력만큼 전기를 쓴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력량이 무려 448테라와트시(TWh)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감이 잘 안 오시죠? 만약 전 세계 데이터센터를 모두 모아 하나의 '국가'로 가정한다면, 프랑스의 일 년 전력 사용량과 맞먹고 단일 국가로는 세계 11위의 거대한 전력 소비국이 됩니다.
더 무서운 건 속도입니다. 지금 추세라면 2030년에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지금의 두 배인 945TWh까지 폭증합니다. 전 세계가 쓰는 전력의 3%에 달하는 양입니다.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인구 6억 5,000만 명이 넘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나이지리아 등 3개국의 국민 전체가 일 년 동안 쓰는 엄청난 에너지가 오직 AI와 데이터센터를 돌리는 데만 쓰이는 셈입니다.
전기만 많이 쓰는 게 아닙니다. 지구의 자원도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보고서가 경고한 2030년의 환경 청구서를 잠깐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매일 쓰는 챗GPT는 어떨까요? 차세대 모델인 GPT-5를 한 번 '훈련'하는 데만 축구장 215개 면적의 땅과 10억 리터의 물, 그리고 100기가와트시(GWh)의 전력이 들어갑니다. 게다가 챗GPT가 하루에 처리하는 25억 건의 답변(추론)을 연간으로 계산하면, 사하라 이남 지역 50만 명이 일 년 동안 쓸 생활용수가 날아가고 축구장 800개 크기의 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구글에서 생성형 AI 검색을 한 번 할 때(3Wh)는 기존 일반 검색(0.3Wh)보다 10배 많은 전기가 사용되고, 요즘 유행하는 고해상도 AI 영상을 하나 만들 때는 무려 415Wh 이상의 전력이 소모됩니다폰 화면 뒤에서 지구의 자원이 실시간으로 녹아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환경 정의(Justice)'의 문제도 꼬집습니다. AI 인프라의 90%는 미국과 중국 등 단 32개국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150개국이 넘는 나라들은 AI 기술 구경도 못 해보는데, 반도체에 들어가는 광물을 캐느라 땅이 파헤쳐지고 전자 폐기물을 뒤집어쓰는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기술의 혜택은 기고, 쓰레기와 환경 오염은 빈국이 감당하는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 "숫자에 가려진 진실을 봐야"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와, AI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전 세계 내로라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생각은 조금 더 입체적입니다. 스페인, 독일 등 글로벌 사이언스 미디어센터(SMC)에 모인 전문가들은 이 보고서의 경고에는 공감하면서도, "숫자의 공포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며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관통하는 핵심 맥락을 세 가지 질문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질문 1, "효율성이 좋아지면 해결되는 것 아닐까?"
흔히 기술이 발전해서 반도체 칩이 전기를 적게 쓰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최근 등장한 중국의 '딥시크(DeepSeek)' 같은 모델은 기존보다 훨씬 적은 비용과 전력으로 높은 성능을 내서 세상을 놀라게 했지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 즉 '효율성의 함정'을 경고합니다. 아만다 턴불 맥레이 뉴질랜드 와이카토대 법대 박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술이 좋아져서 연산 비용이 싸지면,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AI를 훨씬 더 많이 쓰게 됩니다. 결국 전체 환경 발자국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는 덫에 걸리게 되죠."
쉽게 말해, 기름값 아끼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나오니 차를 더 자주 타서 결국 전체 기름 소비량은 비슷해지는 현상과 같습니다. 단순히 기술적 효율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에너지 사용량 자체를 제한하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질문 2, "그렇다면 내 검색 습관을 바꿔야 할까?"
보고서에는 챗봇에서 질문할 때 짧게 하라거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코드를 아껴 써야 한다는 조언이 담겨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독일 인공지능 연구소(DFKI)의 볼프강 마스(Wolfgang Maaß) 교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챗봇에서 '보내줘' 대신 '감사합니다'를 쓴다고 전기가 더 드는 걸 걱정하는 건 본질을 흐릴 뿐입니다. 진짜 절약은 시스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사용자가 조심할 게 아니라, 구글이나 오픈AI 같은 기업들이 간단한 질문은 알아서 전기를 적게 먹는 '소형 AI 모델'로 연결해 주는 시스템(라우팅)을 짜야 한다는 겁니다.
나아가 알베르트 비펫 와이카토대 교수는 "모든 것을 거대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로 보낼 게 아니라, 우리 스마트폰이나 PC 안에서 직접 계산하는 '온디바이스(로컬) 컴퓨팅'으로 전환해야 전기를 진짜 아낄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20세기 거대한 메인프레임 컴퓨터에서 개인용 PC(PC) 시대로 넘어왔듯, AI 역시 각자의 기기로 분산되어야 지구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질문 3, "데이터센터는 정말 환경의 절대 악일까?"
가장 흥미로운 반론은 AI가 오히려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앤드루 파넬 아일랜드 더블린대 교수는 아주 흥미로운 예를 들었습니다.
"최근 개발된 AI 기반 일기예보 모델은 기존에 엄청난 슈퍼컴퓨터를 돌리던 전통 방식보다 무려 1,000배나 더 효율적이고 정확합니다. 이런 AI 발전까지 막아버리면, 오히려 컴퓨터 기후 예측 시스템이 내뿜는 탄소를 줄일 기회를 놓치는 꼴이 됩니다."
울리히 슈파이델 오클랜드대 교수 역시 "AI 기술이 발전하면 태양광 효율을 극대화하거나 성능 좋은 배터리를 만드는 연구를 수십 배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며, AI가 유발하는 탄소보다 AI가 다른 산업에서 줄여줄 탄소가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독일의 피터 라드겐 슈투트가르트대 교수는 냉정한 현실을 짚기도 했습니다.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많이 쓰는 건 맞지만, 전 세계 배출량의 1~1.5% 수준입니다. 철강과 시멘트 산업이 15% 이상을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정치적인 관심이 과도하게 쏠린 감이 있습니다. 진짜 시급한 탄소 감축 과제에서 눈을 돌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다가온 데이터센터, '우리 동네'는 안전할까?
글로벌 논쟁을 뒤로하고, 이제 고개를 돌려 우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뉴질랜드나 아일랜드의 사례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일랜드의 네이선 퀸란 골웨이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 현재 아일랜드는 전체 국가 전력의 무려 21%를 데이터센터가 집어삼키고 있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으로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자체 발전소를 함께 지으라"고 강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더블린에는 자동차 2,000대를 가동하는 수준의 가스 발전기를 단 데이터센터가 들어서서 또 다른 대기오염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역시 수도권은 물론 강원, 전남 등 전국 각지에 데이터센터 유치가 한창입니다. 부경대 명예교수인 오재호 나노웨더 대표의 경고는 귀담아들을 만합니다.
"데이터센터가 뿜어내는 막대한 폐열(뜨거운 공기)이 주변 지역의 기온을 올리는 '열섬효과'를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또 물을 너무 많이 끌어다 쓰면 주변 농가나 주민들이 쓸 물이 부족해집니다. 이제는 국가 단위의 대략적인 환경 평가가 아니라, '동네 단위'의 아주 상세한 기상 데이터로 지역 기후 영향 평가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가뭄이 든 해에 대형 데이터센터가 냉각수를 독차지하자 분노한 농민들이 거세게 시위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헬렌 러터 린콜농업공학연구소 박사는 "이런 일이 남의 일이 아니다. 물 자원이 이미 꽉 찬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면 지역 사회와 물 확보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결국 문제는 '빅테크 기업들의 탐욕과 폭주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로 수렴됩니다.
알리스테어 노트 빅토리아대 교수는 뼈 때리는 질문을 던집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에 수조 달러를 쏟아부은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AI 시장을 계속 키워야만 살아남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이 만든 AI 서비스가 정말 우리 인류와 지구에 다 필요한 걸까요? 오락용 대량 콘텐츠 제작에 쓰이는 전기와, 암을 치료하고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의학·과학용 AI의 가치를 똑같이 두고 전기를 쓰게 해야 할까요?"
그는 기업들의 거대한 기술 독점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 AI(Public LLM)'나 '소버린 AI(주권 AI)'를 구축해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업의 돈벌이에 지구의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으려면, 시민이 뽑은 정부가 "우리가 필요한 AI는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AI 반도체 호황으로 한국 경제가 활력을 얻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챗GPT와 대화를 나누고 고화질 영상을 만들어 즐기는 매 순간,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마실 물이 마르고 우리 동네 어느 한구석이 뜨거운 열기로 채워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오늘부터 챗GPT를 끊거나, 구글 AI 검색을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미 거대한 일상이 되어버린 이 혁신의 질주와 데이터센터의 확산을 개인의 노력으로 막아 세우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조금 다른 차원의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과거 심각한 기후 위기 앞에 무분별한 공장 매연을 막기 위해 '탄소배출권 거래제'라는 인류 공동의 브레이크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이제는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독식을 제어할 '데이터센터 에너지 총량제' 같은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빅테크 기업들이 지구의 자원을 무한정 공짜로 가져다 쓰며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독식하게 내버려둬야 할까요?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그 비용을 투명하게 치르게 만들 청사진을 그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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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재 기자 (windo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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