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번호’로 불렸다…같은 한국인 감시·폭행 간부급에 징역 8년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몸담으며 같은 한국 국적의 조직원들을 폭행하고 실적을 관리한 간부급 조직원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조직원들은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며, ‘식사시간 5분’ 등의 행동강령 준수를 강요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23부 황지영 판사는 지난 2일 범죄단체 가입·활동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관리책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중간 조직원 B씨에겐 징역 7년6개월, 말단 조직원 C씨와 D씨에겐 각각 징역 3년 및 4년6개월이 선고됐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A씨 등은 중국 국적의 한족 총책이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지난해 5~6월쯤부터 수개월 동안 한국인을 상대로 ‘노쇼(no-show)’ 사기를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군인, 교도관, 구청 직원을 사칭해 한국 식당에 전화를 걸어 회식을 예약하는 척하면서 “싱글몰트 25년산 위스키 2병을 준비해주면 나중에 결제하겠다”고 말하며 사전에 만들어 둔 거짓 주류 유통업체 명함을 건넸다. 피해자들이 허위 업체로 전화를 하면, 이들은 미리 짠 대본대로 물건값을 받는 척 송금을 유도했다. 이들에게 속은 한국인 피해자는 50여명으로 피해액은 6억4600여만원이다.
A씨 등은 모두 ‘캄보디아에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흘러들었다. 총책은 한국인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이기 위해 한국인 조직원을 모집했다. 항공권을 마련해주고, 조직원이 현지에 도착하면 도망가거나 신고하지 못하도록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서로 신상을 알지 못하도록 들어온 순으로 번호를 붙이고, 이름 대신 번호로 조직원들을 불렀다.
이들은 캄보디아 현지에 마련된 3층짜리 건물에서 생활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다. 조직원 간 대화금지, 식사시간 5분, 샤워시간 10분, 2인1조 활동, 일과시간 숙소 이동금지 등의 행동강령이 내려졌다. 이를 어기면 폭행을 당하거나 벌금 100~200달러(약 15만~30만원)를 내야 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근무했다. 월급으로는 2500달러(약 380만원)를 받았다.
A씨는 ‘11호’로 불리며 한국인 팀원을 관리하는 부장 직급을 맡았다. 중국인 관리책과 보이스피싱 방식을 논의하고 ‘실적을 내라’며 한국인 조직원을 폭행했다. A씨는 캄보디아에서 붙잡힌 뒤 한국으로 송환되기 전 공범들에게 “우리가 범행에 협조하지 않아 많이 맞았고, 돈도 벌지 못했다”고 진술하자고 회유했다. “너희 진술로 내가 피해를 보면 10배, 20배 갚아주겠다”고 협박도 했다. 황 판사는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며 “범행 후 정황도 매우 나쁘고, 동종 범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어 재범 위험성도 상당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말단 팀원이었던 C씨는 ‘2호’로 활동했다. C씨는 대출을 알아보다 ‘캄보디아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2024년 12월 항공권을 받았고 대포 통장으로 쓰일 자신의 통장을 들고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C씨는 재판에서 “처음엔 보이스피싱 범죄인지 몰랐고, 심한 폭행·협박·감금에 의해 범행에 가담했다”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 판사는 C씨가 출국을 결심할 때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일할 줄 몰랐겠지만, 미필적으로나마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점을 알았다고 봤다. 또 현지에선 보이스피싱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월급을 어머니의 지인에게 부쳤던 점, 휴대전화로 가족과 통화한 점을 들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됐던 것도 아니었다고 봤다. 다만 폭행과 협박에 시달려 범죄를 그만두지 못한 점은 양형 사유에 반영했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재판에서 총 18통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A씨와 B씨는 지난 4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임현경 기자 hyl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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