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한의 재판소원 연구] 사전심사 제도 개선 및 운영에 관한 제언

김진한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전 헌법연구관·헌법학 박사 2026. 6. 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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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마지막 글이다. 본래 마지막 회의 글은 시작할 때 미리 써 두었더랬다. 최근 그 원고를 다듬던 중 헌재의 한 구성원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대화 중 한 질문이 흥미로웠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마지막 글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글의 첫 번째 항목은 그 질문과 답변을, 본래 계획하였던 현행 사전심사 제도 개선에 관한 글은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여 다음 항목에서 서술하였다.

I. 질문과 답변
그의 질문은 이러하였다. "사전심사 판단이 쉽지 않다. 도대체 어떤 사건이 사전심사를 통과할 사건인가?" 이 질문은 재판소원 제도의 운명을 가르는 질문이다.

재판소원을 사법부와 헌재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여 보면, 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거나, 헌법재판소가 법원 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결론을 제시할 수 있는 사건을 선택하려는 유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전심사의 핵심 기준은 '이 사건이 헌법적으로 판단할 가치가 있는가'이어야 한다. 단순한 법률해석의 오류를 넘어, 헌법질서와 기본권 보장의 방향을 정립할 수 있는 사건인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물론 질문자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질문은 마치 밸런스 게임과 같은 딜레마 상황에 닿아 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그만그만한 정도로 중요한, 헌법쟁점 사건이 여러 건이 한 편에 있고, 다른 편에는 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건이 한 건 있다.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가?' 여기서 사람마다의 선택이 나뉜다. 나의 선택은 앞쪽 편이다. 적어도 그 쪽 사건에 대한 판단은 -비록 왜 여러 비슷한 중요도의 사건 중 그 사건인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여도- 앞으로 수많은 사건과 제도 운영에 '헌법적 기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선택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사전심사의 '직관적 기준'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직관적 기준은 '30년 후'이다. 30년 후에도 교과서에 중요 판례로 수록되고, 30년 후에도 법원이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헌법적 기준으로 삼게 될 쟁점이라면 선별되어야 한다. 그 반대로, 당장 몇 년 후의 헌법 교과서에서도 다루지 않을 쟁점이라면, 오로지 사건을 담당하였던 로펌의 광고에만 남을 사건이라면, 사전심사를 통과해서는 곤란하다.

재산권에 관한 복잡한 법률해석 문제에 관한 사건을 상상해 보자. 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 당사자에게는 억울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헌재가 이런 사건의 법률해석 경쟁에 뛰어드는 순간, 재판소원 제도는 또 하나의 심급으로 변질된다. 헌재가 사전심사에서 해야 할 일은 잘못된 재판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헌법의 이름으로 반드시 말해야 할 사건, 앞으로 국가기관과 법원이 어떤 방식으로 기본권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는지를 밝힐 수 있는 사건을 찾아내는 것이다.

II. 재판소원 사전심사 제도의 개선 방향

1. 사전심사 기간 제한의 문제
현행 사전심사 제도 설계에서 가장 중대한 결함이라고 할 것은 재판부의 사전심사 기간 제한이다. 헌재법에서는 재판소원 청구 후 30일까지 사전심사 각하 결정이 없을 때는 심판에 회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재판부에게 부여된 사전심사 기간은 실질적으로 30일이다. 이 기간은, 재판소원과 같은 복잡한 히스토리를 갖는 사건을, 이미 많은 사전심사 사건을 갖고 있는 재판부가, 청구인의 주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고 토론하면서 심사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시한에 쫓겨 사전심사를 하게 될 경우 재판부는 충분한 숙고를 하지 못한 채 통상적인 결정 -즉, 심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 으로 판단할 우려가 크다. 청구인들과 시민들의 기본권 보장에 매우 불이익한 제도이다. 그렇다고 신속한 재판 등 공익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전심사 기간을 짧게 제한하는 것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사전심사의 가장 핵심적인 판단기준은 '사건의 중요성'이다. 여기서 중요성이란 현재 계속되어 있는 사건들 중에서의 '상대적 중요성'이기에 충분한 기간을 놓고 판단해야만 합리적이고 타당한 판단이 가능하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내의 '중요성 판단'은 그 시기에 어떤 사건들이 접수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우연성 판단'이 될 우려가 크다.

독일 헌재와 미국 대법원의 경우 사전심사(사건선별)를 어느 기한 내에 마쳐야 한다고 재판부를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 그리하여 두 재판소 모두 재판부가 판단한 적절한 시간 동안 사전심사(사건선별)를 진행한다.

30일이라고 하는 짧은 사전심사 기간은 당사자, 재판부, 공익,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전심사 제도의 바람직한 작동을 방해하는 잘못된 제도이다.

2. 사전심사 재판부의 문제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에 대한 사전심사에서 매우 넓은 재량권을 행사하여 사건을 각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재량권은 구체적 기준이 없는 채 그 기본권 구제 요청을 거절하는 '문제적 재량권'이다. 재량권을 견제하고 보완하기 위해서 재판부의 다양한 관점에 기초한 심사가 필요하다. 실체적 기준에 의한 통제가 어려운 영역이니 '다양한 판단자와 숙의'라는 절차적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사전심사를 전원재판부가 담당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전심사를 지정재판부라는 3인 소부에서 진행하는 것은 단순히 당사자에 대한 기본권 구제에 공백이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 아젠다를 다양한 관점의 토론 없이 결정하게 되는 문제이다. 편향되게 또는 자의적으로 결정할 가능성을 허용하는 문제이다.

물론 전원재판부가 사전심사를 담당할 경우 과연 그 많은 사건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청구인과 대리인에게 쟁점을 선별하고 압축할 책임을 부여하고, 헌법재판소는 가장 중요한 헌법적 문제에 집중하는 구조를 확보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 안 되는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3.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성
현재 우리 헌법재판소는 법관 경력의 재판관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나치게 획일적인 구성이다. 특히, 재판소원 사건을 심사하는 데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법원의 언어, 질서, 그리고 관행 속에서 성장해 온 재판관들이 바로 그 법원의 재판과 절차를 새로운 관점에서 심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창립 초기부터 사법부와 전혀 다른 인적 구성으로 시작하였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편의 극단, 즉 법관의 관점이 결여된 재판부 구성을 우려하였다. 독일 헌재법은 각 정식재판부 8인 중 최소 3인은 상급법원 법관 가운데에서 임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헌재와 미국 연방대법원은 법관, 학자, 정치인, 변호사 등 다양한 경력의 재판관들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재판소원 제도의 도입은 헌재에 종전과 다른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였다. 헌재의 구성은 보다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4. 시민들의 관심과 감시
현재 우리 헌재의 사전심사 각하 결정문은 사건의 실체와 쟁점에 대하여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략하다. 모든 각하 사건마다 상세한 각하 이유를 기재하기는 어렵다고 하여도 대표적인 몇몇 사건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유를 기재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 연방대법원, 독일 헌법재판소도 사건의 심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결정의 이유를 작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사건선별 결정에 반대의견이 있을 경우 그 반대의견을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사건선별을 받지 못한 사건을 포함하여 모든 사건의 심판청구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경우도 대표적인 사건들에 있어서 부적법 판단의 상세한 이유를 공개한다. 그것을 통하여 국민들과 대리인들은 사전심사의 기준을 알게 된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사전심사의 결정과 기준을 분석하는 것, 비판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보충이고 충전이다.

III. 기획을 마무리하며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된 지 세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직 이 제도의 효용을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헌법재판 제도는 본질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의 긴장을 안고 있는 제도이다. 사전심사에 시민들의 관심을 초대하는 것, 그리하여 더 많은 시민들이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기초위에서 헌재가 토론과 숙의를 거쳐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재판소원이 민주주의와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재판소원이 도입된 것은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에 내려진 축복이다. 그 축복을 권력과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독점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보통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가 재판소원의 무대 전면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와 운영이 필요할 것인가 헌재는 고민해야 한다.

이것으로 6주간의 기획을 마무리한다. 언젠가 대한민국의 후대들에게, 재판소원의 성공이 우리 헌법과 기본권, 그리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진한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전 헌법연구관·헌법학 박사

김진한의 재판소원 연구 연재는 이번 호를 끝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 보내주신 김 변호사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