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tyer] “내 빚도 아닌데 20년째 귀국 못 합니다”… 중국에 발 묶인 한국인들

손덕중 법무법인 지평 상해사무소 지사장·변호사 2026. 6.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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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해에 주재 중인 한국인 A 씨는 부친 별세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 항공편을 예약했다. 푸둥공항 출국심사대에서 그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당신은 출국할 수 없다." 영문도 모른 채 발길을 돌린 그는, 며칠이 지난 뒤에야 사정을 파악했다. 5년 전 이미 퇴임한 중국 자회사의 법정대표인 명의가 등기상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회사의 채무 분쟁이 본인에 대한 출국제한으로 이어진 것이다. 심지어 A 씨는 본인이 채무자도 아닌데 말이다.

재중 한국 기업인과 교민이 가장 빈번하게 직면하는 신체자유 제한은 형사 정식구속이 아니라, 이렇게 통보 없이 발동되는 민사상 출국금지다. 형사 출국금지는 적법한 형사사법절차의 일부로서 그 자체로 문제 삼기 어렵지만, 민사 채무 분쟁에서 비롯되는 출국금지는 사실상 '상업 분쟁의 인질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1. 민사 출국금지의 구조적 함정
민사 출국금지의 발동 근거는 광범위하고 산재되어 있다. 출경입경관리법 제28조는 미해결 민사사건이 있는 경우 인민법원의 결정으로 출국을 불허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2023년 개정 민사소송법 제266조는 인민법원이 사건의 심리와 집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출국제한을 명할 수 있도록 한다. 외국인출입국관리조례와 세수징수관리법에도 별도의 출국제한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발동 단계도 광범위하다. 판결이 확정된 강제집행 단계뿐만 아니라 소송 진행 전 또는 소송 중에도, 채권자가 법원이 명한 보증금을 공탁하고 신청하면 법원은 외국인 당사자나 외국계 기업의 법정대표인·주요 임원에 대한 출국제한을 명할 수 있다. 즉 분쟁 초기 단계에서 채권자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신청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본인의 인지 시점이다. 법원 집행단계의 제한출경 결정에 대해서는 이의신청권 고지의무가 규정되어 있으나, 그 밖의 기관 조치나 다른 절차 단계에 대한 별도의 고지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당사자는 공항 출국심사대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출국제한 사실을 알게 된다. 통상 1회 발동 시 3개월 단위로 효력이 부과되나 사실상 무제한 갱신이 가능한 구조다.

앞서 본 A 씨의 사례처럼,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본인이 채무자가 아닌 경우다. 외국계 기업이 중국 내에서 민사 분쟁에 연루되면, 그 기업의 법정대표인·실제지배인·주요 임원으로 등재된 한국인 주재원에 대해 출국제한이 부과될 수 있다. 분쟁 발생 수년 전에 회사를 퇴직했더라도 등기가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출국금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변제 외에는 출구가 없다
판결이 확정된 강제집행 단계의 출국금지는 채권자들과 합의하여 신청을 취하하게 하거나, 채무를 변제하는 방법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보증인을 세우거나 보증금을 공탁하는 방안이 형식상 가능하나,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도산제도의 한계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첫째, 중국 기업파산법(2006년 제정)은 적용 주체를 '기업법인'으로 한정해 왔으며, 자연인(개인)에 대한 파산제도는 없다. 2025년 기업파산법 개정안이 기업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부담하는 자연인 주주에게도 파산 신청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적용 범위를 일부 확장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업 관련 책임을 전제로 한 예외적 인정에 불과하다. 순수한 개인 채무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둘째, 중국의 기업 파산·청산 절차가 충분히 발달되지 못한 결과,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한계기업이 정상적으로 청산·소멸되지 못한 채 등기상 '유령 존속' 상태로 장기간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회사법 개정으로 과거 외상3법을 근거로 설립된 회사의 경우 변경 등기나 말소 등기 자체가 어려워졌다. 법정대표인이 변경되지 못한 채 그대로 등재되어 있으면, 그 회사의 채무에 관한 출국금지가 법정대표인에게 무기한 지속될 수 있다.

셋째, 중국에서는 판결로 확정된 채무가 시효로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도 사태를 악화시킨다. 한국 민법은 판결 확정 채권의 소멸시효를 10년으로 규정하지만(민법 제165조), 중국은 판결 확정 후 2년 내에 강제집행을 신청하면 더 이상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채무에 종료 시점이 없으니, 그에 연동된 출국금지도 자연 종료될 시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수년에서 십수 년, 사안에 따라서는 그 이상에 이르는 장기 출국금지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일부 당사자는 정식 절차를 통한 해결을 포기하고 밀항 등 비정상적 경로를 선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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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사조력법의 적용 공백
이 지점에서 영사조력법 제11조의 한계가 드러난다. 동 조항은 '체포·구금·수감' 시의 영사조력을 규정하나, 출국금지는 형식상 신체구속이 아닌 '출국 자유의 제한'이므로 동 조항의 직접 적용 여부가 불명확하다.

결국 영사가 제공할 수 있는 조력은 일반적인 정보 안내·변호사 명단 안내 수준에 머무르며, 영사가 중국 정부 측에 출국제한의 해제·완화를 정식으로 요청할 권한도 한·중 영사협정상 명시되어 있지 않다. 사안이 가장 첨예해지는 단계에서 영사 활동의 법적 명분 자체가 취약하여 자국민 보호의 공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4. 통합적 대응 의제
이러한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서는 행정적 조력과 제도적 정비가 동일한 의제 안에서 통합 추진되어야 한다. 핵심은 다음 네 가지다.

첫째, 출국제한 부과의 사전 인지 보장이다. 현행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출국심사대에서야 비로소 인지한다는 점이다. 행정적 차원에서는 영사기관이 중국 인민법원의 집행정보 공개 사이트(中国行信息公网) 등을 정기 점검하여 한국 국민에 대한 출국제한 부과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본인에게 통지하는 절차의 정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적 차원에서는 한·중 영사협정에 한국 국민에 대한 출국제한 부과 시 일정 기간 내 한국 영사기관에 통보할 의무를 명문화하는 협상 의제를 추진해야 한다.

둘째, 영사 개입의 법적 명분 확보다. 영사조력법 제11조의 '체포·구금·수감'을 '신체자유 또는 이동의 자유에 대한 제한 조치'로 확대하거나, 출국제한을 영사조력 대상으로 명시하는 별도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영사가 처분청에 본인의 입장을 제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권한, 장기간 출국제한이 지속되는 경우 외교부 차원의 별도 보고·관리 의무도 함께 명시되어야 한다. 동시에 출국제한·법정대표인 등기 정리 등 전문성을 요하는 사안을 대상으로는 재외국민 법률지원 인프라의 확충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셋째, 외교부의 사안별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 출국금지 사안 중 가장 심각한 유형은 본인이 등기상 법정대표인일 뿐 실질 채무자가 아닌 경우, 그리고 회사가 사실상 청산되었음에도 등기 말소 불능으로 1년 이상 해제가 봉쇄된 경우다. 외교부는 현행 법령하에서도 영사조력법상 일반 조력 의무에 근거하여 중국 측에 처분의 근거·해제 조건 조회와 비례성 관점의 해제·완화를 정식 요청할 수 있으며, 중국이 ICCPR 서명국이라는 점이 그 정당성 기반이 된다. 이러한 유형화된 사안은 영사 차원을 넘어 외교부 본부, 나아가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나 정상회담의 의제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 개별 사안의 외교 의제화 자체가 비례성 심사를 견인하는 효과를 가진다. 동시에 영사조력 사례 연차보고서의 국회 제출 의무화, 한·중 영사국장급 회의의 정례 개최, 유형별 통계 축적이 입법·외교 개선의 실증 자료로 기능하도록 정비되어야 하며, 협정 개정 시 비채무자에 대한 출국제한 발동 요건 강화 조항을 함께 신설할 필요가 있다.

5. 결어
재중 한국인의 출국금지 사안은 개별 기업의 우발적 분쟁이 아니라, 중국 내 한국 경제활동의 구조적 위험에 해당한다. A 씨의 사례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예전 직장이 망했다는 이유로 타의로 중국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가 다시 고국 땅을 밟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손덕중 법무법인 지평 상해사무소 지사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