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공부하던 철학도가 크리에이터가 된 이유

김범수 2026. 6. 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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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철학 크리에이터 이충녕씨
편집자주
온라인 플랫폼 등장 이후 온갖 콘텐츠가 엄청난 양과 속도로 생산·소비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의 주역은 1인 미디어와 독립 채널입니다. 이들이 자본과 기술, 인력을 갖춘 전통적 콘텐츠 생산 구조를 압도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크리에이터들의 창업 이야기와 고민, 애환을 들어보는 인터뷰를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유튜버 이충녕씨는 지난달 18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공유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요즘 지식 유튜버들은 쏟아져 나오는 인공지능(AI) 영상들 때문에 조회수에 타격을 보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타격을 어떻게 하면 덜 받을까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박지연 인턴기자

크리에이터 이충녕(31)씨는 철학교수를 꿈꾸던 철학도였다. 삶과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고 철학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 국내에서 대학을 마치고 독일 유학까지 갔다. 유학 동안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여러 논문을 썼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토대로 쓴 석사학위 논문도 심사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런 논문을 도대체 몇 사람이나 볼까라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귀국할 즈음 그는 철학 크리에이터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유튜브 채널 '충코의 철학'을 운영하는 이씨를 지난달 18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공유사무실에서 만났다.

-유튜브 채널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 무슨 일을 했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독일 유학 가서 2024년에 돌아왔다. 독일에서 하이데거의 본래성 개념과 사랑의 관계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철학 공부는 어떻게 하게 됐고 어떤 미래를 계획했나.

"고등학생 때 삶에 회의를 많이 느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저런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서 철학책들이 와닿았다. 그래서 좀 더 공부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 철학과에 가게 됐다. 대학에서도 철학 공부가 재미있었고 그걸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교수를 목표로 유학까지 갔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기로 정했을 때부터 더 이상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교수의 꿈은 왜 접었나.

"전문적으로 쓰는 철학 논문을 세상 대부분 사람들이 읽지 않는구나라고 느꼈던 영향이 크다. 석사 논문도 썼고 그에 앞서 독일에서 공부할 때 많은 논문을 쓰게 시킨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글은 전 세계에서 이 분야에 특수한 관심이 있는, 많아야 10명 정도의 사람만 읽어줄 것 같았다. 그런 일을 하는데 내 인생의 너무 많은 부분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세상에 필요할 수는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두 번째로는 대학(학부) 3학년 때부터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는데 유학 중에 채널 관련 활동으로 사회 초년생 정도의 돈을 벌기 시작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먹고사는 게 꿈이었는데 그게 어느 정도 해결 될 가능성이 보이니 차라리 이쪽으로 도전해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유튜브 채널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채널 만들었을 때가 2019년 1월이었는데 대중적으로 유튜버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지던 시기였다. 당시는 학자들의 강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인터넷 강의가 유행이었다. 그런데 한국어로 만든 철학 강의 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니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대중이 이해할 만한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 생활비를 매달 얼마씩이라도 유튜브 통해 벌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전업 유튜버가 되기로 했을 때 어떤 구상을 했나.

"새로운 계획은 없었다. 당시 구독자가 10만 정도였고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수익을 내고 있었나.

"영상을 보고 출간 제안이 많이 왔다. 그래서 첫 책을 유학생 시절에 냈고 두 번째 책도 유학 중 준비해 한국 오기 전후해서 낸 것 같다. 크리에이터들을 이용해 강의 영상 만들어 제공하는 플랫폼들이 있는데 그런 데서 강의 영상 제작하자는 제안이 와서 몇 번 하면서 수익도 생겼다. 잡지사 같은 데서 원고 써달라는 연락도 많이 온다."

-채널 이름의 '충코'는 무슨 뜻인가.

"제 이름과 철학자 미셸 푸코에서 따온 '코'를 합친 건데 특별한 뜻은 없다. 채널 시작할 때 이름을 뭘로 할까 하다가 내가 철학자 이름을 쓰고 싶다니까 아내가 된 당시 여자 친구가 그럼 '충코'로 하라고 해서 만든 거다."

-철학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과학에다 사회학, 정치학 관련 주제 등 다양한 것 같다.

"유튜버는 직업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목적도 크다. 그래서 그때그때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다양하게 다루려고 한다. 처음 만든 과학 영상은 그때 유튜브에서 재미있게 본 1시간짜리 영상이 있었는데 그걸 압축해서 15분짜리 정보로 쉽게 전달해보자는 생각에서 했다."

-지금까지 올린 영상을 유형별로 나눈다면.

"크게 철학, 사회, 과학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과학이나 사회라고 해도 철학적인 색채를 띤 것들이다. 주제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가 직접 나와 말을 하는 영상과 목소리만 녹음하는 영상의 차이다. 목소리만 녹음하는 영상들은 정리한 글을 바탕으로 만드는 것이고 얼굴 드러내고 말하는 영상은 거의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본은 없지만 내용 구상을 해서 머리에 정리해 놓고 말하는 것을 촬영하고 어색한 부분은 편집으로 정리하는 식이다."

-영상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구하나.

"중심이 되는 것은 내가 계속 공부해 나가는 내용이다. 책 읽다가 와닿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주력 콘텐츠다. 사회적인 문제는 국내외의 여러 유튜브 영상에서 조회수도 많이 나왔고 인상 깊게 본 게 있으면 사람들이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구나 그럼 나는 여기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질문하고 영상을 만든다."

-어떻게 촬영하고 편집하나.

"지식 유튜버다 보니 아이디어 구상이 중요하다. 섬네일 타이틀이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때가 많다. 그냥 떠오르는 게 아니라 평상시에 계속 하고 있는 생각들이랑 연결돼서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로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나서 내 얼굴이 나오는 영상은 내용 정리를 쭉 한 번 한 뒤 촬영하고 편집한다. 주제가 어렵게 느껴지면 글로 써서 녹음할 때가 많다. 그때는 다양한 시각 자료를 모아서 영상을 만든다. 작업은 거의 혼자서 다 한다."

-영상은 얼마 만에 한 번씩 올리나.

"롱폼 영상은 일주일에 하나 올리고 숏폼은 시간 되는 대로 만들어서 올린다. 숏폼은 롱폼 영상과 무관하게 따로 만든다."

-구독자나 조회수 때문에 고민한 적 없나.

"구독자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다. 유튜버에게 중요한 건 조회수다. 사실 요즘 지식 유튜버들은 쏟아져 나오는 인공지능(AI) 영상들 때문에 조회수에 타격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 타격을 어떻게 하면 덜 받을까 늘 고민한다."

-어떤 영상들이 인기 있었나.

"인기 동영상들 중에 제 주 수입원 중 하나인 책 광고 영상들이 꽤 있다. 신간 소개해달라는 의뢰가 오는데 그중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 위주로 영상을 만들었을 때 조회수가 높았다. 광고주를 의식해 조회수를 고민하면서 섬네일이나 영상을 만든 결과일 수 있다. 철학자들의 주장을 쉽게 설명하는 콘텐츠들을 계속 만들고 있는데 솔직히 그런 콘텐츠는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극적이기보다 소수라도 필요한 사람들이 찾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익은 어떻게 내고 있고 얼마 정도인가.

"유튜브 조회수 수익은 한 달에 200만~300만 원 정도 나오는 것 같다. 그 외에는 광고 영상인데 책 광고가 90%다. 그리고 책 써서 받는 인세, 강연료 같은 것들이 있다. 강연 요청은 중고교, 대학 등 학교 쪽과 도서관, 기업체 등 다양하게 온다."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목적을 잘 구별해야 될 것 같다. 돈을 벌고 싶은가 아니면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건가. 돈을 벌고 싶으면 쉽게 돈 벌 분야를 찾아서 해야 된다. 자아실현이 중요하다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초반에 수익은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게 정립이 안 되면 계속 주변 유튜버들이랑 비교하면서 나는 뭘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고 결국 남이 보고 싶어 하는 걸 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남들이 많이 보는 콘텐츠가 뭔지 분석하고 그거를 쫓아가야 한다. 내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 40%, 남들이 보고 싶어 할 콘텐츠 60% 정도로 한다든지, 그 두 가지를 같이 녹여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유튜브 채널 '충코의 철학' 인기 동영상.

김범수 선임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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