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첼리스트가 빚은 슈베르트의 밤
[리뷰]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마이스키 트리오. [사진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06/joongangsunday/20260606004518046iwih.jpg)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개막공연은 미샤 마이스키(78)의 첼로 독주회였다. 엄밀히 말해 1부가 독주회, 2부는 실내악이었다. 딸인 피아니스트 릴리 마이스키와 슈베르트 가곡 11곡을 연주한 1부는 ‘가곡의 밤’이란 제목이 붙었다. 이미 알고 있는 노래. 그 궤도를 첼로가 어떤 색채로 지나갈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선의 연주 같았다. 마이스키가 쌓아온 내공이 슈베르트 음악을 순수하게 형상화하고 있었다.
첫 곡은 ‘호기심 많은 자’. 부드럽고 나긋한 첼로는 비브라토를 많이 쓰며 해석의 인장을 찍어냈다. 첼로가 몸에 비스듬히 기대듯 연주하는 마이스키는 편안해보였다. ‘미뇽’은 느린 템포로 시작해서 특유의 감수성을 풍겼다. 첼로 음이라는 걸 느끼기 전에 멜로디가 먼저 뇌리로 들어왔다. 피아노와 함께 격정이 흔들렸다. ‘환상’에서는 포커페이스 같은 첼로가 밝음과 어두움은 한끗 차라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거리의 악사’는 시간이 멈춘 듯, 곡을 근경과 원경으로 조망했고 피아노의 황량함과 여백의 미가 돋보였다. ‘밤과 꿈’에서는 편안한 중저음이 짙은 호소력을 띠었다. ‘방앗간 청년과 시냇물’은 천천히 짚는 지판과 운궁에 따스함과 서글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쉬지 않고 바로 시작한 ‘들장미’는 발랄하고 풋풋했다. 단순하고 간명한 선율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바닷가에서’는 천천히 시작해 격렬한 악구와 대비됐다.
‘음악에게’는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이 인류의 보석 같은 멜로디를 첼로가 목소리보다도 더 잘 길어 올리고 있었다. 재촉하지 않고 느긋한 첼로가 피아노와 잘 어우러졌다. ‘위령의 날에’에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선율이 연속됐다. 끝곡인 ‘그대는 나의 안식’도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 총총한 별빛 같은 피아노와 밤의 들판 같은 첼로의 순간이었다. 첼로는 고음에서 안정감이 두드러졌다. 1부는 마이스키가 첼로의 명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2부의 브람스 피아노 삼중주 1번에는 아들인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산더 마이스키가 가세했다. 1악장, 피아노의 주제 선율에 이어 첼로가 부드럽고 크게 활을 긋고 바이올린이 합세했다. 첼로가 중심을 잡고 곡에 대한 집중력이 강화되며 베토벤 ‘대공’을 연상케 하는 관대한 표정이 떠올랐다. 윤곽이 또렷했다. 서두르지 않고 음을 균질하게 만들어냈다. ‘순음악의 내공’이란 표현이 떠오르면서도 함께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가족이어서 가능한 연주란 생각도 들었다. 음악의 호흡과 완급을 조절하는 마이스키의 첼로 위로 인자한 아버지의 안정감이 오버랩됐다. 1악장의 장대한 피날레를 마칠 때쯤 마이스키의 첼로 현이 끊어졌다. 1악장을 마치고 세 명이 모두 퇴장했다.
기다림이 길어질락 말락 할 때 안에서 첼로 조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셋이 뜨거운 박수 속에 등장해 2악장 연주를 시작했다. 젊은 브람스의 패기가 돋보이는 급박한 스케르초인데, 마이스키의 첼로는 느긋하기만 했다. 피아노가 아름다운 선율을 새기고 트리오 부분에서 세 악기는 뭉근하고 화기애애한 정을 나눴다. 다시 스케르초로 돌아와 끝을 맺었다.
3악장 아다지오는 내려앉는 밤의 어둠처럼 가만히 깔렸다. 멀리 종소리 같은 피아노에 평화롭고 고즈넉한 첼로가 은근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제 소리를 진하게 냈다. 반짝이는 피아노와 두 현이 꿈결 같이 어우러졌다. 마이스키의 호흡이 지극히 섬세한 협주의 고삐를 잡고 이끌었다.
첼로와 피아노가 그을린 빛을 내는 4악장 알레그로 도입부에 이어 바이올린도 비슷한 색채를 띠었다. 브람스답게 선율의 두터운 층이 격렬해지면서 현 사이에 건반이, 피아노 사이에 바이올린과 첼로가 돌출됐다. 마이스키의 운궁은 힘이 넘쳤다.
앙코르는 슈베르트의 ‘노투르노’ D.897이었다. 첼로가 곡의 윤곽선을 확장하는 느낌이었는데, 현의 피치카토에서는 은은한 저녁의 향기가 났다. 피아노는 간명한 선율이지만 고귀함이 느껴졌다. 슈베르트로 시작한 밤의 마무리에 제격인 앙코르였다.
압도하지 않으면서 통풍이 잘 되는 존재감으로 여전히 건재함을 각인시킨 첼로 명인, 마이스키로 시작한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은 12일까지 계속된다.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지휘하는 라흐마니노프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 등 놓치면 아쉬울 공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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