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안 비밀의 계곡, DMZ에 피는 자생화… 비무장지대 아래엔 평화가 있었다
강원도 양구로 떠난
6월의 ‘애국 투어’

가끔 잊고 산다. 냉전 후 지구 상 유일한 분단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의미 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6·25전쟁 날을 앞둔 이 시기쯤이면 민통선(민간인 통제선)과 DMZ(Demilitarized zone·비무장지대)를 품은 접경 지역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국토 최북단 지역이자 한반도의 정중앙, ‘배꼽’에 있는 강원도 양구는 민통선 내 두타연·대암산 등 원시 비경을 온전히 간직한 곳이다. 녹음이 왕성해지는 이맘때면 평화·안보 관광과 함께 생태 관광지로도 주목받는다. 숭고한 희생으로 지켜낸 땅과 한반도를 닮은 섬, 그리고 전후의 가난했던 시절의 단상을 담담하게 화폭에 옮겨낸 화가의 이야기까지, “없던 애국심도 생기게 해준다”는 양구로 ‘애국 투어’를 떠났다.
◇‘피의 능선’ 품은 양구 DMZ
날이면 날마다,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비경이 아니다. 강원 접경 지역 5개 군이 ‘DMZ 평화의 길’을 개방하는 시기에 맞춰 최소 탐방 하루 전 예약은 기본. 출입 시 출입 신고서와 서약서, 신분 확인 후 위치 추적 목걸이까지 착용해야 비로소 탐방이 가능한 곳, DMZ 평화의 길 26코스에 있는 두타연(頭陀淵)이다.
두타연 탐방은 출입 신고소인 ‘두타연 금강산가는길안내소’(033-480-7266·이하 금강산가는길안내소)에서 시작한다. 탐방객에게 개별 지급하는 위치 추적 목걸이는 군이 비상 상황을 판단하기 위한 기기다.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군 관계자는 “이곳은 민통선이 산간 지역에 있다 보니 특히 봄부터 겨울까지는 울창한 숲 때문에 수색이 어려워 착용한 이가 일정 시간 동안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비상 상황으로 간주해 군인들이 출동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실제로 탐방객이 나물을 캐다가 길을 잃고 탐방 지역을 벗어나거나 군사분계선까지 근접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탐방로 중 일부 구간은 군사 작전 지역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그 어느 곳보다 경계가 삼엄한 분위기다.
일반 탐방객들이 주로 찾는 1코스의 경우 ‘금강산가는길안내소’에서 탐방로가 있는 ‘두타연 관광안내소’까지 하차 없이 차량 탑승으로만 이동 가능하다. 차창 밖으로 ‘지뢰’ 푯말과 통제구역을 알리는 안내선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탐방로를 제외하곤 모두 지뢰 구역이나 다름없다. ‘이목교’ 부근엔 철책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커다란 꽃 모양의 설치 예술품이 마중 나온다.



인적이 제한된 땅에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곳 김영란 문화관광해설사는 “두타연 관광지 일대는 멸종 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 보호 지역”이라며 “5~6월은 출산 시기여서 눈에 잘 띄지는 않는데, 그 외 시기엔 운이 좋다면 탐방 중 산양을 목격할 수도 있다”고 했다. DMZ 안에 있던 광산 마을, 문등리의 흔적도 기념 조형물로 남아 존재를 알린다.

두타연 관광안내소 주차장에 내려 바로 생태탐방로로 진입할 수도 있지만, 위령비부터 시작해 조각공원을 거쳐 두타연에 이르는 동선에는 전쟁의 서사가 깃들어 있다. 김 해설사는 “양구는 6·25 전쟁 당시 능선마다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격전이 펼쳐졌던 지역”이라고 운을 뗐다. 방산면, 동면 일대에 있는 피의 능선은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고지전이 이어졌던 지역이다. 이로 인해 일대 능선 곳곳이 피로 물든 듯 처참한 풍경으로 변해 미군 기관지 기자가 이를 보고 “Bloody Ridge(피의 능선)”라고 표현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국군과 유엔군은 피의 능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북쪽으로 11㎞에 걸쳐서 줄지어 이어진 ‘단장(斷腸)의 능선’ 전투가 벌어진다. 조각공원엔 피의 능선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 양구의 주요 고지전에 관한 자료와 함께 평화와 안보를 기원하는 설치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한쪽에 있는 위령비 앞에서 김 해설사는 “참전 군인, 당시 간호 장교였던 분들이 이곳 위령비를 일부러 찾아 추모하고 간다”며 “그렇게 지켜낸 땅이라는 것을 알면 이곳 두타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두타연’을 찾아서
조각공원을 지나면 생태탐방로가 이어진다. 서너 명이 나란히 걷기에도 좁은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는 여전히 ‘지뢰’가 있음을 알리는 푯말이 줄을 잇는다. 군 관계자는 “홍수 등으로 지뢰가 떠내려올 수 있어 계곡이나 하천으로 진입은 절대 금하고, 정해진 탐방로로만 다니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전망대에 서니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계곡의 물줄기가 눈앞으로 펼쳐진다. “얼핏 보면 한반도 지도 모양의 지류”라는 해설사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발아래로는 높이 10m, 폭 60여m의 ‘두타 폭포’가, 그 아래로는 깊고 푸른 에메랄드 색감의 두타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이기도 한 두타 폭포와 두타연은 사태천이 산간지방을 굽이쳐 흐르는 감입곡류 과정에서 굽어진 물굽이가 절단돼 형성된 폭포와 폭호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모여 샘을 이룬 두타연은 1000년 전 ‘삶의 걱정을 떨치고 욕심을 버린다[頭陀]’는 뜻의 ‘두타사’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6·25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민통선 구역에 들어 출입이 통제돼 오다가 2004년부터 제한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했다.


샘 너머 동쪽 암벽엔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 중 하나로 치는 기도 명소 ‘보덕굴’이 자리한다. 생태탐방로를 통해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면 보덕굴 안쪽까지 살펴볼 수 있다. 두타연 부근엔 소원 돌탑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두타연을 사이에 둔 징검다리와 출렁다리는 또 다른 각도에서 원시 비경의 계곡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숲길 사이를 걷다 보면 옛 집터의 흔적, 녹슨 철모 전시품 등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다. 탐방로 일부 구간은 양구 DMZ 일대를 사진에 담아 출간했던 배우 소지섭의 사진 에세이집 이름을 따 ‘소지섭 길’이라고 명명해 놓았다.


두타연 1코스를 제대로 둘러보면 1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일반 탐방객들은 두타연 관광안내소에서 다시 차량에 탑승해 금강산가는길안내소로 퇴장한다. 방문 예정일 전날 오후 4시까지 양구군 ‘안보관광지 통합예약시스템’을 통해 예약 후 탐방 가능하다.


이와 별개로 도보 2시간 30분 코스인 ‘DMZ 평화의 길 26코스(금강산가는옛길)’ 탐방객은 금강산가는길안내소 반대편에 있는 ‘비득안내소’에서 시작한다. 차량 이동 구간은 양구군 셔틀버스를 이용하며 평화의 길 일부 코스 이동 시 인솔자와 군인들이 동행한다. 이 코스는 최소 8일 전 예약해야 탐방 가능하다.
◇을지전망대에서 ‘펀치볼’ 감상
금강산가는길안내소에서 나와 차로 40분 해안면으로 북상하면 ‘을지전망대’(개인 4000원)가 기다린다.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1㎞ 남쪽 지점인 최전방 해발 1049m의 가칠봉 능선에 있는 을지전망대는 DMZ 전망대로 출입신고소인 ‘양구통일관’(033-481-9021)에 들러 출입신고서 작성과 신분 확인 후 인솔자와 군인들 동행하에 회차별 탐방이 가능하다. 당일 현장 탐방 신청도 가능하나 민통선 내 군부대 상황이나 기상 상황에 따라 불시 통제가 있을 수 있다.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안보교육관부터 들르는 게 순서다. 6·25 전쟁 당시 치열했던 펀치볼 전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 양구의 주요 전투와 ‘김일성 고지’ ‘스탈린 고지’ 등 북측의 주요 고지에 대한 영상을 감상하고 나면 암막 커튼이 열리며 창 너머로 영상에서 본 북쪽 땅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가까이 매가 많다는 매봉, 구름이 걸린다는 운봉뿐 아니라 동북쪽으로 금강산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시계가 좋아 금강산 비로봉까지 보인다”는 인솔자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멀리 비로봉까지 조망된다. 가까이 있는 우리 국토 영역의 가칠봉은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 유일하게 우리 땅에 속한 봉우리라는 말이 있다. “가칠봉을 차지하기 위해 무수한 군인이 희생했다”는 말에 숙연해진다. 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군사분계선과 1㎞ 정도 거리에 자리한 북한군 초소를 목격하고 나면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실감난다. 안보교육관에서 놀란 가슴은 을지전망대에서 달랜다.

전망대에 서면 가칠봉 전투로 지켜낸 ‘양구 펀치볼’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특산품인 ‘펀치볼 사과’와 ‘펀치볼 시래기’로 익숙한 이름의 양구 펀치볼은 해발 400~500m의 고지대에 발달한 분지로 마치 화채(Punch) 그릇(Bowl)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현재 6개 리 470여 가구 17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땅을 감싸 안은 듯 동그랗게 두른 산 능선들과 하얀 구름 아래 조각보처럼 펼쳐진 만대벌판엔 풍요로움이 가득하다. 짤막한 탐방을 마친 뒤 까맣게 그을린 앳된 얼굴의 군인들 ‘호위’를 받고 하산하면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지고 고개가 숙여진다.
◇DMZ에서 피고 지는 꽃
을지전망대, 양구통일관에서 차로 10분 이내 거리, 펀치볼 영역에 자리한 ‘국립DMZ자생식물원’(033-480-3000·이하 DMZ자생식물원)을 지나칠 수 없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DMZ에서 홀로 피고 지는 꽃과 식물이 기다린다. 분단 이후 민간인 접근이 통제·제한돼 온 DMZ는 자연 생태계의 보고(寶庫)이자 ‘비밀의 정원’과 같다. DMZ와 북방계 고산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식물을 보전하기 위한 ‘고산식물원’과 DMZ 지역의 식물을 수집·보전하는 ‘DMZ보전원’, ‘습지원’을 포함한 기존 5개의 전시원 외 개원 10주년을 기념해 ‘북한식물전시원’을 조성하고 조성 기념 특별 개방 행사를 28일까지 연다.


백두산떡쑥, 흰양귀비, 장백패랭이꽃, 하늘매발톱, 너도개미자리 등 한반도 북부 지역 및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 식물 89종은 이름도 다양하다. 동일한 학명이지만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같은 식물 다른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나라에선 ‘삼지구엽초’가 북한에선 ‘음양곽’으로, 우리나라에선 ‘나도양지꽃’이 북한에서는 ‘금강금매화’로 불린다. 한쪽엔 노란 나도양지꽃이 활짝 피어 반기고 아담한 못에선 산란기를 맞은 맹꽁이 소리가 요란하다. 북한식물전시원 개방 기간 금~일요일엔 해설도 진행한다.

◇박수근미술관 거쳐 한반도 섬까지
더는 북으로 갈 수 없으니 남으로 차를 달린다. 양구읍에 가까워지면 근·현대를 살아낸 양구 출신 미술계 거장 박수근 화백의 그림들이 눈에 띈다. 아파트 외벽에도, 어느 골목 담벼락에도 온통 박수근의 그림들이다. 길 이름마저도 ‘박수근로’다.




박수근 생가 터인 정림리 안쪽에 자리 잡은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033-480-7228·성인 6000원, 학생 3000원)에는 양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해 나갔던 박수근의 이야기와 독특한 그림이 맞이한다. 온화한 표정의 박수근 동상이 있는 빨래터 부근엔 ‘빨래터’ 그림 안내판이 먼저 나온다. ‘박수근 작고 60주기 소장품 특별전 ‘봄이 오다 : 정림리에서 전농동까지’ 연장 전시(~28일)에선 전쟁과 가난의 시대를 묵묵히 살아낸 박수근의 주요 작품 ‘나무와 두 여인’ ‘가족’ ‘고목’ ‘노상’ 속 인물들이 말을 걸어온다. 박수근 기념전시관을 비롯해 일대는 현대미술관, 파빌리온, 어린이미술관, 라키비움 등 전시관이 모여 있다. 라키비움 전시관에선 박수근의 그림 속 인물들이 미디어아트로 하나둘 살아나 색다른 감동을 준다.


해가 기울 즈음 가까이 있는 최북단 인공 호수인 ‘파로호’로 향한다. ‘파로호꽃섬’의 초입엔 초여름을 알리는 빨간 양귀비가 바람결에 군무를 춘다. 그 옆 한반도 지형을 축소해 놓은 듯한 인공 섬 ‘한반도 섬’ 산책로에는 젊은 연인들이 한라부터 백두까지 ‘국토 종주’ 산책을 즐긴다. 도로엔 이따금 군용 차들이 오간다. 양구는 대한민국 강원도 땅이다.
[ 6월엔 DMZ 걷고, 평화 노래하는 음악에 흠뻑 ]

DMZ 만나는 축제&행사
6월엔 비무장지대(DMZ)의 의미를 되새기는 축제와 행사가 기다린다. 오는 1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두타연이 있는 강원 양구군 DMZ 평화의 길 26코스에서 ‘DMZ 평화의 길 걷기’ 행사를 개최한다. 두타연 금강산가는길안내소에서 시작해 평화의 길 코스를 따라 90분간 1000명이 함께 걷는 행사다. 가수 션이 동행하며 완보 시 기념 메달과 기념품을 증정한다. 선착순 참가 신청은 ‘두루누비’ 사이트 등에서 할 수 있으며 참가 신청비는 1만원이지만 행사 후 온누리상품권으로 전액 돌려준다.
12일부터 14일까지 강원도 철원 ‘고석정’ 일대에선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6(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 2026)’이 열린다. 정치·경제·이념을 초월해 음악을 통해 자유와 평화를 노래한다는 취지로 2018년부터 열어오고 있는 이 행사는 올해 12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국내 아티스트 14팀과 해외 아티스트 10팀 등 총 24팀이 무대에 오른다. 국내에서는 인순이·페퍼톤스·더 발룬티어스·이승열·백현진·갤럭시 익스프레스 등이, 해외에서는 미국 서스턴 무어 그룹·일본 트리콧·영국 데드레터·호주 마일드라이프·프랑스 출신 루이스 오프만 등이 함께한다. 특화 프로그램인 ‘스페셜 스테이지’는 14일 오전 11시에 ‘노동당사’ 옆 뜰에서 진행된다. 메인 공연은 예약 필수, 전야제는 별도 예매 없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북녘과 불과 3㎞ 정도 떨어져 있는 경기도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는 6일을 시작으로 8월 29일까지 매주 토요일에 토요 상설 공연인 ‘애기봉 플레이리스트’를 마련한다. 클래식, 영화 음악, 기악 연주와 함께 마술과 저글링 공연도 곁들여진다. 조강전망대에서 조강을 사이에 둔 채 물길로 갈라진 DMZ를 조망하고 생태탐방로를 걷는 시간도 특별하다. 탐방은 애기봉평화생태공원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 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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