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점령한 ‘야장’, 낭만과 민폐 사이
주택가 골목∙도심 상권
곳곳으로 확산하는 야장

지난달 31일 오후 8시쯤 서울 성북구의 한 주상복합 건물 1층 구잇집. 인도에 깔린 간이 테이블 10여 개에서 방문객들이 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선선한 날씨 덕인지 가게 안 수십개 좌석은 텅 비어 있었지만, 야외 테이블은 만석이었다. 바로 옆 치킨집 앞에도 간이 테이블이 빼곡히 깔려 있었다. 이 가게들 맞은편으로는 동네 주민들이 산책로로 애용하는 성북천이 흐르고 있다.
도보로 1분 남짓 떨어진 인근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역시 횟집 등이 설치한 야외 좌석에서 손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일부 좌석은 도로를 침범해 손님 등 뒤로 아슬아슬하게 차가 지나다녔다. 직장인 황모(27)씨는 “날이 좋아 일부러 야외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왔다”며 “실내보다 개방감이 있고 밤거리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도 느낄 수 있어 평일에도 야외 좌석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야외에 간이 테이블과 좌석을 깔고 영업하는 이른바 ‘야장(야외 장사)’이 도심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방이 트인 장소에서 식사와 술자리를 즐기려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고깃집과 술집은 물론 횟집·중국집·전집·파스타 전문점까지 앞다퉈 야외 좌석을 마련하고 있다. 전국의 야장 영업 점포를 정리한 온라인 지도 서비스 ‘야장맵’도 등장했다. 지난달 21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참모들과 서울 익선동의 한 고깃집 야외 좌석에서 갈매기살 등을 구워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음·악취·쓰레기… 주거권은?
야장은 주로 을지로·종로·홍대입구 등 인파가 몰리는 상권에 집중돼 있다. 최근에는 주택가 골목이나 생활 상권으로까지 파고드는 추세다.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야외 영업을 하지 않던 점포까지 간이 좌석을 설치하고 나섰다. 식당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최근에는 아예 간판에 ‘야장’이라는 단어를 포함해 개업하는 가게도 늘었다. 포털 사이트나 소셜미디어에서 검색이 잘되도록 해 손님 발길을 끌기 위한 전략이다. 자영업자 190만명이 모인 커뮤니티에는 “매출이 두 배는 는다던데 야장을 해야 할까 고민” “야장 운영 노하우를 공유해달라”는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을지로나 종로3가 야장 거리 등은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대표적인 서울 관광 코스로 꼽힌다. 야장 거리에서 만난 일본 관광객 사토 유키(33)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풍경이라 신기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대해 환영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야외 영업이 도심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소음과 악취, 쓰레기 문제, 통행 불편 등을 호소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특히 상업 지역과 주거 지역이 맞닿아 있는 도심 골목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야외 영업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야장 성지(聖地)’로 불리는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인근이 대표적이다. 종로구 익선동 주택가에서 3년째 거주 중인 직장인 김모(31)씨는 요즘 집에서 창문을 열지 못한다. 주거지 골목까지 취객이 밀려들어와 고성방가를 일삼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장 큰 문제는 냄새”라며 “출퇴근길에 숨을 참아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저녁 시간대에는 담배 연기와 고기 굽는 냄새가, 아침에는 간밤에 배출된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노상 방뇨로 인한 악취가 덮친다. 이 동네 또 다른 4년 차 주민 역시 “이사 왔을 당시만 해도 밤늦게까지 문을 열거나 일요일에 영업하는 식당이 많지 않아 괜찮았는데 작년부터 야장이 생기면서 취객이 늘기 시작해 이제 참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본인들에게는 낭만일지 몰라도 주민 입장에서는 민폐 아니냐”고 했다.
도로나 인도를 야외 좌석이 차지하면서 통행에 불편을 겪기도 한다. 이날 둘러본 종로3가역 3번 출구 앞에서부터 돈화문로 11길을 따라 4번 출구 방향으로 200m가량 이어진 ‘야장 거리’는 점포마다 내놓은 야외 좌석과 기존 포장마차 좌석이 뒤엉켜 혼잡했다. 야외 좌석이 빼곡하게 늘어선 골목 안쪽으로는 빈 술병 박스나 간이 의자가 쌓여 있어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 점포는 ‘민원이 발생하니 줄 서지 마시라’는 안내판을 내걸었지만,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 대기 줄은 여전했다.
마포구 오피스텔촌에 5년째 거주 중인 한 주민은 “지난달 갑자기 집 근처 술집에서 야외 좌석을 깔았는데 조용한 주택가이다 보니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 늦은 시간 잠에서 깬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인근 주택가에 사는 한 50대 남성은 “동네 치킨집이 야외 좌석을 펴놓고 해가 뜰 때까지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며 “새벽녘 주방에서 나는 도마질 소리부터 야외 손님들이 노래하는 소리까지 들려 괴롭다”고 했다. 편의점 앞 파라솔과 간이 의자, 공원 벤치 등 동네 곳곳이 야외 취식 공간으로 변하면서 주민들이 느끼는 일상 속 피로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불법이긴 한데…
거리에 간이 테이블과 좌석 등을 설치하고 장사하는 건 공용 도로 점용으로 대부분 불법이다. 다만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야외 테이블 1줄 영업’이나 ‘점포 앞 대기줄 세우기 금지’ 등의 조건을 걸고 도로 점용과 옥외 영업 허가를 받은 경우 영업을 허용한다. 야장이 성황인 돈화문로11길과 익선동 일부 골목의 ‘상생 거리 조성 사업’을 지난해부터 시작한 종로구청 관계자는 “구 전체가 아닌 일부에만 허가를 내주는 것”이라고 했다.
야장을 허용하지 않은 지자체에서도 단속보다는 계도에 치중한다. 모든 점포를 실시간 단속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단속에 나서더라도 단속반이 떠나고 나면 같은 자리에 다시 야외 좌석이 깔리면서 숨바꼭질이 반복된다. 최대 150만원인 과태료보다 야장으로 인한 영업 이익이 더 많다는 이유다. 한 구청 관계자는 “단속을 강화하면 거리 전체 식당에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상권 활성화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자체 고민을 키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일부 후보는 골목 상권 활성화와 야간 경제 육성을 내세워 야장 거리 조성이나 제도권 편입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장려책은 주민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다. 대구 수성구는 지난 2월 야장 활성화를 위해 옥외 조리 허용 범위를 구 전역으로 확대하고 일부 지역의 옥외 조리 허용 시간을 오전 3시까지 연장하는 등의 조례 개정을 추진했지만, 주택가 민원 우려로 결국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대책이 없어 현재로서는 추진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했다.
◇“손님들이 찾는데 어떡하나”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들은 야장이 생계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호프집 주인은 “요즘 손님들이 야외 좌석을 많이 찾는데 우리만 밖에 테이블을 안 깔면 손님을 다 빼앗긴다”고 했다. 익선동에서 만난 한 이자카야 직원은 “요즘 같은 날씨에는 내부에 좌석이 있어도 손님들이 야외에 앉겠다며 기다린다”고 했다.
이 같은 갈등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야외 노천카페나 테라스 영업이 보편화된 해외 주요 도시에서도 상권 활성화를 요구하는 상인들과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는 주민 입장이 상충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에 따르면 지난해 파리에서는 테라스 영업 폐장 시간을 오후 10시에서 1시간 연장하는 문제를 놓고 주민 단체와 상인들이 충돌했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단속이나 방치가 아닌 정교한 제도 설계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특정 거리에 상권 활성화 분위기가 조성됐을 경우 야외 영업 구역과 시간대를 명확히 규정하고 위반하면 페널티를 부과하는 식의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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