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나서 경제 무너지는데…“집 사려고 줄 섰다” 부동산에 돈 몰리는 이란

수년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던 이란 부동산 시장이 최근 급격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의 군사 충돌 이후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자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한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테헤란부동산중개인협회는 지난 2월 말 전쟁 발발 이후 수도 테헤란의 주택 가격이 약 80% 상승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같은 기간 공식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수준이다.
전쟁 전까지 이란 부동산 시장은 장기간 침체 국면에 머물러 있었다. 마지막 공식 통계 기준 전국 주택 가격 상승률은 전년 대비 35% 수준에 그쳐 높은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수도권은 물론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인식되는 테헤란 외곽과 카스피해 연안 휴양도시까지 매수세가 확산되고 있다.
현지 중개업계 관계자는 “전쟁 전 3000억 리알(한화 약 3억 3600만 원)이던 아파트가 이번 주 5800억(한화 약 6억 5000만 원) 리알에 거래됐다”며 “매도자는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해 매물을 내놓지 않고 매수자는 현금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부동산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극심한 통화가치 하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란 리알화는 최근 1년 동안 비공식 환율 기준 달러 대비 약 53% 가치가 떨어졌다. 현금을 보유할수록 구매력이 줄어드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실물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생활물가 역시 서민들의 부담을 크게 키우고 있다. 식용유 가격은 1년 전보다 354% 상승했고 계란은 343%, 닭고기는 287%, 수입 쌀은 223% 올랐다. 정부가 발표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80%를 넘어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과거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혔던 금 역시 최근 가격 조정이 이어지면서 투자 매력이 약해졌다. 여기에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은행권 건전성 우려까지 겹치며 부동산이 사실상 대체 투자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집값 상승을 경기 회복 신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실제 거래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상당수 거래가 현금 위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 가계다.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테헤란 중산층 지역에 거주하는 한 50대 여성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을 산다는 것은 이제 현실이 아닌 환상 같은 이야기”라며 “식료품을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향후 수개월 동안 전쟁의 후폭풍이 더욱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치경제 분석가 사이드 레이라즈는 “정부는 오랫동안 경제난을 국제 제재 탓으로 돌려왔고 최근에는 전쟁을 새로운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더 극명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혜린 AX콘텐츠랩 기자 hihilin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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