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여전히 프라다를 입는다… 알고리즘도 힘을 못쓰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패셔너블한 그녀들이 돌아왔다! 20년 만에.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클릭과 스크롤로 모든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다. 세 여자의 시간 역시 멈추지 않았다.
미란다(메릴 스트립)는 여전히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실상은 경영진과 광고주의 압박 속에 버티는 신세다. 잘나가는 기자가 된 앤디(앤 해서웨이)는 언론인 상을 받는 자리에서 문자 메시지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
에밀리(에밀리 블런트)만은 다르다. 디올(DIOR)의 홍보 담당이 된 그녀는 패션계의 상위 포식자다. 패션하우스가 패션지 편집장의 눈치를 살피던 시대는 지났다. 모든 것이 변했다. 미디어 환경도, 패션 생태계도, 아름다움의 기준도. 그럼에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2026)는 묻는다. 과연 끝내 변하지 않은 가치가 존재하는가.

앤디는 그토록 원하던 정론지의 탐사보도 기자로 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앤디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패션 잡지 <런웨이>였다. 전편에 등장했던 ‘세룰리안 블루’ 논쟁을 떠올려보자. 앤디는 엇비슷해 보이는 벨트의 색 차이가 왜 중요한지 알지 못했다. <런웨이>는 그녀에게 잠시 거쳐 가는 정류장에 불과했다.
‘리얼 저널리즘’을 꿈꾸는 앤디에게 패션 잡지란 피상적인 욕망을 파는 ‘가짜 언론’이었으니까. 정작 자신이 입은 케이블 니트의 색이 바로 그 ‘세룰리안 블루’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미란다는 앤디의 오만함을 정확히 꿰뚫는다. 패션계가 오랜 시간 공들여 선별한 색을 몸에 걸친 채, 그 세계를 경멸한다고 일깨운다. 그 선명한 푸른빛이 수백만 달러의 수익과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냈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다. <런웨이>는 허영과 환상, 가십만을 파는 잡지가 아니다. 저널리즘은 정치·경제·사회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앤디가 경멸하던 패션 역시 엄연히 문화의 일부다. 의상은 계급과 젠더를 각인하는 기호이며, 패션지는 그 기호의 정치학을 가장 화려하게 펼쳐 보이는 무대다. 패션지는 유행을 선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의 삶과 욕망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해왔다. 이른바 ‘거대서사’가 외면했던 소소하고 다양한 담론들이 의미를 획득하는 장이기도 했다.
60년대 메리 퀀트가 선보인 미니스커트는 정숙함과 순종을 강요하는 기성세대의 규범에 대한 반발이었다. 80년대의 ‘파워 드레싱’ 역시 여성이 공적 영역의 주체로 서기 위한 선언이었다. 그때마다 패션지는 여성들의 욕망과 변화를 기록하며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다.

사회 초년생 앤디의 편견은 <런웨이>와 미란다를 거치며 서서히 무너진다. 그렇기에 앤디는 비로소 <런웨이>에 아름다운 작별을 고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20년 후, 생애 최고의 순간 일자리를 잃은 앤디에게 다시 손을 내민 곳 역시 <런웨이>다. 제안받은 직함은 기획 에디터. 가벼워진 기사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다.
하지만 앤디는 여전히 ‘정통 저널리즘’의 권위를 놓지 못한다. 저널리즘의 각 영역은 그녀에게 여전히 다름이 아니라 위계의 문제다. 하지만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 앞에 선택지는 많지 않다. 미란다 역시 위기에 선 것은 마찬가지다. 패션계에서는 이제 아름다움보다 올바름이 우선하는 가치가 되었다. 미란다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말을 내뱉을 때마다 비서는 즉각 그녀의 언어를 교정한다.
올바름과 아름다움이 충돌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의 기준은 언제나 시대의 권력과 욕망을 반영해 왔고, 그에 대한 저항 역시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의 언어가 감각의 영역까지 규율하려 할 때, 미학은 종종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미란다의 언어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라는 사실과 그녀의 미적 감수성이 수십 년 동안 패션을 추동해 온 힘이었다는 사실은 모순 없이 공존한다. 올바른 언어를 구사하지만 아름다움에 둔감한 편집장과 정교한 미감을 지녔으나 정치적 올바름에 무관심한 편집장 중 어느 쪽이 <런웨이>를 이끌어야 하는가. 영화는 그 질문을 웃음 뒤에 슬쩍 숨겨두고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미란다가 고집하는 종이 출력본은 단순한 아날로그 취향의 산물이 아니다. 스캐닝에 가까운 디지털 독해는 편집장으로서의 미란다가 원하는 총체적 인식에 닿을 수 없다. 또 인쇄 매체가 지닌 물성(物性)은 디지털이 쉽게 대체하지 못하는 감각을 소환한다. 탐미주의자로서의 그녀는 페이지를 넘길 때의 손맛, 갓 출력된 종이의 온기, 잉크 냄새를 포기하지 못한다.
<런웨이>로 돌아온 앤디도 변화에 발맞추려 분투한다. 세련된 뉴요커로 거듭났다지만, ‘패션 피플’의 눈에 앤디는 아직 손 볼 데가 많은 아웃사이더다. 이번에도 나이젤(스탠리 투치)의 도움을 받아 패션지 에디터다운 스타일을 갖추고, 진지한 기사로 잡지에 무게를 더한다. 하지만 경영진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즉각적인 조회수와 화제성.
이후 전개는 매끄럽지만 다소 빤하다. 앤디는 우여곡절 끝에 특종 인터뷰를 독점하고, 미란다는 산전수전으로 벼려진 노련함으로 외부 인수합병 위기를 돌파한다. 두 사람은 미란다의 말처럼 침몰하는 타이타닉 옆 판자에 함께 매달린 운명공동체다.
영화는 ‘레거시 미디어’의 시대를 향수하되, 그 부활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루페로 필름을 들여다보는 나이젤과 출력본으로 최종 교정을 마무리하는 미란다의 모습을 통해 디지털이 끝내 교체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영역을 조용히 비춘다. 효율성과 조회수가 침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에 대한 그들만의 의식(儀式)이다.


이번에도 관객의 웃음 벨 역할은 에밀리 몫이다. 에밀리는 허영 덩어리에 속물적이고 피상적이다. 하지만 패션계는 원래 허영과 자만심을 빼고는 논할 수 없는 세계다. 오스카 와일드는 일찍이 선언했다. 댄디는 외관이 실재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는 자라고. 쥘 바르베 도르비이 역시 『댄디즘과 조지 브러멀』을 통해 허영심이야말로 댄디즘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 말한 바 있다. 어느 시대건 멋쟁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다. 에밀리의 허영은 그 오랜 계보 위에 있다.
허영이란 과연 나쁜 것인가. 패션 산업의 관점에서 허영은 단순히 결점이 아니라 동력에 가깝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 사람만이 남들과 다른 아름다움을 꿈꾼다. 에밀리가 그토록 집요하게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 디올의 홍보 담당으로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설계하는 것—이 모든 것은 허영심이라는 연료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문제는 허영의 유무가 아니라 허영의 방향이다. 에밀리는 선을 넘었다.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남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구축한 문화유산을 탐낸다. <런웨이>라는 상징 자본을 손에 넣으려 하는 순간, 에밀리의 허영은 탐욕으로 바뀐다.

미란다의 반격은 단순한 자리보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런웨이>의 정신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밀라노의 파티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앞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후광 없는 예수의 모습은 흠결 많은 인간을 상징한다. 영화는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적인 것들을 반복해서 호출한다.
인간의 손으로 하는 일은 AI가 산출하는 결과보다 정밀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란다는 말한다. 아름다움을 만들고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고. 영화는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선의의 연결망을 강조한다.
<런웨이>를 인수한 사샤 반즈(루시 리우)는 예술 애호가이자 미란다의 편이다. 나이젤의 추천이 없었다면 앤디는 <런웨이>로 돌아오지 못했다. 신뢰와 의리, 인연은 알고리즘이 끝내 모방하지 못하는, 감정의 결이 작동하는 회로다.
그러나 인간다움이라는 키워드에 매몰되는 순간, 영화는 더 복잡한 질문들을 놓친다. 인간이 AI와 공존하는 지금, 새로운 휴머니티와 아름다움의 가치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의 가치를 만들고 이해하기란 인간의 몫이라고 미란다는 말했지만, 과연 그럴까.
AI는 이미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이 시즌에 팔릴 색’을 예측한다. 트렌드를 분석하고 소비자의 니즈를 읽어내는 일에서 AI의 정확도는 인간의 직관에 필적한다. 그렇다면 미란다가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심미안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전율하는 것. 그것이 축적된 데이터의 처리일지, 인간 감각의 발화인지, 알고리즘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인지는 어쩌면 영영 답할 수 없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 미결의 지대를 미란다의 눈빛에 남겨둔다.

화려한 런웨이 현장에는 도나텔라 베르사체, 나오미 캠벨, 마크 제이콥스 같은 패션계 거물들이 카메오로 얼굴을 비춘다.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이번에는 안나 윈투어 역시 깜짝 출연을 논의했다. 전작 촬영 당시 그녀가 영화에 협찬한 브랜드들에 압력을 넣었다는 루머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현실은 영화를, 영화는 현실을 닮는다. 그 상호 침투가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는 이 시리즈가 지닌 매력 중 하나다. 영화의 마지막, 앤디는 다시 ‘세룰리안 블루’ 니트 차림이다. 이 선명한 푸른빛 니트는 쇠락과 재편, 새로운 태동이 교차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유니폼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색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 채 그 색을 입고 있다.

이수정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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