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오세훈을 지킨 ‘10억 벨트’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요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과 1980년 진행된 신군부의 집권 과정에서 대다수 대한민국 시민들은 대놓고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중학생이던 내 기억으로도 기성세대 상당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국 안정을 바랐다. 통학길에 청계천 ‘평화시장’을 지나야 했는데, 상인들은 “먹고살기 힘들다. 하루빨리 세상이 조용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정치적 민주화에 그렇게 무관심했던 시민들이 6, 7년 뒤에는 완전히 바뀌었고, 6월 항쟁의 토대가 됐다.
□ 이런 변화를 설명할 때 인용되는 도구가 ‘근대화 이론’이다. 미국 정치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1922~2006)은 1인당 국민소득과 해당국 민주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1인당 소득이 3,000~4,000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시민의식이 함께 높아져 정치적 민주화 요구도 커진다는 논리다. 실제로 1980년(1,660달러)과 1987년(3,440달러)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 변화는 립셋이 제시한 추세와 크게 일치한다.
□ 소득 ‘1만 달러’ 구간에서는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 추구가 중시된다. 우리 사회는 2000년(1만1,292달러) 무렵인데, 경제·사회 패러다임이 산업화에서 '삶의 질'과 '웰빙'으로 넘어갔다. ‘마이 카’의 보급으로 여가 및 관광이 확대됐고, ‘주 5일 근무제’ 시행으로 해외여행 스포츠 레저 문화생활 등 삶의 질에 대한 지출도 급증했다. 쌀 중심의 식단도 고기·유제품·다이어트 식품 등으로 다변화했다.
□ 자산가치 상승도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준다. 4일 아침, 대역전극을 이룬 서울시장 개표 결과에는 ‘서울 평균 10억 아파트’ 시대의 정치적 함의가 담겼다. 부동산 압박 정책에, 상당수 아파트의 가격이 10억 원을 넘어선 한강 이북 서울에서마저 반감이 드러났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경기 성남시와 용인시, 하남시의 단체장 선거에서도 야당이 승리했다. 반도체 호황과 아파트 가격 상승이 눈에 띄는 지역이다. 서울과 인근 수도권 일대에 새로운 정치 벨트가 들어서고 있다.
조철환 오피니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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