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림의 HR스토리] 연구하고 개발하며 창작하는 인공지능(AI) 전문가 이제현 실장

2026. 6. 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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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고요.”

재료공학도로서 하드디스크 개발을 시작으로 고체물리학 박사, 시뮬레이션 연구, 연구 교수, 반도체 모델링, 그리고 인공지능(AI) 영역까지. 한 사람의 이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삶이다.

하드디스크를 개발하던 공학도는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고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앞날에는 탄탄대로만 펼쳐질 줄 알았지만, 이내 예기치 못한 변수들과 마주하게 된다. 연구 교수를 거쳐 기업에 합류한 그는 반도체 모델링 업무를 수행하던 중, 뜻밖에도 AI 파트장을 맡게 되면서 온라인 강의로 AI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이후 실무 경험을 더 깊게 쌓기 위해 안정적인 대기업을 나와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적을 옮겼고, 그곳에서 약 1,300일간 밤낮으로 코딩에 몰두했다.

언뜻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 파편적인 경험들이 쌓여, 결국 지금의 그를 만드는 강력한 자양분이 되었다. 현재 그는 평범한 개발자를 넘어, AI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을 펼치며 컬렉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다채로운 경험의 궤적 끝에 피어난 진정한 AI 전문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제현 실장을 만났다.

[이제현 실장, 출처=이제현]
Q1. 안녕하세요? 간략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X 전략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제현입니다.

재료공학과 고체물리학을 전공했으며, 2016년경 삼성전자에서 AI 관련 업무를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AI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Q2.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나? 지금의 모습과 연결되는 특징이나 남다른 점이 있었는지...

그림 그리기와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만드는 활동에도 흥미가 있었고요.

어릴 적 어머니는 카펫 디자이너로 일하셨어요. 거실 바닥에 큰 전지를 여러 장 이어 붙여 놓고 늘 그림을 그리시곤 하셨죠.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림과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공장 근로자로 일하시다 직접 사업을 일구실 만큼 공학적 감각과 손재주가 뛰어난 분이셨어요. 프라모델을 정교하게 만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저 역시 무언가를 만들고 조립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땐 그리 건강한 아이가 아니었어요. 다섯 살 때 폐렴으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너무 심심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퇴원할 무렵 보니 백과사전을 완독했더라고요.

*프라모델 : 플라스틱 재질의 조립식 장난감으로 종류로는 사람, 건물, 자동차, 캐릭터 등이 있음

Q3. 재료공학과 고체물리학, 두 분야를 전공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이유는?

사실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원래 제 전공은 재료공학이었고, 고체물리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할 계획은 없었거든요.

당시 박사 과정 중 오스트리아 공과대학에서 1년간 방문 연구원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처음 오스트리아에 갔을 땐 연구 기간이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죠. 그런데 현지에서 진행한 연구가 예상보다 좋은 성과를 내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함께 연구하던 교수님과 동료들이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끝내고 다시 오스트리아에서 포스트닥터(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진행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한 동료가 농담처럼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오스트리아에서는 포스트닥터가 보통 2년 정도 걸리고, 박사 과정은 3년 정도 걸리니, 차라리 박사 과정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추가 학위 취득은 제게 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어차피 현지에서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1년 정도 더 투자해 새로운 학위를 취득하는 것도 의미 있을 거라고 판단했죠. 무엇보다 당시 진행하던 연구가 무척 흥미로웠고, 더 깊이 연구해 보고 싶다는 열망도 컸습니다. 비엔나에서의 생활 역시 만족스러웠고요.

또 오스트리아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 현지에서 자리 잡아 정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포스트닥터 대신 박사 과정을 선택했고, 연구를 이어가며 결국 고체물리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Q4. 첫 사회생활이 궁금하다.

시작은 예기치 못한 위기였습니다. 비엔나에서 박사 학위를 마칠 무렵, 국내 하드디스크 연구 펀드가 줄줄이 중단된 것입니다. 삼성전자 스토리지 사업부* 매각 여파였어요. 귀국을 앞두고 막막했던 제게 손을 내민 건 서울대의 한 교수님이었습니다. 덕분에 연구 교수로 MRI 자석* 연구를 하며 1년 반 동안 내실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하던가요? 제 논문을 인상 깊게 본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연구원으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게 되었어요. 당시 그들에게 꼭 필요했던 ‘실제 구조 기반의 시뮬레이션’ 경험이 제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입사 후 9개월 만에 또다시 조직 개편이라는 풍파가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직접 움직였습니다. 인사팀에 메일을 보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연구로 회사에 기여하고 싶다”고 당당히 어필했습니다. 그 주도적인 발걸음이 신의 한 수가 되었어요. 대부분의 동료가 삼성전기로 이동할 때, 저는 그 메일 덕분에 반도체연구소 시뮬레이션팀으로 자리를 옮겨 저만의 전문성을 계속 키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스토리지 사업부 : 하드디스크를 연구, 제조, 판매하는 사업부

*MRI 자석 : 병원에서 사용하는 MRI(자기공명영상)에 사용되는 자석

Q5.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모델링 업무를 수행 중 AI를 처음 접했다 들었다. 당시 AI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을 때였을 텐데... 접하게 된 계기와 이후 대응 방법은?

AI는 정말 뜻하지 않은 계기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말, 제가 책임 직급으로 서브 파트장을 맡고 있을 때였어요. 젊은 후배들이 찾아와 AI와 머신러닝*을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싶다며 허락을 요청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머신러닝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잘 몰랐어요. 다만 후배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좋아 보여 흔쾌히 허락해줬죠.

그로부터 약 6개월 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어요. 회사 내부에서도 머신러닝 역량을 가진 인재를 찾기 시작했고, 저는 자연스럽게 그 후배들을 추천했습니다. 이후 2016년 말 삼성전자 전사 차원의 알고리즘 대회도 개최되었는데요. 놀랍게도 저희 파트원이 소프트웨어연구소를 비롯한 관련 직무 구성원들을 전부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큰 충격과 자극을 받았어요. ‘앞으로 이 기술(AI)이 굉장히 중요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2017년, 삼성전자 내에 AI 파트가 새롭게 신설됐습니다. 주요 멤버는 앞서 이야기한 AI·머신러닝 스터디원들이었는데, 정작 이 팀을 이끌 파트장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어느 정도 연차도 있었고 관리 업무 경험도 있었던 터라, 파트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두 차례 관련 제안을 고사했습니다. AI 분야 경험이 당시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기존에 해오던 3D 모델링 분야에 계속 집중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럼에도 당시 그룹장으로 승진한 수석님께서 강하게 권유하셨고, 결국 AI 파트장을 맡게 됐습니다.

보직을 맡은 이후에는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파트원들에게 업무 보고를 받으며 배우고, 퇴근 후에는 코세라*와 유튜브 강의를 통해 AI와 머신러닝을 공부했습니다. 코세라에서는 앤드류 응*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고, 유튜브에서는 당시 홍콩과학기술대학 교수였던 김성훈* 대표님의 강의를 수강했죠. 혼자 공부하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직접 파트원들에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현업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조금씩 AI를 이해하게 됐고, 결국 새로운 분야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머신러닝 : 인공지능의 한 분야로 데이터의 패턴을 스스로 학습해 예측을 수행하는 알고리즘

*3D 모델링 : 실제 제품을 만들기 전 컴퓨터 상에서 입체적인 형태로 설계하고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

*코세라 : 앤드류 응 교수와 대프니 콜러 교수가 설립한 언제 어디서나 대학강의를 들을 수 있는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MOOC) 플랫폼

*앤드류 응 : 스텐포드 대학교 컴퓨터 과학과 교수로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김성훈 : 현 업스테이지 대표로 과거 홍콩과학기술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 역임

Q6. 만인이 선망하는 직장 삼성전자를 떠나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으로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보다 실질적인 경험을 쌓고 싶다는 갈증이 가장 컸습니다. AI 파트장을 맡은 지 1년 정도 지날 무렵부터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파트원들은 AI 기술을 기반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며 크고 작은 상도 받았는데, 저는 여전히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며 배워가는 단계였기 때문입니다. 관리자로서 조직을 운영하는 역할은 수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실무 경험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곧 AI 분야에서 뒤처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가장 컸습니다. 기술은 워낙 빠르게 발전하는데, 저는 관리 업무 비중이 높다 보니 직접 부딪히며 경험을 쌓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거든요.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채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실무 중심으로 일해야겠다 결심했고, 결국 2018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Q7. 2019년 이후 약 1,300일 동안 매일 코딩을 했다고...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AI 파트장을 맡았던 약 1년 반 동안은 직접 개발 업무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관리 업무 비중이 높다 보니 오히려 코딩을 하고 있으면 “관리자가 왜 개발을 하고 있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으로 적을 옮겨 다시 실무와 코딩을 시작해보니,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손이 굳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마치 오랜만에 자전거를 다시 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앞으로는 가지만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금방이라도 휘청거릴 것 같은 상태였죠.

특히 문제의 원인이나 구조는 이해가 되는데, 실제로 코드를 구현하고 해결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때 스스로에게 큰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내가 생각보다 많이 둔해졌구나’라는 현실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 거죠.

당시 제 나이는 마흔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살아갈 날 중 오늘이 가장 젊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은 더 늦어진다.”

그 이후로 매일 코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도 빼놓지 않으려 했고, 그렇게 습관처럼 이어온 시간이 어느덧 약 1,300일이 됐습니다.

[이제현 실장, 출처=이제현]
Q8. 비개발자 출신으로 2022년 마이크로소프트 AI 부문 MVP에 올랐다. 예상한 일인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이크로소프트 AI 부문 MVP 선정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다만 그 행운의 바탕에는 약 1,300일 동안 이어온 꾸준한 코딩 습관이 있었고요.

저는 프로그래밍 언어 역시 결국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매일 접하고 반복해야 익숙해지듯, 코딩도 꾸준히 해야 실력이 쌓인다고 믿었거든요. 그래서 2019년 말부터 블로그를 개설해 그날그날 공부한 내용을 하나씩 정리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SNS*에도 함께 기록했고요. 단순히 결과만 공유한 것이 아니라, 제가 어떤 부분에서 막혔고 어떻게 해결했는지 과정까지...

그러다 보니 제 글을 좋게 봐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연결도 이어졌고요.

어느 날 마이크로소프트 이소영 이사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MVP분께서 제 활동을 좋게 보시고 이사님께 추천해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 MVP 제도*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MVP 후보로 추천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죠.

처음에는 활동 내역과 자료만 제출하면 선정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존 MVP들의 투표와 평가 과정이 함께 진행되는 구조였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께 좋은 평가를 받아 최종적으로 기준 인원 이상의 선택을 받았고, 2022년 마이크로소프트 AI 부문 MVP로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공과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저는 원래 AI나 소프트웨어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용어부터 다시 익혀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오히려 비전공자였기 때문에 더 많이 질문하고, 더 집요하게 공부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특별한 재능보다 ‘매일 꾸준히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몸소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SNS :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온라인에서 사용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정보 공유, 인맥 형성을 통해 관계를 맺고 확장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으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MVP 제도 :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리더십이 있는 전문가에게 수여

Q9. 현재는 AI를 활용해 작품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다. 처음 AI로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사실 그림은 아주 어릴 때부터 제 삶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낙서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하나의 놀이이자 즐거움이었으니까요.

이후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환경에서도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갤럭시 S2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통신 기능 외에 이 기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한 거죠. 이후 펜 기능이 탑재된 갤럭시 노트가 출시되면서는 직접 펜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요. 다만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꾸준히 이어가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죠.

그러던 중 2022년 AI 이미지 생성 기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AI를 활용한 작업 방식 자체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먼저 머릿속으로 완성하고 싶은 장면이나 분위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글로 풀어 AI에게 전달하는 거죠. 마치 소설가가 장면을 묘사하듯 설명해 주면, AI가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생성해주는 방식입니다.

결국 돌이켜보면 AI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일이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어온 ‘그림 그리기’라는 취미와 표현 욕구가 시대의 기술 변화에 맞춰 도구만 달라진 셈이죠. 종이와 펜에서 스마트폰으로, 다시 인공지능으로 표현 방식이 확장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I작품 「셀카」 2024.06, 출처=이제현]
Q10. AI로 만든 작품이 실제 전시가 되고 판매도 됐다. 당시 기분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판매는 ‘숨은 예술가들’이라는 전시에서 이루어졌는데, 사실 그 전시에 참여하게 된 과정 자체가 우연의 연속이었거든요.

2023년부터 페이스북에 AI로 작업한 그림들을 꾸준히 올리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과 교류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끼리 전시회를 한번 열어보자”는 의견이 모였고, 2024년 1월 홍대 인근 공간을 빌려 첫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개발자, AI 연구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한 뜻깊은 자리였죠.

당시 저는 두 작품을 출품하고 약 20분 동안 작품 설명과 함께 어떤 마음으로 작업했는지 그 과정을 공유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참가자들과 명함을 교환한 뒤, 집에 돌아와 연락처를 정리하다가 한 변호사님의 프로필 사진을 보게 되었어요. 미술 전시 포스터 이미지였는데 제목이 ‘숨은 예술가들’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창회에서 주관하는 전시였죠.

왠지 저도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변호사님께 조심스럽게 연락드렸습니다. 그분은 “서울대 동문이면서 미술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만 출품할 수 있는 전시”라며, 관심이 있다면 추천해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작품을 출품하게 됐습니다.

전시는 4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되었는데, 놀랍게도 바로 다음 날인 4월 2일에 작품이 판매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진품 보증서를 작성해야 하니 전시장으로 와달라는 요청이었어요. 당시 저는 대전에서 근무하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급히 서울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건, 그때까지 아내에게 전시 출품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결국 서울로 출발하기 직전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상황을 털어놓았고, 아내와 함께 기쁨을 나누며 전시장으로 가 진품 보증서 작성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고 기분 좋은 추억입니다.

[AI작품 「은행잎나무」 2024.03, 출처=이제현]
Q11. 실장님이 생각하는 AI의 장점과 단점은?

AI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이 원하는 일을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입니다. 반면, 단점은 역설적이게도 인간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사고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AI를 접할 때 “무조건 배워야 한다”, “안 하면 뒤처진다” 같은 의무감이나 불안감으로 접근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AI를 조금 더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셨으면 좋겠어요. 결국 우리가 AI를 쓰는 본질적인 이유는 ‘실생활의 편리함’ 때문이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시간을 아껴주는 수단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창작과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가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일주일 이상 걸리고,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면서부터는 단시간에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그만큼 부작용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AI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다 보니, 언제부턴가 긴 글을 읽는 게 부담스러워졌어요. 예전에는 막힘없이 읽어 내려간 긴 글도 요즘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 정말 ‘뇌 구조가 바뀐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스스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마치 뇌 근육이 손실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결국 AI는 그 자체로 절대 선(善)이나 악(惡)이 아닙니다.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라 생각합니다.

Q12. 바야흐로 AI의 시대다. 좀 더 AI와 친해지고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AI를 거창한 신기술로 보기보다, 일상생활을 돕는 ‘유용한 도구’로 가볍게 접근하시면 좋습니다.

일례로 제 아내의 활용법이 아주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은데요. 아내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AI를 정말 유연하게 활용합니다. 다양한 영어 예문을 만드는 데 AI의 도움을 받아요. 아무래도 영어는 우리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로 다채로운 문장을 즉흥적으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수학 공부를 할 때도 유용합니다. 아이들이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나면, 아무리 깨끗하게 지워도 낙서나 흔적이 남기 마련이잖아요. 틀린 문제를 다시 풀려야 할 때 난감하죠. 이때 아내는 문제집을 사진으로 찍어 AI에게 낙서와 채점 흔적을 지워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AI가 감쪽같이 새 문제집처럼 만들어 주더라고요. 더 나아가 심화 문제까지 알아서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이처럼 핵심은 내가 귀찮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대신 해 줄 ‘똑똑한 조수’로 AI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비결은 거창한 공부가 아닙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이것저것 편하게 시도해 보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내가 어떠한 일을 어느 범위까지 AI에게 맡길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될 거예요.

Q13. 미래의 AI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분명 지금과는 다를 것 같다. 이에 대한 생각은?

AI는 앞으로 우리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꿀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순히 AI 숙련자가 우위를 점하는 시대를 지나, AI를 다루는 것 자체가 ‘기본 역량’이 되는 시대가 올 것 같아요. 과거에 인터넷 검색이나 이메일, 파워포인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다들 낯선 신기술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걸 못하면 아예 업무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죠. AI 역시 정확히 비슷한 흐름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들 것입니다. 실제로 이미 현장에서는 AI 활용 여부에 따라 업무 처리 속도와 결과물의 퀄리티 차이가 눈에 띄게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동시에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가파르다 보니, 기존처럼 자격증이나 시험으로 누군가의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입니다. 정형화된 평가 기준이 기술의 진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앞으로는 서류상의 타이틀이나 스펙보다, 실제 결과와 성과 중심으로 전문가의 기준과 시장의 권위가 재편될 것이라고 봅니다.

Q14. AI 시대, 가장 주목받고 각광받는 미래의 직업은 무엇일까?

AI 시대는 역설적으로 사람을 직접 상대하고, ‘감정과 신뢰’를 다루는 직업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고 깊은 유대감을 형성해야 하는 정치인 같은 직업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또한 심리 상담가나 종교인처럼 인간에게 진정한 위안을 주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도 점점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실제로 상담 일을 하는 지인은 AI 상담에 과도하게 의존하다가 정서적 상태가 도리어 악화된 사례를 전한 바 있습니다. 의사들 역시 환자가 AI의 답변을 맹신하고 마음대로 약 복용을 중단했다가 병세를 키워서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결국 데이터가 놓치기 쉬운 사람의 미묘한 상태를 세밀하게 살피고, 책임감 있게 중심을 잡아주는 ‘인간의 역할’은 앞으로도 꼭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외로 ‘영업직’도 아주 오래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특히 대면 영업은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이나 분위기, 감정 변화를 순간적으로 읽어내고 관계를 맺는 게 핵심이잖아요. 이런 고도의 정서적 교감과 임기응변은 AI가 쉽게 흉내 내거나 대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Q15. 인기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처음 강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회 발표를 제외한, 첫 대외 공식 강연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개최된 온라인 콘퍼런스였습니다. 강연의 핵심 주제이자 콘텐츠는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Data Visualization)’이었습니다.

기회의 시작은 제 블로그였습니다. 당시 블로그에 데이터 시각화와 관련된 정보나 인사이트를 꾸준히 기록해 두고 있었는데요. 콘퍼런스 주관사인 ‘인공지능 팩토리’의 김태영 대표님이 제 블로그 자료들을 눈여겨보시고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뜻깊은 첫 강연의 기회를 얻게 되었죠.

*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 데이터 시각화로 복잡한 데이터와 숫자를 차트, 그래프, 지도 등 시각적 요소로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과정

Q16. 주로 어떤 주제로 강의하며 본인만의 특화된 강연 주제는?

저는 제 실무 경험을 기반으로, 청중에게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강의를 지향합니다. 주로 AI 활용과 데이터 시각화 분야에 특화되어 있으며, 특히 저와 유사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업무적 맥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할 때 가장 큰 시너지를 냅니다.

저는 단순한 이론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뻔한 교과서적 내용은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실제 현장에서 겪었던 생생한 경험을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합니다. 단순히 도구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실무 과정에서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문제와 이를 해결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일례로 데이터 시각화 과정에서는 데이터 수집·정리 방법론 외에도, 조직 내 실제 보고 과정에서 겪었던 부정적 피드백 사례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상세히 다룹니다. AI 강연 역시 업무별 최적화된 툴 소개와 더불어, 실제 도입 및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적 오류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증적 프로세스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현업의 눈높이에 맞춘 ‘문제 해결형 콘텐츠’가 제 강연의 강점이라 말할 수 있을 듯해요.

[이제현 실장, 출처=이제현]
Q17.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는?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는 2023년 3월, 서울시 교육청에서 진행한 강의였어요. 주제는 ‘ChatGPT 따라잡기’로 교육청 직원을 대상으로 챗GPT 활용법에 대해 강의였는데... 챗GPT의 기본 원리와 특징, 실무에서의 업무 효율화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 뒤, 인공지능 시대의 변화상에 대한 저의 견해를 공유하는 시간으로 구성했습니다.

이 강의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강연 이후 찾아온 폭발적인 반응 덕분입니다. 당시 강연 영상이 서울시 교육청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되었는데, 예상보다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거든요. 외부 연사의 강연 영상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았으니까요. 이 영상을 계기로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강연은 제 강연 커리어의 스펙트럼을 넓혀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주로 데이터 관련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분석 강의’가 중심이었다면, 이 강연 이후에는 ‘인공지능’이라는 대중적이고 확장성 있는 주제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단순히 일회성 강의를 넘어, 제 강연의 영역과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혀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Q18. 마지막으로 AI 전문가인 실장님의 꿈, 인생의 목표는?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를 따로 세우지 않는 편입니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삶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거든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대사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리 정해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삶보다는, 매 순간 마주하는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변혁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세상의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잘 적응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합니다.

소박한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 소중한 일상을 누리며 제 쌍둥이 자녀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더불어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라는 존재로 인해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업무적으로는 아주 명확하고 단호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 AI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고, 그것이 실무 현장에 완전히 정착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와 패러다임의 전환주기를 고려할 때, 길어야 앞으로 3년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라고 생각하며 몰입하고 있습니다.

[김미림 매경비즈 교육팀장(왼쪽)과 이제현 실장, 사진=박나현]
[인터뷰를 마치며]

인공지능 전문가이자 작가로서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제현 실장.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유연한 철학이 대한민국의 미래 과학기술 현장에 강력한 이정표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바쁜 일정 중에도 귀한 인사이트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김미림

기사 작성 및 편집: 김미림, 박나현

김미림의 HR스토리는 매일경제교육센터 MK speake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매경비즈 김미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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