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70%로 인쇄” 홍보하고 50%만 찍었다…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파장
불 붙은 책임론에...노태악 위원장, 사태 이틀 만에 직접 대국민 사과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일에 벌어진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파장이 거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사태에 대해 "통상 선거인수의 50% 정도 용지를 인쇄한다"는 해명과 달리 "선거인수의 70%로 투표용지 인쇄매수를 결정한다"고 홍보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 선거 관련 선관위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선거 당일 사태 파악도 못한 선관위
5일 중앙선관위 설명자료 등에 따르면, 기관은 투표용지 인쇄 과정을 안내하면서 "통상 선거인수의 70%로 인쇄매수 결정·인쇄"라고 명시했다. 이 자료에는 후보자등록 마감 후 기호가 결정되면 투표지원고를 작성하고, 인쇄소에서 정당추천위원 입회 하에 투표용지를 인쇄한다고 설명돼 있다. 스스로 70%를 공표해놓고 송파구 등 일부 선거구 문제에 대해선 '앞선 투표율을 고려해 관내 유권자의 50% 수준으로 본투표 용지를 인쇄한다'고 해명한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지난 3일 서울 송파구·강남구·광진구·동작구 등 일부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 사태가 알려지자 "문제가 생긴 투표소는 서울 소재 14곳"이라고 했었다. 하루 뒤인 4일에야 인천·경기 등 다른 지역 관내 투표소 2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고 알렸다.

문제는 선관위 관련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이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에서는 '소쿠리 투표' 문제가 드러났다.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투표를 진행할 때 기표된 투표지를 바구니나 쇼핑백 등에 담은 것이다. 이듬해에는 선관위 고위 간부들의 자녀, 친인척이 선관위에 부정 채용됐다는 의혹도 감사원 감사를 통해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 기관으로 감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선관위 손을 들어줬다.
이번 사태 관련 중앙선관위원장 등에 대한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관련자들의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를 주장하고 있다. 경찰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도 헌법재판소에 청구됐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상 보장된 참정권이 침해된 만큼 공직선거법 위반, 형법상 직무유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투표를 못하고 돌아간 유권자들의 법적 구제 방안을 두고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가 된 투표소에서는 용지가 동나 투표가 일시 중단됐고, 일부 유권자는 투표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유권자들이 공식 투표 종료 시간(3일 오후 6시) 이후 투표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이 개표가 시작되기도 했다.
"진상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허철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사태 당일 대국민 사과 입장을 밝혔다. 다만 선관위는 4일 새벽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 주재로 긴급위원회를 진행한 후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의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재선거 가능성에는 선을 그은 상황이다. 이어 "개표가 종료되면 중앙선관위는 즉시 이번 사안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다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파장이 가라앉지 않자, 노태악 위원장이 사태 이틀 만인 5일 오후 직접 대국민 사과와 함께 현재 상황 관련 브리핑에 나선다.

청와대는 처음 투표용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선관위가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이라며 "책임질 것이 있다면 명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지난 1963년 '헌법상 독립기구'로 창설됐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노 위원장은 지난 3월3일 대법관 임기가 만료됐지만 94일째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2월 천대엽 대법관을 선관위원으로 내정했지만, 국회 인사청문회가 표류하면서 새 위원장 선출도 늦어지고 있다. 위원장은 관례상 현직 대법관이 비상임으로 겸임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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