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해 투표함 막아선 시민들···1987년 구로와 2026년 잠실의 '평행이론'

이상무 기자 2026. 6. 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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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대선과 9회 지방선거
부정선거 주장하며 대치
선관위 불신 39년 데자뷔
역사적 경험이 낳은 교훈
1987년 12월 대선 후 부재자 투표함을 압수한 학생과 시민 /여성경제신문 DB

2026년 6월 5일 오전 8시 55분, 35시간 넘게 이어지던 '잠실7동 제2투표소 대치 사태'가 경찰의 강제 해산 절차 끝에 투표함 반출로 막을 내렸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일이던 3일 밤부터 시작된 이 초유의 사태로 서울시장과 송파구청장 등 주요 지역 당선자 확정이 기약 없이 지연됐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빚어진 이번 대치에 39년 전의 한 사건이 재조명됐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당시 발생한 '구로구청 선거부정 항의 점거농성 사건'이다. 시대적 배경과 시위 양상은 다르지만 두 사건은 선거관리위원회의 미숙한 대처가 불신을 키우고 시민의 물리적 행동으로 번졌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여성경제신문은 한국 선거사에 상흔을 남긴 1987년 구로구청 사건과 이번 잠실7동 대치 사건을 비교 분석했다.

① 발단: 선관위의 절차적 흠결과 시민의 의혹

두 사건 모두 '선관위의 비정상적 투표함 취급'에서 비롯됐다.

구로구청 사건은 투표가 끝나지 않은 오전 11시 20분경, 선관위원들이 빵과 과일상자로 위장한 미봉인 투표함을 트럭으로 이송하려다 시민들에게 발각되면서 촉발됐다. 봉인되지 않은 투표함과 함께 백지투표용지, 인주, 도장 등이 발견되자 시민들은 이를 부정선거의 명백한 증거로 받아들였다.

잠실7동 사건도 절차적 혼선에서 시작됐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들의 투표 시간이 연장돼 투표가 진행돼야 할 시점이었음에도, 선관위가 본래 마감 시간에 맞춰 투표함을 회수하려 한 것이 화근이었다. 절차적 정당성을 잃은 선관위의 행정 난맥상은 현장에 있던 시민과 유튜버들의 강한 반발과 '부정선거' 의혹을 불러왔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구로구을 우편투표함과 2026년 송파구 개표소에 개함이 안된 잠실7동 제1투표소 투표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역사관, 연합뉴스

② 전개: 투표함 반출 저지와 자생적 조직화

의혹을 품은 시민들이 투표함을 몸으로 막아섰다는 점도 같다. 1987년 시민들은 구로구청 선관위 사무실을 점거한 뒤 '공정선거 감시단'을 중심으로 임시 지도부를 꾸려 수천명 규모의 항의 농성을 벌였다.

이번 잠실7동 사건에서도 시민들은 투표소 출입구를 봉쇄하고 차량 바리케이드를 치며 투표함 이송을 저지했다. 1987년과 같은 대규모 구청 점거는 아니었으나, 시위대는 물과 음료를 자체 조달하고 교대조를 짜며 장기 대치에 대비했다. 일부는 투표소를 드나드는 경찰과 참관인, 구급대원의 가방까지 임의로 검문하려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는 '공정성 감시'와 '군중에 의한 준사법 행위' 사이의 위험한 경계를 드러낸 대목이다.

③ 파장: 당선자 공고 유예

투표함이 현장에 묶이면서 선거 결과 발표가 마비된 것도 공통된 결과다.

1987년 당시 구로구청 사태가 전국적으로 보도되며 진압될 때까지 노태우 후보의 당선 발표가 유예됐다. 2026년에도 잠실7동 투표함이 5일 오전까지 이송되지 못하면서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해 송파구청장, 서울시 교육감 등 관련 선거의 개표 완료와 당선자 확정이 전면 중단됐다.
1987년 구로구청 진압작전과 2026년 잠실 투표소 진압작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역사관, 연합뉴스

④ 결말: 대규모 공권력 투입과 강제 해산

극심한 대치 끝에 대규모 공권력이 투입됐다는 점은 두 사건의 가장 뼈아픈 공통점이다.

1987년 12월 18일 새벽, 군경 5000명(백골단)과 헬기까지 투입돼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1034명이 구속되고 17명이 중상을 입었다.

2026년 6월 5일 오전 8시에도 18개 기동대 약 1000명의 경찰 병력이 재투입됐다. 비폭력을 표방하며 소음 민원까지 자체 통제하던 시민들이었지만 사태 장기화를 막기 위한 공권력 행사를 피하지는 못했다. 1987년과 같은 유혈 진압은 아니었으나 스크럼을 짠 시민들을 한 명씩 끌어내는 과정에서 일부 신체적 충돌이 빚어졌다. 

군중 동원 방식의 변화

군중이 모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87년에는 입소문과 야당 지지층, 시민단체 네트워크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2026년에는 유튜브 생중계와 SNS, 온라인 커뮤니티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기술은 바뀌었으나 "선거가 조작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다는 점은 동일하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감시는 필요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의혹이 곧바로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경우 선거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동시에 선관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1987년이든 2026년이든 사태의 출발점에는 선거 관리 당국의 미숙하고 불투명한 대응이 있었다. 절차적 신뢰는 법적 정당성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시민이 납득할 설명과 실시간 공개, 일관된 대응이 함께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5일 서울 송파구 잠실7동 2투표소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 조치한 뒤 투표함이 개표소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39년 만에 반복된 선관위 신뢰 위기

1987년과 2026년. 두 사건은 '군부독재 종식 직후의 불완전한 민주주의'와 '미디어와 진영 논리가 교차하는 현대 사회'라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본질적 궤는 일치한다. 선거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에 대한 시민의 뿌리 깊은 불신이 존재했고 선관위가 절차적 투명성을 상실하는 순간 그 불신이 폭발해 공권력 투입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1987년 구로구청 투표함은 29년이 지난 2016년에야 개봉됐다. 투표함에는 노태우 3133표(73.9%), 김대중 575표(13.6%), 김영삼 404표(9.5%), 김종필 130표(3.1%), 무효표 82표가 들어 있었다. 물리적 위조는 없었으나 '비민주적 군 부재자투표'의 흔적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6·3 지방선거에서 강제로 반출된 잠실7동 투표함 역시 향후 개표 결과와 무관하게 적잖은 정치적·사회적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투표함을 둘러싼 군중은 시대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 바닥에는 늘 같은 질문이 흐른다. "우리는 이 선거를 믿을 수 있는가." 공정한 선거 관리와 투명한 소통이 없다면 투표함을 둘러싼 국가와 시민의 대치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2026년의 잠실7동이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결정의 내용뿐 아니라 그 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해관계자의 참여 기회, 객관적 기준, 충분한 설명과 합법적 절차가 보장될 때 절차적 정당성이 인정된다. 민주주의와 사법, 행정 분야에서 중요한 가치로 평가된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