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비 걱정하던 세계 114위의 파리 동화…흐발린스카, 프랑스오픈 결승 진출

이가 시비옹테크가 파리의 붉은 흙바닥 위에 군림하는 동안, 그늘 속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같은 폴란드 출신의 동갑내기 단짝이 있다. “친구의 성공이 기쁘면서도 투어 경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내 처지가 서글펐다”는 마야 흐발린스카(24·세계 114위). 서러움과 외로움을 삼키면서 묵묵히 자신의 샷을 이어온 흐발린스카가 2026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 오르면서 테니스 역사를 새롭게 썼다.
흐발린스카는 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대회 여자 단식 준결승에서 디아나 슈나이더(23위·러시아)를 세트 스코어 2-0(7:6<7-4>/6:4)으로 꺾었다. 흐발린스카는 이번 대회 전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통산 1승(2022년 윔블던)밖에 없었다. 이번 대회도 예선 3경기를 이기고 본선 무대를 밟았다. 준결승전이 이번 대회 9번째 경기였고, 전부 이겼다. 프랑스오픈 역사상 예선을 거친 선수가 결승까지 오른 것은 1968년 오픈 시대 이후 처음이다. 4대 그랜드슬램 전체를 봐도 2021년 유에스(US)오픈에서 우승한 에마 라두카누(영국) 이후 흐발린스카가 처음이다. 흐발린스카는 경기 뒤 “솔직히 꿈만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감격해 했다.

‘신데렐라의 탄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금껏 세계 100위권 안에 진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세계여자테니스(WTA) 투어 클레이코트 통산 승수도 겨우 2승에 불과했다. 주니어 시절 복식 파트너였던 시비옹테크가 프랑스오픈에서 4차례 정상에 서는 것을 바라보면서 한때 “나는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유령 같다”는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파리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서 호텔 숙박비를 걱정해야만 했다. 다행히 폴란드 음료 회사(오셰이)가 후원에 나서면서 숙박비 걱정을 덜었다. 흐발린스카는 지금껏 투어에서 통산 86만4030달러를 벌었는데, 프랑스오픈 결승 진출로 최소 162만6744달러의 상금을 확보하게 됐다. 투어 경비 걱정을 덜게 된 셈이다.
흐발린스카는 이번 대회에서 작은 키(164㎝)의 단점을 다채로운 전술과 영리함으로 메웠다. 준결승전에서 슈나이더와 상대할 때도 슬라이스와 정교한 각도 샷, 그리고 드롭 샷을 번갈아 구사하면서 슈나이더의 랠리 리듬을 빼앗았다. 슈나이더는 경기 뒤 “흐발린스카의 코트 커버 범위가 엄청나고 경기를 잘 읽는다”고 말했다.
흐발린스카는 결승에서 19살의 미라 안드레예바(8위·러시아)를 상대한다. 테니스 코트 위에서 천재적 능력을 발휘 중인 안드레예바 또한 지금껏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었다. 신데렐라의 ‘해피엔딩’인지 10대 돌풍의 ‘마침표’인지 결과는 6일 드러난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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