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안성맞춤박물관

■ 안성맞춤의 탄생

권민경 학예연구사를 따라 1층 상설전시실에 들어선다. “우리가 ‘놋그릇’이라 부르는 유기는 구리에 주석, 아연, 니켈 등 다양한 비철금속을 섞어 만든 합금 기물입니다. 유기는 만드는 기법에 따라 성격과 외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구리에 주석을 섞으면 청동, 구리에 아연을 섞으면 황동, 구리에 니켈을 섞으면 백동이 되지요.” 조선시대에는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똑같은 모양으로 대량생산하는 ‘장내기’ 유기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철저하게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맞춤’ 유기 두 종류가 있었다. 당시 양반가에서 세련되고 품격 있는 그릇을 원했는데 그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만족시킨 곳이 바로 안성의 장인들이었다. 안성유기는 광택이 선명하고 마감이 깔끔해 주문자의 마음에 쏙 들었다. “여기서 ‘안성에 맞춤 주문한 유기처럼 물건이나 상황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뜻의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탄생했습니다.” 이상하다. 왜 전시된 그릇이 모조리 엎어져 있을까. 그릇 바닥을 보니 한자 ‘안(安)’, ‘안성’, ‘안성특제’ 같은 명문이 뚜렷하다. 꽃모양의 상표 안에 ‘안성맞춤’이란 글자가 양각돼 있다. 안성에서 제작된 상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명문이다. 조선 후기부터 대량 유통된 주물유기는 미리 원하는 모양의 틀을 만들어 두고 그 안에 쇳물을 부어 굳히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안성에서 생산한 ‘동이’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표면이 균일하고 매끄럽다. “규격화돼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두께를 얇게 만들기 어렵고 충격을 받으면 깨지기 쉬운 것이 단점입니다.”
안성이 유기의 고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록은 다양하다. 죽산 장명사지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탑지석은 고려 초기인 997년 유장(鍮匠)이 있었다는 최초의 기록으로 주목된다. 17세기 학자 이식의 ‘택당집‘과 19세기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십육지’에도 안성 유기를 소개하는 글이 실려 있는데 안성이 전국 제일의 유기 제작처였음을 잘 보여준다. 안성의 장인들은 ‘선수장인(善手匠人)’이라 불리며 왕실의 혼례나 국장 같은 국가의 큰 의례가 있을 때마다 징발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요강부터 젓가락까지, 놋쇠의 무한 변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물 앞에 선다. 방 안에 두고 사용한 큰 요강과 이동하는 가마 안에서 사용했던 작은 요강이다. 초롱과 촛대, 등잔걸이와 발을 말아 올리는 발걸이까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흥미로운 유물이 이어진다. 다림질에 쓰던 인두와 숯을 집을 때 사용하던 부젓가락도 1970년대까지 흔했던 정겨운 유물이다. 자물통과 안경다리는 물론이고 숟가락과 젓가락도 있다. 유기 제품이 얼마나 다양한지 새삼 놀란다. 열 개의 징을 틀에 달아놓은 타악기 ‘운라(雲鑼)’는 모양새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크기가 다 똑같은 작은 징인데 어떻게 소리를 달리했을까. 비결은 뜻밖에 단순하다. “징마다 두께를 다르게 메질했기 때문입니다.” 장인의 망치 끝에서 탄생한 미세한 두께 차이가 아름다운 음률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란다. 장인의 섬세한 감각과 정교한 기술에 감탄한다. 안성에서 생산되지 않았던 방짜유기도 꽹과리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전시돼 있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 대 22의 비율로 섞어 쇳물을 녹인 뒤 식기 전에 망치로 끊임없이 두드리는 ‘메질’을 통해 형태를 잡았다고 한다.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거친 메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좌종(坐鐘)’은 절에서 명상할 때 사용한다. 방짜유기는 수없이 두드려 밀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휘거나 잘 깨지지 않는 단단함을 자랑하지만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우리나라 풍속에 놋그릇을 소중히 여겨… 심지어 대야와 요강까지 놋붙이로 만든다.” 규장각 초대 검서관을 지낸 실학자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나오는 내용이 흥미롭다. 이처럼 조선의 유기는 식기뿐만 아니라 등잔, 화로, 다리미, 심지어 침을 뱉는 타구(唾具)와 요강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보온과 보랭 효과가 탁월해 사계절 내내 애용됐다. 하지만 유기그릇은 주재료가 구리인 탓에 습한 공기에서 푸른 녹이 쉽게 슬어 사용 후 마른 수건으로 닦아 기름종이에 싸는 등 부지런히 관리해야 하는 수고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일제강점기 놋쇠 숟가락까지 전쟁물자로 몽땅 공출하고 1970년대부터 스테인리스 그릇이 보급되면서 유기그릇은 순식간에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최근 유기가 다시 사랑받고 있다. 구리 성분이 가진 강력한 천연 살균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텀블러와 서양식 나이프와 포크, 방문 손잡이로까지 활용되는 것이다. 전통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의 변신이 놀랍다.
■도구머리 갓 걸렸네

2층 농업역사실은 안성의 풍요를 보여주는 유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선사시대의 반달돌칼부터 1970년대까지 사용된 써레와 용두레까지 농사일에 사용된 농기구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경기도무형유산 야장 신인영 장인이 제작한 지역마다 모양을 조금씩 달리한 전국 47종의 호미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5월30일 개관한 작은 전시회 ‘도구머리 갓 걸렸네-말총으로 엮은 이야기’는 유기와 함께 안성의 명품 갓을 소개하는 흥미로운 전시다. “국가무형유산 갓일 이수자 박형박 장인과 함께하는 전시여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전시실을 둘러보면 갓이 탄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갓은 말꼬리 털로 만드는 것으로 알았는데 말총과 대나무가 주재료였다는 사실도 새로 배운다. ‘작은 전시’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내용이 충실한 특별전이다.

안성맞춤박물관은 계절과 절기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문화 놀이터로 변신하고 있다. 얼마 전 진행된 기획전시 ‘슬기로운 유기생활’은 어린이들이 진열장 속 유기를 직접 만지고 관찰할 수 있도록 구성돼 큰 호응을 얻었다. 국가무형유산 제77호 유기장 보유자인 김수영 장인의 ‘안성맞춤 유기공방’과 협력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유기의 매력을 전달했다. 2023년 특별전 ‘내 입에 안성맞춤’은 박물관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전시로 큰 주목을 받았다. 농심 안성공장과 협업한 이 특별전은 한국 라면의 역사와 왜 안성에 라면 공장이 생겼는지의 비화를 유쾌하게 풀어내 지역 공립박물관과 대표 기업 간의 상생 모델로 극찬을 받았다. 동아시아 문화도시 선정을 기념한 아시아 문화 체험, 대학 교양 수준의 ‘지혜학교’ 인문학 프로그램, 안성의 칠장사와 청룡사, 석남사와 안성 곳곳에 있는 미륵불을 배경으로 기획한 ‘안성맞춤 박물관대학’까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감성을 충족해 주는 알찬 프로그램들이다.
안성은 조선시대 대중문화의 중심이던 ‘남사당패’의 발상지이자 총본산이며 세계적인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축제’를 품은 유서 깊은 문화도시다. 안성맞춤박물관은 그 중심에서 든든하게 지역의 정체성을 지켜온 복합 문화공간이다.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담아내기 위해 종합박물관으로의 확장 이전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유물 확보에 힘을 쏟는 것도 이런 전망 때문이다. 고려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희귀 유기와 남사당 관련 역사 자료를 차곡차곡 모으며 앞으로 더욱 풍성해질 ‘문화 거점’의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안성맞춤박물관은 지금 변신 중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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