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그릇, '석유'로 재취업
재활용 외면받던 PSP, 전국 순환체계 편입
컵라면 용기서 나프타까지 열분해 기술 진화
회수부터 원료화까지 구축된 자원순환 사슬
분리배출·경제성 확보가 성공 열쇠
[지데일리] 컵라면 용기와 고기·회 포장용 접시에 널리 사용되는 폴리스티렌 페이퍼(PSP)가 폐기물에서 석유화학 원료로 다시 태어나는 새로운 자원순환 체계가 전국으로 확대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는 이달 1일부터 ‘폴리스티렌 페이퍼 열분해 재활용 시범사업’을 전국 5개 권역으로 확대 운영에 들어갔다.
PSP는 폴리스티렌 수지를 발포해 만든 플라스틱 소재다.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 컵라면 용기와 즉석식품 포장재, 정육 및 수산물 포장용 접시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용 후에는 음식물 잔여물과 기름기, 각종 오염물질이 묻어 있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 과정에서 어려움이 컸다.
특히 유색 제품 비중이 높고 폐비닐 등 다른 폐기물과 혼합 배출되는 사례가 많아 재생원료 품질 확보가 쉽지 않았다. 이 같은 이유로 상당수 PSP는 재활용 시장에서 외면받아 왔다.
재활용 업체들은 이물질 혼입 가능성과 품질 저하 우려로 PSP 반입을 기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선별 과정에서도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결국 많은 양이 소각되거나 매립되면서 자원 낭비와 탄소 배출 문제를 동시에 유발했다.
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열분해 재활용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열분해는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고온으로 플라스틱을 분해해 액체 연료 성분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열분해유는 정제 과정을 거쳐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생산에 활용될 수 있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수지, 섬유 등 다양한 산업 제품 생산의 기초 원료로 사용된다.
지난해 정부는 호남권과 제주권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운영해 약 15.8톤의 PSP를 회수·재활용했다. 올해는 수도권,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 제주권 등 전국 5개 권역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참여 기업도 기존 4개사에서 15개사로 늘렸다.
회수·선별업체가 PSP를 별도 압축·선별한 뒤 열분해 전문업체에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해 보다 안정적인 자원순환 구조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활성화를 위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따른 지원금도 지급된다. 회수·선별 단계에서는 킬로그램당 153원, 열분해 재활용 단계에서는 킬로그램당 154원의 지원금이 제공된다.
EPR 제도는 제품 생산자와 수입업체가 폐기물 처리와 재활용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로, 재활용 시장 활성화와 자원순환 촉진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련 제도는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서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이번 사업 확대는 생활폐기물 관리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동안 폐플라스틱은 처리 비용이 발생하는 폐기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산업 원료로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국제적으로 플라스틱 재활용 의무 확대와 탄소중립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열분해 기술은 새로운 재활용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분리배출 체계다. 소비자들이 PSP를 다른 폐기물과 구분해 배출하지 않으면 선별 효율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음식물이 묻은 용기를 일반쓰레기나 다른 재활용품과 함께 배출하고 있으며, 지역별로 수거 기준도 차이가 존재한다.
지자체 간 선별시설 역량 격차도 걸림돌이다. 일부 지역은 고도화된 선별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도 적지 않다. 전국적인 회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설 현대화와 운영 인력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성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다. 열분해 공정은 높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에너지 사용량이 많다. 또한 열분해유의 시장 가격은 국제 유가와 석유화학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 재생원료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기술 고도화와 공정 효율 개선,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가 요구된다.
재생원료 시장 확대도 필요하다. 기업들이 재생원료 사용을 늘릴 수 있도록 인증제도와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재활용 제품 품질 기준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는 우수재활용제품 인증제도를 운영하며 재생원료 시장 확대를 지원하고 있으며, 순환자원홍보관을 통해 자원순환 교육과 홍보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선 PSP 열분해 재활용 확대가 순환경제 실현을 위한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고 평가가 나온다. 생활 속에서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다시 산업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폐기물 감축과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향후 사업 실적과 경제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며 추가 지원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전국적인 회수 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경우 매년 발생하는 수만 톤 규모의 PSP가 고부가가치 원료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분리배출 문화 정착, 선별 품질 향상, 열분해 기술 경쟁력 확보, 재생원료 시장 확대라는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 체계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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