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00원 시대…맷집도 대응도 그때와는 다르다

문예슬 2026. 6. 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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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 1,540원 터치…금융위기 이후 최고

1,530원. 어제(4일) 오전 서울 외환시장이 문을 열자 원/달러 환율은 17년 만의 높은 수준으로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이란이 쿠웨이트 공항을 공습했다는 속보에 더해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소식, 그제 선거 휴일로 인해 거래량이 적은 '얕은 시장'의 특수성까지 맞물리며 변동성이 증폭된 결과입니다.

주간 거래가 끝난 뒤 이어진 야간 거래에서는 한때 원/달러 환율이 1,540원을 넘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기도 했습니다.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15일부터 13거래일째 1,500원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 말부터 1998년 3월 초까지 49거래일 동안 1,500원대를 이어간 후로 최장기간 1,500원대를 유지 중입니다.

1달러에 1,500원.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대형 경제위기 때 볼 수 있었던 환율 수준입니다. 시장 참여자들에게 공포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를 훌쩍 넘어선 환율이 이어지는데도 '심각한 위기'란 분위기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우리 경제의 맷집은 그때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란 해석이 가능합니다.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약 30년 만에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89억 달러에서 지난해 4,281억 달러로 48배 올랐습니다. 경상수지는 1997년 88억 달러 적자에서 올해는 2,39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해 역대 가장 큰 규모가 예상됩니다.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에 OECD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 1.7%에서 2.6%로 올려잡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달러를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가격이 좀 올랐을 뿐 시장에 달러는 풍부합니다.

■ 수출 잘 되고 성장률 높은데 환율은 왜 오나

그럼 더욱 의문이 듭니다. 모든 지표가 긍정적인데 왜 원화가치는 떨어질까요?(환율은 왜 오를까요?)

우리 경제가 그렇게 매력적이라면 외국인 자금이 계속 유입되고, 환율은 떨어져야 할 겁니다.

하지만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은 계속 빠져나가 19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입니다. 올해 들어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 규모는 117조 원. 경상수지 흑자를 능가하는 규모로 빠져나가니 환율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국내 증시 급등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 조정과 차익 실현에 따른 영향이라는 게 정부 분석입니다. 코스피가 급등하면서 한국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비중을 순식간에 넘겨버리니, 일단은 팔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한국 경제가 매력이 없어서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에 중동 리스크로 인한 유가 상승과 안전 자산인 달러로의 이동, 내국인의 해외 투자 증가 등 구조적 변화도 있습니다.

고환율이 계속되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어제 오전 열린 시장상황점검회의에서 "과도한 쏠림에 필요시 즉시 조치하겠다"며 구두 개입 성격의 발언을 내놨습니다.

어제, 시장상황점검회의


■ "즉시 조치" 구두 개입성 발언 나왔지만

정부의 대응엔 복잡미묘한 고민이 읽힙니다.

앞서 환율이 1,480원을 넘긴 지난해 12월, 정부는 "정부의 의지와 정책 실행 능력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라며 전례 없이 직설적인 구두개입을 내놨습니다. 그즈음 국민연금의 환 헤지가 함께 가동됐고 순식간에 환율은 30원 내려갔습니다.

이번엔 환율이 1,530원에 육박하고 1,500원을 넘긴 지는 13거래일 만에야 상대적으로 약한 수준의 구두개입이 나왔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정부의 대응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 섣불리 개입하면 '실탄' 낭비할수도…'가성비' 타이밍 올까

외환 당국의 고민은 고환율 원인이 내부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원화뿐 아니라 아시아 통화 전반이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이 섣불리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사용한다면 큰 효과 없이 '실탄'만 낭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과열된 열기를 혼자 식혀야 하는 상황이면 그만큼 실탄을 많이 써야 하니까 부담이 될 것"이라며 "엔화 쪽에서 개입이 나와서 아시아장에서 달러 강세 분위기가 잦아들거나 혹은 호르무즈에서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온다면 정책 당국에서도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하기 용이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가성비'가 좋을 타이밍이 있다는 겁니다.


■ "고환율은 성공 비용"?…양극화 우려

원화 약세가 수출을 견인하는 완충 역할도 하는 만큼, 정부가 급하게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속도 조절에 집중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환율을 '뉴 노멀'로 받아들이는 흐름도 감지됩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오늘의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은 한국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곧장 고환율이 어떻게 치러야 할 비용이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김용범 실장의 '성공 비용'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고환율의 고통은 저마다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고환율 영향은) 제조업보다 비제조업에, 수출 기업보다는 내수 기업에,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에 더 클 것"이라며 "고환율의 문제는 '양극화'를 '초양극화'로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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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슬 기자 (moons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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