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산맥 정상에 십자가 사라졌다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산맥의 최고봉 아네토(3,404m) 정상에 서 있던 오래된 십자가가 사라졌다. 지난 4월 8~14일 사이 벌어진 일이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높이 3m에 달하는 이 십자가는 그라인더로 아랫부분을 잘라낸 뒤 수백 미터 아래 설원으로 던져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네토봉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산이라 전문 장비 없이는 오르기 어렵다.
이 사건은 스페인 산악계를 넘어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지역인 베나스크시의 시장은 "문화적 상징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고, 스페인산악연맹도 "불경한 행위"라고 성토했다. 여론 역시 기물 파괴라는 반응이 우세했다. 1951년 세워져 지난해 보수된 이 십자가는 스페인에서 종교의 상징이라기보다 역사 유물이자 지역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반면 공공장소의 종교적 상징물 설치를 반대하며 해당 소행을 지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가톨릭이 여전히 신성시되는 상황에 반대하며, 정교분리를 추구하는 민간단체 '유로파 라이카'는 성명을 내고 "종교 상징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것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유럽 대부분의 산 정상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동시에 이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최근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6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솟은 샤프로이터(2,102m) 정상에 있던 십자가가 훼손됐을 때도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누군가 도끼로 십자가를 훼손하자 독일산악회가 새 십자가를 세웠다. 그러나 십자가는 다시 잘려나갔고, 결국 더 튼튼한 십자가를 세웠다. 범인은 끝내 찾지 못했으며, 당시 인근 여러 산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잇따랐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