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AI보다 잘하는 딱 한가지···사람의 마지막 직업 ‘연결노동’[책과 삶]
100여명 노동자들 인터뷰로 조명
제공자 수혜자 묶어주는 ‘연결노동’
타인의 감정 이해하며 성과 산출
다양한 변수에 즉흥적으로 대응
자동화·표준화하기 어려운 영역


사람의 마지막 직업
앨리슨 J 퓨 지음 | 김재경 옮김
추수밭 | 536쪽 | 2만8000원
키오스크 계산이 일상화된 시대, 네덜란드의 한 슈퍼마켓 회사는 ‘대화형 계산대’를 도입했다. 손님은 계산원과 멤버십 가입 여부, 비닐봉투와 종이봉투 사용 여부에 관해서만 대화하는 게 아니라, ‘스몰 토크’도 할 수 있다. 가볍게는 날씨 얘기부터, 단골이라면 가족의 건강을 물어볼 수도 있다. 손님과 계산원이 친밀하게 사회적 관계를 맺도록 의도된 것이다.
계산이 조금 느릴지 모른다. 대화하면서 불필요하게 개인정보가 노출되거나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슈퍼마켓이 “인간이 기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직 기자이자 현직 사회학자인 앨리슨 J 퓨는 <사람의 마지막 직업>(원제 The Last Human Job)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함으로써 성과를 산출하는 노동”인 ‘연결노동’(connective labor)을 이야기한다. ‘감정노동’과 비슷한 개념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감정노동이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연결노동은 노동자와 수혜자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성직자, 상담사, 교사, 의사 등에게 특히 중요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거의 모든 직업에 연결노동이 개입된다고도 볼 수 있다.
연결노동의 핵심은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혈당을 측정하는 걸 넘어 아내와 사별한 마음을 이해하고, 교사가 학생이 수학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꾸짖는 걸 넘어 숙제에 전념할 수 없는 마음의 동요를 알아주는 것이다. 연결노동이 ‘진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심리적 윤활제’냐고 묻는다면, 저자는 표면적 업무를 돕는 기능을 넘어 그 자체로 변화의 힘을 지닌다고 답한다. 연결노동은 “제공자와 수혜자를 인간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음을 읽힐 권리가 있는 존재로서 묶어주는 실”이며 “사람 사이에 공동으로 만들어지는 상호 성취다.”
저자는 연결노동을 ‘장인의 기술’로까지 격상시킨다. 한 상담치료사는 내담자와 있을 때 어느 순간 ‘찌릿함’과 ‘에너지’를, 무언가 잘못 돌아가면 ‘싸늘한 공기’를 느낀다고 한다. 과학적이지 않은 언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이같이 ‘쉽게 표준화할 수 없는 행위’야말로 연결노동이 인간 고유의 일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본다. 노숙인의 발을 씻겨준 한 간호사는 신체 접촉이 치유의 핵심 수단이라고 말했다. 재향군인병원의 한 상담치료사는 내담자의 메시지를 ‘직감’으로 느끼며, 지식은 이후 따라온다고 말했다. 연결노동자는 라이브 공연을 하는 가수 같기도 하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에 즉흥적으로 대응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려 한다. 연결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때로 실수할 수도 있지만, 실수를 솔직히 인정했을 때 오히려 ‘구원의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인공지능(AI) 상담사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문제는 연결노동이 개별 노동자의 기술과 사명감을 넘어, 사회구조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헌신적인 전문가들이 소외된 이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번아웃되는 사례는 전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한 심리치료사는 “임상적 직관은 문을 아무 때나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연결노동자가 그 소리를 들을 시간을 마련해야만 문을 두드린다”고 말한다.
책은 강한 사명감이 있는 의대생 루시의 여정을 전한다. 졸업한 루시는 시골에 자발적으로 가 헌신적으로 진료하다가 번아웃에 빠졌다. 이후 대도시의 대형 병원에서 일하다 ‘소명’이 ‘직업’이 됐음을 느꼈다. 루시는 개원해 일정한 돈을 내면 건강을 챙겨주는 ‘정액 기본진료’를 시작했다. 시간 여유가 생겼고 환자와의 관계도 안정적이었지만, 이 같은 의료 서비스가 부유층을 위한 ‘하인 경제’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하기 어렵다. ‘사명 지향적 사회구조’에서 ‘기업형 사회구조’로, 다시 ‘개인 맞춤형 사회구조’로 이어지는 루시의 여정은 연결노동의 난점을 보여준다. 향후 하류층은 AI의 연결노동을, 상류층은 인간의 연결노동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전망은 디스토피아를 그린 SF 영화의 풍경 같다.

세상 모든 것을 자동화, 데이터화, 매뉴얼화하려는 AI 시대의 추동은 연결노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단 연결노동을 데이터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많은 부하가 걸린다. 의사, 교사가 환자, 학생의 상태를 파악하는 수십 개의 체크리스트를 채워 넣느라 정작 당사자의 상태를 살피거나 농밀하게 교감하지 못하는 사례가 생긴다. 인간과 로봇의 업무 구분선이 모호해지면서, 인간을 로봇처럼 대하는 경우도 있다. 키오스크를 사용하다 인간 판매원을 만나면, 인간을 키오스크처럼 대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특수하지만, 매뉴얼에 따르다 보면 사람을 표준화하기 쉽다는 점도 문제다.
뼈, 장기, 근육을 제자리에 있게 하는 것은 얇은 근막이다. 저자는 연결노동이 사회를 지탱한다는 점에서 근막과 같다고 비유한다. 연결노동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도 제안한다. 연결노동자들이 서로 지시하는 존재가 아닌 돌보는 존재가 되고, 상호 공감하는 조직 문화를 세워나가야 한다. 연결노동에 필요한 시간, 공간, 직원 대 고객 비율, 보상 중에서 특히 시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연결노동의 의미와 현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이를 지속하는 방안은 구체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도 든다. 저자가 기자·사회학자로 만난 사람은 1000명, 이 책을 위해서 인터뷰한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관찰 기록이 책의 강점이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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