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투자자 품는 SK·현대차…ADR·IPO로 몸값 키운다
AI·로봇 들고 미국 간다…SK하이닉스·보스턴다이내믹스 美 상장 셈법

‘중복상장 규제’ 정면돌파 대신 ‘우회’ 선택한 K-미래가치
하이닉스, 쪼개기 없는 ‘ADR’로 시총 1조달러 밸류업 정조준
현대차 BD, 해외 인수 명분 앞세워 승계 실탄·모빌리티 재평가 노려
[대한경제=심화영 기자]국내 대표 제조기업들이 글로벌 자본의 본고장인 미국 증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와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미래 성장동력을 앞세워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직접 몸값을 평가받겠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강력한 ‘물적분할 후 중복상장 금지’ 기조와 국내 주주들의 반발을 의식해, 소액주주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글로벌 밸류업을 달성할 수 있는 정교한 ‘우회로’를 찾아냈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 쪼개기 논란 비낀 ‘ADR’로 TSMC 길 걷는다
국내 코스피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TSMC에 이어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하며 글로벌 빅테크 반열에 올라선 SK하이닉스의 미국행은 자본시장의 해묵은 난제인 ‘중복상장 논란’을 가장 영리하게 풀어낸 사례로 꼽힌다.
지난 1월 시장에선 SK하이닉스가 미국에 AI 투자 전담 법인을 신설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핵심 자산을 분리해 현지 증시에 따로 올리는 ‘알짜 자회사 쪼개기 상장’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다.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조에 역행해 모회사 주주 가치를 희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최종 선택은 별도 법인 분리가 아닌, 한국 증시의 본주를 미국 예탁기관에 맡겨 병렬 거래하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방식이었다. 자산을 쪼개 새 회사를 만드는 상장이 아니라 본국 주식을 그대로 연동한다.
이는 대만 TSMC가 대만 증시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ADR 형태로 동시 상장해 글로벌 자금을 흡수하고 세계 시총 6위로 도약한 선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장악한 만큼, 미국 기관투자가들의 접근성을 높여 ‘AI 메모리 탑티어’에 걸맞은 제값을 인정받겠다는 포석이다.
다만, 추진 속도는 철저한 내실 다지기로 돌아선 모양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2일 대만 ‘컴퓨텍스 2026’에서 기자들과 만나 “ADR 발행을 발표했으나 절차상 문제로 현재로서는 더 이상 말씀드릴 수 없다”며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언급, 철저한 규정 준수와 심사 대응을 위해 속도 조절에 나섰음을 시사했다.
현대차 BD, ‘해외 인수 법인’ 명분…2027년 IPO 가능성 주목
현대자동차그룹의 로봇 계열사인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BD) 역시 나스닥 IPO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업계는오는 21일 만기를 맞는 소프트뱅크 보유 지분 풋옵션과 향후 대규모 자금 조달 수요를 감안할 때 상장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증권가에선소프트뱅크의 잔여 지분 풋옵션이 보스턴다이내믹스 IPO의 직접적인 시한이라기보다는 투자자의 유동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는 해석도 있다. 대신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풋옵션과 IPO는 별개 이슈로 풋옵션은 상장 기한이 아닌 유동성 보장 장치”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초도 양산이 예정된 2027년 전후로 생산능력(CAPA) 확대와 설비투자(CAPEX)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IPO를 통한 성장 재원 확보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과 관련해 공식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은 또 다른 형태의 ‘명분 있는 미국행’으로 평가된다. 국내 사업을 물적분할해 상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미국 법인을 현지 증시에 올리는 구조여서 국내 중복상장 규제와는 결이 달라서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산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미국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평가받겠다는 전략적 의미도 담겼다는 분석이다.
심화영 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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