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의 본선 진출…마침내 운명의 그물을 찢다

한국 축구 역사에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암흑기를 끝내고 세계 무대로 복귀한 기념비적인 대회로 기억된다.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무려 32년 만에 이뤄낸 본선 진출이었다. 당시 김정남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아시아 예선에서 치열한 사투 끝에 일본을 제치고 멕시코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본선 조 추첨 결과는 가혹했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 그리고 복병 불가리아와 함께 ‘죽음의 조’인 A조에 편성됐다.
1986년 6월 2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의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1차전은 전 세계에 한국 축구의 매운맛을 보여준 한판이었다. 당대 최고의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는 전반에만 두 골을 몰아쳤고, 후반 초반 추가골까지 터뜨리며 3-0으로 앞서갔다. 허정무를 비롯한 태극 전사들이 마라도나를 전담 마크하며 육탄 방어를 펼쳤으나, 세계 최강과의 실력 차는 엄연해 보였다.
하지만 32년을 기다려온 한국 축구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28분, 마침내 한국 월드컵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아르헨티나 진영 한가운데서 패스를 받은 대표팀 주장 박창선이 골문과 약 25m 떨어진 지점에서 과감한 오른발 중거리 슛을 시도했다. 박창선의 발끝을 떠난 공은 강한 회전이 걸린 채 포물선을 그리며 아르헨티나 골문 상단 구석에 꽂혔다.
이 골은 한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터뜨린 ‘역사상 1호 골’이었다. 1954년 스위스 대회 당시 2경기 동안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16실점을 하며 세계 벽을 실감했던 한국 축구가 32년 만에 비로소 당당히 골 세레머니를 펼친 순간이었다. 비록 경기는 1-3 패배로 끝났으나, 당대 우승국이 되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터뜨린 만회골은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박창선의 첫 골을 시작으로 한국 축구는 월드컵 무대에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이어진 불가리아전에서는 김종부의 동점골로 사상 첫 승점(1-1 무승부)을 따냈고, 이탈리아전에서도 최순호와 허정무가 골맛을 보며 2-3 석패를 기록하는 등 ‘졌잘싸’(졌지만 잘 싸운) 경기를 펼쳤다. 박창선의 통쾌한 중거리 슛은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한국 축구 위대한 업적의 신호탄이 됐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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