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충분히 갖고도… 송파선관위, 배분 안했다

이지운 기자 2026. 6. 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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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4곳서 문제 있었다더니
하루뒤 “인천서도 2곳 부족” 사과
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시민들이 투표함 반출을 막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06.04 뉴시스
6·3 지방선거 본투표에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일으킨 서울시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가 충분한 투표용지를 미리 준비하고도 투표소에 배분하지 않고 일부를 남겨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가 부실 관리로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송파구선관위는 본투표에 대비해 송파구 전체 유권자(56만5638명)의 50%만큼 투표용지를 인쇄했다. 송파구선관위는 투표용지 전부를 각 투표소에 배치하지 않고 이 중 10% 안팎을 예비용으로 선관위에 남겨 뒀다. 이후 투표율 상승으로 일부 투표소에선 3일 오후 1시부터 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정작 예비로 준비해 둔 투표용지가 제때 투표소로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어떤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3일 인천과 경기에서도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유권자 증언이 잇따랐지만 중앙선관위는 같은 날 오후 9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문제가 생긴 투표소는 서울 소재 14곳”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천시선관위는 4일 뒤늦게 관내 투표소 2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고 밝히고 사과문을 내놨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이라며 “책임질 것이 있다면 명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투표용지 준비규정, 60%→50%… 투표율 올랐는데 되레 줄여

송파선관위, 용지 10% 따로 보관
4만장 남았지만 제대로 전달 안해
중앙선관위, 용지 부족 파악도 틀려
노태악 위원장은 사태 이틀째 침묵

6·3 지방선거 당일에 발생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불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선거는 여야 지지층이 결집하며 본투표에서 높은 투표율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선관위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의식해 예년보다 투표용지를 적게 확보했고, 빠듯하게 인쇄해 둔 투표용지조차 제때 투표소로 공급하지 못하면서 혼란을 키웠다. 여기에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투표소가 어디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 남겨둔 투표용지 제때 공급 안 해 혼란 키워

4일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속출한 서울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는 본투표에 대비해 전체 유권자의 50%에 해당하는 투표용지(약 28만 장)를 인쇄했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실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투표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문제가 된 동 중 어느 곳도 본투표율이 50%를 넘는 곳은 없었다. 준비한 투표용지를 다 나눠주기만 했다면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실제 3일 본투표에 참여한 송파구민은 총 23만9910명으로, 4만 장 이상 남을 정도로 투표용지가 준비됐었다.

하지만 송파구선관위는 투표소별로 배정된 투표용지 중 10% 안팎은 전달하지 않고 선관위에 따로 보관했다고 한다. 일부 부정선거론자들이 선거 후 남는 투표용지가 부정선거에 악용된다는 음모론을 제기해 온 것을 감안해 투표 종료 이후 투표소에 남는 투표용지를 최소화하려는 조치였다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다.

하지만 송파구의 본투표율이 선관위 예상치를 훌쩍 넘어서고 예비 투표용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투표소 곳곳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중앙선관위는 “송파구 선관위에 충분한 물량이 남아 있었지만, 남겨둔 투표용지를 전달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유권자 불편이 커진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내부 지침을 통해 지방선거 본투표일 용지를 전체 선거인 수의 50% 이상만 인쇄하도록 규정한 것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종합선거관리지침’을 개정해 각 시군구 선관위에서 전체 유권자 수 대비 ‘50% 이상’의 투표용지를 본투표용으로 인쇄해 두라고 규정했다. 4년 전 8회 지방선거에선 ‘60% 이상’이었는데 최소 인쇄 수량을 하향 조정한 것. 정치권에선 앞으로도 투표율이 올라갈 가능성에 대비해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사태 파악도 제대로 못 한 선관위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혼란이 발생한 이후에도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3일 오후 9시 긴급 기자회견에서 문제가 발생한 투표소를 ‘서울 소재 14곳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엔 인천시 등에서도 유권자들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항의하던 상황이었다. 인천시 선관위는 4일 “소중한 주권 행사를 위해 투표소를 찾은 시민들께 불편을 드렸다”며 투표소 2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점을 뒤늦게 시인했다.

중앙선관위는 4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원인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외부 전문가 위주로 구성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투표용지 인쇄 물량 규정을 선거인의 60%에서 50%로 축소한 경위 등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위가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중앙선관위가 선거 전 실시한 유권자 의식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밝힌 응답자가 78%에 이르는 등 높은 투표율이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에서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이틀째 침묵을 지켰다. 노 위원장은 대법관 임기가 끝났지만 중앙선관위원장을 겸하는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총공세를 펼쳤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4일 의원총회에서 “중앙선관위 허철훈 사무총장과 오민석 서울시선관위원장은 즉각 사퇴하라”며 “긴급 국정조사를 진행할 것을 더불어민주당에 제안한다. 이런 것이 바로 특검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청와대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 이후 브리핑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치러진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국민 혼란과 불편을 언급하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며 “행정부가 가진 권한과 책임을 모두 사용해 문제 발생 이유와 책임을 명확히 하고 국민 참정권 훼손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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