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부정선거론 '불씨' 살린 선관위... 지도부 문책·조직 개편 불가피
'하한선 50%' 설정 경위도 비공개
이 대통령 "명확하게 책임 물어야"
"선거 사무 정부 이관을" 폐지론도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초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비판이 분출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외부 전문가 중심의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참정권 행사 제한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공정한 선거 관리로 부정선거론을 불식시켜야 할 기관이 되레 음모론자에게 먹잇감을 제공한 점에서 지도부 문책은 물론 조직 전반에 대한 개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선관위 "진상규명위원회 발족" 수습 진땀
중앙선관위는 사태 발생 이틀째인 4일에도 피해 규모는 물론 원인 분석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참정권 행사에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사과드린다"며 진상규명위 구성을 알렸지만 국민적 의구심을 없애는 데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문제가 된 14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탓에 대기하거나 발길을 돌린 유권자 수가 몇 명인지 집계되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이 중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의 투표함 2개가 시민들의 항의로 반출되지 않으면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승리가 확정됐음에도 공식적으로 '당선'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본투표 용지 매수 하한선을 선거인 수의 50%로 정해 각급 지역 선관위에 지침을 내린 경위도 불투명하다. 선관위는 "통상 지선 투표율이 50% 안팎이고 올해 사전투표율이 23.5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점을 감안했다"며 예측 실패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문제의 투표소가 보수세가 강한 서울 송파에 몰린 점을 빌미로 강성 보수층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다시 확산하고 있는 만큼 당시 회의록 등을 공개해 사태를 조속히 진정시킬 필요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 선관위의 무책임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일부 유권자들이 투표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와 개표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개했고, 중앙선관위가 사태 책임을 서울시 선관위에 떠넘기는 행태 등에 대한 지적이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세훈 당선자가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5만3,000여 표 큰 차이로 이겼기 때문에 당선 무효 소송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참정권은 침해됐는데 당선 무효가 아닌' 모순적 상황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했다.

여 "사무총장 거취 고민해야" 야 "긴급 국조 추진"
정치권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관계 기관은 행정부가 가진 권한과 책임을 모두 사용해서 문제 발생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또 책임질 것이 있다면 명확하게 책임을 물어야 되겠다"고 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도 중앙선관위 행정 총책임자인 사무총장을 겨냥해 "거취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책임자 엄벌과 함께 긴급 국정조사 실시를 민주당에 제안했다. 전날까지 정원오 민주당 후보가 앞섰을 때와 달리 이날 오세훈 당선자의 승리를 확정한 후에는 재선거 요구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선거사무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에 이관하는 개헌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행법상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거사무 경험이 없는 대법관이 겸직해 행정 실수가 반복될 가능성이 큰 탓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는 "현행 선관위 체제는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됐지만 현재는 관권선거를 걱정할 시기는 아니다"며 "당장 추진하기 어렵다면 선관위원장을 선관위원 호선으로 정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중론도 적지 않다. 조재현 동아대 법전원 교수는 "선관위는 이미 내부 공무원들과 외부 위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다각도의 통제 장치를 갖추고 있다"며 "투명성을 더 보장할 필요는 있겠으나 기존 체계를 완전히 불신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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