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밀어 올린 '성난 부동산 민심'... 15개 자치구 내주고도 역전승
25구 중 과반 내주고도 역전승
세제 등 부동산 추가 규제 '경고'
"정원오, 부자 몸조심도 패착"
스벅 때리기에 2030 女 변심

"재개발·재건축 예정지나 고가 아파트 지역에서 그야말로 '오세훈 몰표'가 쏟아졌다."(서울 지역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이 6·3 지방선거에서 막판 대역전극을 쓰며 5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난 부동산 민심이 자리 잡고 있다.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세 부담 증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부활 등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규제 기조로 서울 민심이 크게 악화한 것이 여권에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정원오 민주당 후보는 서울 전체 25개구 중 과반인 15곳에서 승리했지만, 유권자가 많은 강남3구와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2번 표'가 무더기로 나오면서 역전을 허용했다.
물론 부동산만으로 승패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선거 막판 정부·여당의 '스타벅스 때리기'가 오히려 2030세대 반발을 초래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여기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선거 초반 여론조사상 우세를 믿고 리스크 관리에만 급급했던 정 후보의 선거 전략이 대역전극의 빌미가 됐다는 자성 목소리도 적잖다.
2010년 대역전극의 재현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른 지역은 역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였다. 오 시장은 이곳에서 53만1,768표(개표율 99.54% 기준)를 얻어 정 후보(31만8,429표)보다 21만여 표를 더 받았다. 여기에 중·양천·영등포·용산·동작·광진·강동구 등 한강과 맞닿아 있거나 가까운 주요 지역에서도 정 후보를 앞서면서 격차를 벌렸다. 오 후보가 25개구 중 15곳에서 패배하고도 서울 전체 득표에서 정 후보를 5만3,000여 표 차이로 이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정치권에서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와 비슷한 구도가 재현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당시 민주당 한명숙 후보는 22개 자치구에서 승리하며 10만여 표를 앞섰지만, 선거 이튿날 새벽 강남3구에서 오 후보가 12만6,000여 표를 더 받으면서 석패한 바 있다. 이에 이번 선거에서 정 후보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재산세 감면 등을 공약하며 이 지역 표심을 관리하고 나섰으나 결과적으로 역부족이었다.

'부동산 투표' 양상은 강남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나타났다. 정 후보는 한강벨트 핵심인 마포구에서 49.61%를 얻어 오 시장(46.88%)을 앞섰으나,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공덕·아현동 같은 동마포에서는 패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노원도 통상 10%포인트(p) 이상 앞서는 곳인데 재건축 문제로 격차가 6%p에 그쳤다"고 했다. 강남·북 가릴 것 없이 유주택자들이 정부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기조에 '불신임' 의사를 내비쳤다는 것. 아울러 1주택자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 개편, 보유세 인상 등 추가 규제 움직임에 경고를 날렸다는 분석도 많다.
시장은 국민의힘, 구청장은 민주당 후보를 뽑는 교차투표 흐름 또한 같은 맥락이다. 오 후보가 승리한 10개 지역구 중 동작·영등포의 경우 구청장은 민주당 후보가 됐다. 여권 관계자는 "권한이 덜한 구청장은 마음 편하게 민주당 후보를 찍더라도 시장은 정비사업을 확실하게 밀어붙일 국민의힘 후보를 뽑겠다는 심리가 엿보인다"고 했다.
'부자 몸조심' 패착이었나

민주당 내에서는 정 후보의 '부자 몸조심' 선거 전략이 패인이라는 지적도 많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정치 신인임에도 선거 기간 여론조사 우위만 믿고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중진 의원은 "정 후보가 참신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네거티브보다는 정책 선거로 일관했는데 그게 패착이었다"고 했다. 배철호 리얼미터 정치에디터는 "서울도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이러한 유리한 지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했다.
반면 오 후보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며 중도층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에 오 후보는 강남구(65.98%) 서초구(64.68%) 용산구(57.09%)에서 보수층 표심을 최대한 흡수했다. 이는 지난해 대선 당시 이 지역에서 보수 후보 득표율 합계치(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거의 유사한 수치다. 오 후보가 현 국민의힘 지도부의 '윤 어게인' 기조에 실망해 투표를 망설이던 중도 보수 유권자 표심까지 모두 끌어안았다는 의미다.
스벅 때리기 역풍?

전문가들은 "민주당 우군으로 분류되던 2030 여성들의 변심이 선거 승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서울 20대 여성 41.4%, 30대 여성의 53.6%가 오 후보를 각각 지지했다. 정 후보 지지율은 48.5%, 42.8%였다. 지난해 대선 당시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의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58.1%, 57.3%)과 비교해 10%p 이상 낮아진 것이다.
여론조사 업체 고위 관계자는 "2030 여성들이 보수 후보에 결집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라며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스타벅스 때리기'가 오히려 자유, 권리를 중요시하는 이들 계층에 역효과를 낸 것 같다"고 했다. 정권 차원의 스타벅스 불매 운동에 거부감을 느낀 젊은층 상당수가 오 후보로 결집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오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던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서울은 스타벅스가 워낙 많다 보니 젊은층의 투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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