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차별 철폐 32년 남아공… 흑인 이민자 찾아내 집단 폭행

김지원 기자 2026. 6. 5.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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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차별 철폐 32년, ‘흑흑 갈등’

과거 흑백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극심한 인종 차별의 역사를 겪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근 흑인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흑인 주민들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흑인 이주민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추방을 요구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이른바 ‘흑흑 갈등’이 남아공 사회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AFP에 따르면, 최근 남아공 남부 해안 지역 긴스바이에서는 이주민 수백 명이 반(反)이민 성향 주민들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현지 주민들이 경찰까지 대동해 집집마다 수색을 다니며 외국인을 찾아내 “남아공을 떠나라”며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적이 된 이주민들은 대부분 모잠비크나 말라위 등 주변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남아공으로 온 흑인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밤중에 여권과 기본적인 옷가지도 챙기지 못한 채 산과 숲으로 무작정 몸을 피했다고 한다. 므사 노마티티 긴스바이 시의원은 AFP에 “(주민들이) 사람들을 무작정 집에서 끌어내고 있다”며 “합법적인 비자가 있든 불법 체류자든 상관없이 그들은 어떤 외국인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지인 폭력 피해 한밤에 피신 지난 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서부 오버버그에서 가재도구를 짊어진 이민자 가족이 밤길을 걷고 있다. 최근 강경해진 반(反)이민 분위기에 모잠비크·말라위 등에서 일자리를 찾아 입국한 이민자들은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민자 겨냥 폭력 급증

남아공에서는 지난 4월부터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더반 등 주요 도시에서 강력한 이민자 단속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수백~수천 명이 참여하는 시위가 단순 가두 행진을 넘어 이주민을 직접 색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경단식 행동’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몽둥이나 도끼, 채찍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할 뿐만 아니라 이주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판자촌을 돌며 강제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이주민으로 의심될 경우, 집단 폭행을 가하거나 전기충격기·후추 스프레이 등으로 고문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케이프타운 인근 모셸베이에서 현지 주민들이 모잠비크 출신 이주민들을 폭행해 2명이 사망하고, 방화로 판잣집 55채가 불타는 사건도 발생했다.

시위를 주도하는 반이민 성향 시민 단체 ‘마치 앤드 마치’는 오는 30일까지 남아공 내 모든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지 않으면 전국적인 ‘셧다운’을 일으키겠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남아공 역사상 최악의 유혈 사태인 2021년 7월 ‘대폭동’을 재현하려 한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당시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구금되자, 이에 항의하던 지지자들이 벌인 시위가 대규모 폭력 사태로 변질되면서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흑백 갈등’이 ‘흑흑 갈등’으로

이 같은 사태의 배경에는 남아공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남아공은 인구 약 6300만명 가운데 흑인이 82%로 다수를 차지하는 다인종 국가지만, 부와 자산은 여전히 인구 7%를 차지하는 백인 계층에 집중돼 있다. 백인이 대다수인 상위층 10%는 국가 전체 자산의 80%를 보유하는 등 인종 간 소득·자산 격차는 세계 최악의 수준으로 꼽힌다.

1994년 인종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넬슨 만델라 정권이 들어서면서 흑인들의 정치적 지위는 크게 상승했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못한 셈이다. 지난해 남아공의 전체 실업률은 약 33%에 달했는데, 흑인 실업률은 30%대 중반까지 치솟은 반면 백인 실업률은 한 자릿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흑인 사회 내부의 경제적 좌절이 주변 아프리카 국가 출신 이주민을 향한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남아공에서는 2000년대 들어 흑인 원주민들이 이주민을 대상으로 벌이는 혐오 폭력이 지속적으로 반복돼왔다. 2020년대에는 줄루어로 ‘쫓아내다’라는 뜻인 ‘오퍼레이션 두둘라(Operation Dudula)’ 같은 반이민 자경단이 전국 단위로 세를 불렸다.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자경단은 남아공의 불만, 사회경제적 권리의 후퇴, 실업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형평성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세를 키우고 있다”며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유산을 해결해야 하는 막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폭력 사태가 확산하자 주변국들도 자국민 대피에 나섰다. 가나는 자국민 300명을 본국으로 송환했고, 모잠비크 정부도 수백 명이 추가 귀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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