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참정권 침해한 선관위, 독립기관 자격 있나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어처구니없는 관리 부실로 엉망이 됐다.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주권자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침해한 충격적 사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선관위를 질타했고, 여야도 선관위 책임을 철저히 묻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중앙선관위는 자체 진상조사로 소나기만 피해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4일 “외부 전문가 위주로 구성한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문제점과 원인, 책임을 따져 모든 결과를 밝히겠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독립적 헌법기관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활용해 어물쩍 넘어가려는 속셈인가.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타당하다. 하지만 독립기관이라는 위상이 최악의 무능과 무책임까지 가려주는 방패가 될 순 없다.
선관위는 2022년 대선 때도 코로나19 격리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이송한 ‘소쿠리 투표’ 사태로 불신을 산 바 있다. ‘셀프 조사’로는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헌법적 독립성을 지키면서도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외부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영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영국 선관위 역시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2022년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선관위 활동에 대한 의회의 감시·조사 권한이 신설됐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독립적·한시적 특별조사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헌법학자 및 선거행정 전문가, 시민사회 인사 등이 참여하는 기구를 통해 원인·책임 규명은 물론 제도 개선을 위한 입법까지 추진하는 방안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번 사태를 겪고도 선거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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