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송어'는 정치적 저항의 노래일까

아르떼 2026. 6. 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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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유윤종의 명곡의 측면도
명랑한 클래식인 줄 알았던 '송어'의 진실

모든 것은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Die Forelle) 얘기다. 가사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노래의 화자(시인)는 거울처럼 맑은 시냇물 속에서 화살처럼 빠르게 헤엄치며 노는 송어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때 낚시꾼이 물가에 나타난다. 송어가 낚싯바늘을 알아채고 자꾸만 피하자, 화자는 물이 맑으니 송어가 낚시꾼에게 잡히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안심한다.

그때 낚시꾼이 뜻밖의 꾀를 내 물을 저어 흙탕물을 일으킨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송어는 낚싯바늘을 물어 낚여버리고, 화자는 힘없이 잡힌 송어를 보며 분노한다.

처음엔 명랑하게 시골 시냇물 풍경을 그린 것 같았던 이 곡은 왜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을 보여줄까? 화자는 왜 낚시꾼의 기지에 탄복하지 않고 엉뚱하게 물고기에게 공감을 나타낼까?

[슈베르트 가곡 ‘송어’]

30년쯤 전이었을까, 인터넷이 보급되어 검색엔진을 처음 사용할 줄 알게 되었을 즈음이었던 듯하다. ‘송어’의 작사자가 누구인지 찾아보고 픽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다니엘 슈바르트(1739~1791). 슈베르트가 태어나기 6년 전 세상을 떠난 독일의 시인이자 언론인이다. 음악에도 재능이 있어 오르가니스트 겸 하프시코드 연주자로도 인정을 받았다.

웃음이 나온 것은 이 노래가 ‘슈바르트 작사 슈베르트 작곡’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운율이 딱 맞는다. 흥미로운 이름을 지닌 이 시인에 대해 더 상세히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슈바르트는 독일 서남부의 이름난 반골, 말하자면 반체제 인사였다. 그는 당시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봉건 제후들의 압제 아래 놓여 있던 독일의 실상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고 사회비판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처벌받거나 수배를 받았다. 결국에는 38세 때 감옥에 갇혀 10년 동안이나 바깥 세상을 보지 못했다. 그가 감옥에서 쓴 시 중의 하나가 ‘송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가곡 송어를 들으면서 계속 들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송어는 단지 명랑한 노래일 뿐이었을까? 가사를 다시 살펴보았다.

‘도둑(낚시꾼)에게 시간은 너무 느리게 흘렀고,/그는 개울을 휘저어 흐리게 했다./그리고 눈치채지 못할 사이에/낚싯줄이 팽팽히 당겨졌고/송어는 잡혀 허우적거렸다./나는 화가 끓어오르는 채/속임수에 넘어간 송어를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낚시의 정경은 아니다. 추측일 뿐이지만, 감옥에서 이 시를 쓴 슈바르트는 시냇물을 휘저어 송어를 잡는 낚시꾼의 모습을 통해 권력자가 음모를 써서 정적을 잡아넣는 일을 풍자하고 비판한 것 아닐까.

슈베르트가 이 곡 선율을 4악장의 변주곡 주제로 활용한, 피아노 5중주 ‘송어’도 널리 사랑받는 곡이다. 이 곡을 쓴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1819년 7월,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북부의 도시 슈타이어에 갔다. 그곳에서는 지역 유지이자 광산주인 파움가르트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젊은 작곡가를 두 달 동안이나 각별히 대접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송어는 저와 친구들이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연주할 수 있도록 송어의 선율을 넣은 실내악곡을 써 주실 수 있을까요?”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 4악장 주제와 변주]

이 곡에 열광한 시골 유지들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억압적인 체제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 당시 유럽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가곡 송어가 쓰이기 2년 전인 1815년 유럽 국가들 사이에 나폴레옹 전쟁을 결산하는 빈 의정서가 체결됐다. 내용은 봉건적이고 억압적인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복원이었다.

누군가 이의를 달 수도 있다. 이 시의 마지막 4절에는 다른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여, 황금빛 송어의 위험을 보아라/ 유혹하는 자들을 조심해라/ 한순간의 방심으로 너희의 순결과 자유를 잃고 눈물 흘리게 되리라.’

이 마지막 절을 보면 결국 이 시가 남성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젊은 여성에 대한 도덕적 경고로 읽힌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반체제 인사가 하필 여성에 대한 윤리적 경고를?

이 마지막 절은 이 시의 숨은 메시지를 감추려는 슈바르트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을지 모른다. 슈베르트는 슈바르트가 쓴 4절까지의 가사 중 3절까지만을 사용했고 마지막 4절은 뺐다. 그가 이 마지막 절을 가곡에서 뺀 것도 당시 사람들 사이에 이 시의 3절까지가 시인의 진정한 의도를 담았던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시에 실제 정치적 저항의 정신이 담겼다고 해도 결국 가사를 쓴 슈바르트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지 슈베르트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명(名)해석가이자 역사학자인 이언 보스트리지의 책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에는 시를 즐겨 썼던 슈베르트가 죽기 전 쓴 마지막 시가 실려 있다. 제목은 ‘민중에게 보내는 탄식’이다. 읽어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슈베르트와 사뭇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여, 너는 스러졌구나!/무수한 민중의 힘이여, 허무하게 소진되었구나/ 누구 하나 민중으로부터 차별되지 않지만,/그 모두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역시 한 사람도 없구나….’

보스트리지가 책에서 ‘송어’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사족 몇 가지.

필자가 중고생이던 시절 학생들 사이에 널리 유행해 식상하다시피 한 개그가 있었다. 음악 과목 시험에 악보와 함께 ‘이 곡의 작곡가와 이름을 쓰라’는 문제가 나왔다. 덩달이(철수나 영희여도 상관없다)는 시험 공부를 하면서 ‘슈베르트니까 시옷, 슈베르트 송어’라고 암기했다. 그런데 시험장에서 문제를 본 우리의 주인공은 곡 제목이 어느 자음(닿소리)으로 시작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답을 적었다. ‘베토벤의 붕어’.

베토벤은 붕어 5중주곡을 쓰지 않았지만 ‘도미 5중주곡’은 있다. 미국 피바디 음대 교수인 케빈 푸츠가 작곡한 5중주곡 ‘도미(The Red Snapper)다. 슈베르트 ‘송어’와 같은 편성으로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며 악장 하나를 ‘주제와 변주’로 구성한 점도 ‘송어’와 같다. 2005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 곡은 2021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실내악 연주단체 ‘앙상블 이볼브’가 국내 초연했다.

슈바르트가 시 ‘송어’를 쓴 동기가 무엇이든, 이 곡은 여름을 맞아 듣기에 제격인 작품이다. 가곡 ‘송어’도, 피아노 5중주도 청신한 기분으로 가득차 있다. 슈베르트가 7월에 지역 유지들의 초청을 받아 간 슈타이어에도 맑은 개울이 흐르고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송어 5중주’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이 곡은 여름이면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야외 여름 음악제에서도 즐겨 연주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1967년 미국 말버러 음악축제에서 녹음된 ‘송어 5중주’ 음반을 들어보면 가곡 ‘송어’의 주제가 흐르고 나서 첫 변주가 나오기 전 다섯 악기가 잠시 연주를 멈추는 순간, 또록또록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작지만 분명한 귀뚜라미 소리다. 말버러 음악축제도 풀밭이 있는 노천에서 청중들이 연주를 감상한다. 자연의 음악가인 귀뚜라미들도 아름다운 화음에 동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