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스탠다드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케니 배런'이라는 재즈

아르떼 2026. 6. 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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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민예원의 그림으로 듣는 재즈
<케니 배런 트리오 내한공연>
거장이 보여준 재즈의 정수

고요함 속에서 본질을 찾아가는 시간. 지난 4월 30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케니 배런 트리오(Kenny Barron Trio)의 내한 공연은, 케니 배런 그 스스로가 재즈임을 완벽하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케니 배런은 19세에 디지 길레스피 밴드에 합류한 이래로 스탄 게츠 등 다양한 유수의 뮤지션들과 협업을 거치며 자신만의 음악적 영토를 차근차근 확장해 온 인물이다. 커리어 내내 자극적인 화려함을 좇기보다는 묵묵히 ‘케니 배런’다운 연주를 선보여 온 단단한 거장. 재즈의 날에 가장 재즈다운 뮤지션의 귀한 공연은 큰 기대를 모았다.

1943년생으로 이제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케니 배런은 정정한 발걸음으로 무대 위를 걸어나왔다. 첫 곡 'Green Chimneys'를 시작으로, 무대 위에서 흐트러짐 없는 안정감과 깊은 서정성을 뿜어내며 관객들을 압도했다.

그의 안정적인 삶의 궤적은 연주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지극히 차분하면서도 재즈 특유의 논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정교한 무대를 선보였다. 케니 배런이 이끄는 성숙한 여백 속, 서로의 음악에 대한 경청과 화답이 오가며 각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누는 연주가 이어졌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가슴 아픈 비보가 전해진 뒤라 더욱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본래 트리오의 일원으로서 오랜 시간 음악을 주고받아 온 베이시스트 키요시 키타가와가 공연을 불과 이틀 앞둔 4월 28일 별세했기 때문이다.

케니 배런과 수십 년간 호흡을 맞춰온 그의 빈자리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베이시스트 알렉시스 쿠아드라도(Alexis Cuadrado)가 채웠다. 라틴과 포스트밥을 아우르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쿠아드라도는, 갑작스러운 합류에도 불구하고 케니 배런의 여유로운 멜로디 아래로 특유의 리듬감을 발휘하며 곡 전반에 흐르는 라틴적인 그루브를 유려하게 살려냈고, 이는 트리오 사운드에 새로운 색채를 더해주었다.

여기에 현대 재즈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드러머로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다이내믹한 연주력을 인정받은 조나단 블레이크(Johnathan Blake)의 생동감 또한 돋보였다. 솔로 파트에서 극에 달했던 블레이크의 파워풀한 드럼 연주는 두 '올드맨'이 가진 절제된 차분함과 절묘한 대비를 이루며 전체적인 연주에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케니 배런 스스로, 공격적이거나 특별한 연주 대신 함께하는 뮤지션들과의 대화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밝힌 것처럼, 정확한 강약 조절 속에서 세 사람의 연주가 오고 가는 무대였다.

특히 이들은 익숙한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가장 정석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는데, 이는 변주와 파격이 난무하는 시대에 오히려 '가장 스탠다드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었다.

최근의 재즈 흐름이 퓨전이나 복잡한 편곡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지만, 케니 배런 트리오의 무대는 역시 재즈는 재즈다울 때 가장 멋지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거장의 손끝에서 피어난 논리적인 선율, 그리고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도 차분한 소통을 통해 음악으로 하나 된 세 연주자의 완벽한 호흡은 진정한 재즈의 정수를 선보이기에 충분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들이 들려준 음악은, 한 예술가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음악적 철학과 동료에 대한 헌사가 응집된 재즈의 본질 자체로서 기억될 것이다.

민예원 '스튜디오 파도나무' 대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