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관위… 조직 해체 수준의 개혁 화급하다

2026. 6. 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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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에서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 등 14개 투표소에서 준비된 투표용지가 바닥나 투표가 일시 중단된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무더위 속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러 나왔던 유권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1~2시간씩 뙤약볕 아래 대기해야 했고, 참다못한 이들은 투표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민주주의의 축제여야 할 선거 날, 국민의 참정권이 사실상 박탈당한 꼴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번 사태가 천재지변이 아닌, 선거관리위원회의 행정 편의주의와 안일함이 부른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중앙선관위 허철훈 사무총장은 송파구 전체 유권자 수의 50% 분량만 투표용지를 인쇄해 용지 부족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런 황당한 해명이 더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고 있다. 유권자 수의 절반만 용지를 찍어놓고 선거를 치르려 했다니, 대체 어느 나라 선관위가 이런 식으로 일을 한단 말인가. 선관위는 선거 당일 오후 용지가 모자라자 뒤늦게 다른 지역에서 투표용지를 지퍼백에 담아 수송하는 코미디 같은 모습까지 연출했다. 투표에 사용될 투표용지와 투표함은 반드시 선거일 전일까지 송부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도 어긴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지만, 선거 행정에선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꼴이다.

이쯤 되면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들의 기표지를 플라스틱 소쿠리와 종이 상자에 담아 날랐던 '소쿠리 투표' 사태는 실수가 아니었던 것이 증명됐다. 이외에도 투표용지 외부 반출 및 대리 투표, 투표용지 중복 교부, 투표함 부실 밀봉 및 관리 소홀, 유권자 개인정보 유출, 투표용지 발급 지연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거센 국민적 지탄을 받고도 선관위가 지난 4년간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기관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한번도 감사를 받아본 적 없이 무능과 타성을 키워온 결과가 결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참정권 침해 참사'로 귀결된 것이다.

선관위의 반복된 무능과 부실 선거 관리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선거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결과에 승복하는 법인데, 선관위 스스로가 허점투성이 행정으로 불신을 자초하고 있으니 국론 분열과 대혼란이 불 보듯 뻔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머리 숙이기로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사법당국은 즉각 선관위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한 엄정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인쇄량 산정 과정에서부터 현장 송부 실패에 이르기까지, 고의적 태만이나 다른 내막이 있는지 밝혀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선관위 조직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 선관위는 내부 간부들이 자녀와 친인척을 조직적으로 부당 채용해온 실태가 폭로되면서 국가기관이 아니라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가족 회사'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견제받지 않는 독립성이 투표용지 인쇄 수량조차 맞추지 못하는 무능의 온상이자 면죄부가 돼서는 결코 안된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선관위가 스스로 민주주의를 허무는 집단으로 전락한 이상 상시적인 감사원 직무감찰, 고위직 외부 수혈 및 외부 전문가 참여 확대, 채용·승진 전수 감시 등 조직 해체 수준의 개혁이 화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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